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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강 Feb 26. 2024

아이라는 돌파구

대책 없는 나와 대책 많은 남편의 대결

그런 사람은 없다고 하는데 일에서 자아실현과 행복, 기쁨을 얻었'었'다.

하지만 일을 통해 우울과 불행을 얻고 나는 어떠한 의미도 일에서 찾지 못하게 된다.

아이들에게 헌신했더니 헌신짝이 된 기분이다.


과거의 나는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도 없어서 그저 주는 것만으로도 행복에 가득한 사람이었는데 그 행복이 고갈되었는지 이제는 지쳤어요 땡벌이다.

애들이 해 달란 적도 없는데 나 혼자 잘해주고 서운해한다면 이건 내 높은 나르시시즘의 결과일 뿐이라는 거. 그것도 이제는 안다.


그래서 바라는 것도 없고 해주는 것도 없어졌다.

인터넷에 떠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런 완벽한 교사가 되고 있다.

그래서 학교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보다 유능하고 아이들을 좋아하는 선생님에게 내 자리를 내어주는 게 맞다.


그렇게 나는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을 찾으러 떠나야 했다.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을 해 보았다.  


'그래! 결심했어!'

(이휘재가 외친 인생극장의 멘트를 아는 당신은 최소 30대 중반이다.)


'아이를 갖자! 아이를 통해 내 삶의 의미를 만들어보자!'


결혼 4년 차, 우리 부부에게는 아이가 없다.

남편은 비혼주의자를 선언하면서 고양이를 데려온 그 이후, 나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됐다.

아이가 없는 자리에 고양이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긴 하다.

지금도, 충분히, 감사하고 행복하긴 하다.


그러나 욕심도 많고 우울도 많은 나는 남편과 고양이로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한 마음을 아이로 꽉 채우겠다는 범상치 않은 생각에 이르게 된다.

양가에서 내색은 하지 않지만 은근하게 아이를 바라고 있었고 우리 생활도 꽤 자리를 잡아서 아이를 가질 때가 됐긴 했다.

나는 남편에게 (의미 있는 일을 위해) 아이를 가지고 싶다며 엽산을 사다가 함께 먹기 시작했다.

엽산의 부작용으로 여드름이 생기면서 우리 부부의 이마와 볼은 울긋불긋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남편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


'아이가 똑똑해진다는데 그까짓 여드름쯤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남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남편에게 또 한 번 감사함을 느꼈다.

그리고 거기까지였다.




남편은 책임감이 무척 강한 사람이다.

나의 계약 종료 기간이 가까워질수록 남편은 나의 실직과 임신에 대한 부담을 느끼면서 우리 관계는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나를 위해 일부러 우리 학교 근처로 이사를 결정한 사람.

그는 한 시간 반이 넘는 회사를 매일마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오가고 있다.

그렇게까지 배려를 해서 어떻게든 회사에 정을 붙이기를 바랐건만 아내는 일을 그만두겠다고 파업 선언을 한다.

남편 입장에서도 정이 떨어질 것 같다.

남편의 수입으로 어떻게든 나를 먹여 살릴 수는 있지만 아이를 생각하면 아득하다.

남편도 임신에 대한 파업을 선언하게 된다.


이런 마음으로 아이를 가지는 건 무모하고 대책이 없는 일이라고.

너는 너 하나도 건사를 못하는 아이가 어떻게 무책임하게 아이까지 낳아 키울 생각을 하냐고 물어본다.

계약 종료까지 두 달이 남은 시점에서도 나는 향후의 진로에 대해 남편에게 정확하게 답을 해 준 적이 없다.

그러니 남편이 미치고 답답해 날뛸 노릇이다.


그렇다.


대책이 없는 아내와 대책을 세우는 남편이 만나면 불행하다.


그리고 그걸 의미 있는  일, 돌파구로 생각한 나는 척하면 척하고 임신이 될 거란 어리석은 생각을 한다.

여름에 상태가 나아진 나는 정신과 선생님께 임신 계획이 있다며 약을 줄여줄 수 있는지 여쭤보았다.

남편도 동의한 상황이라 믿으셨던 선생님께서는 나의 가족 계획을 위해 내 상태와 관계 없이 약을 서서히 줄여주시기 시작했다.

초가을부터 아빌리파이를 서서히 끊고 아침저녁으로 먹던 푸록틴마저 줄이기 시작했다.


그때 탈이 났다.


그래도 약 덕분에 일주일을 살아 내던 나는 짧아지는 해와 함께 우울의 정도가 길어져 다시 침울해지게 되었다.

우울증의 정도가 다시 심해졌다.

선생님께서는 그때를 후회하고 계신데 나의 상태를 보고는 문득 하지 않던 말씀을 꺼내셨다.


'혹시 종교가 있나요?'

'네, 분명하진 않지만 집안이 불교여서 불교를 믿고 있습니다.'

'윤강님이 일을 그만두면서 임신 계획이 있다고 하시니 약을 줄이고 있지만, 지금 상태의 우울함은 약을 줄였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 겁니다. 일을 그만두면, 임신을 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아이는 찾아온다고들 표현을 하잖아요? 3월엔 반드시 임신을 할 거라고는 하는데, 부처님이 들으시면 조금은 오만하다고 느끼지 않을까요?'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에 틀림이 없어 반박을 할 수 없다.

선생님께서는 수학 문제를 풀듯 문제의 원인을 찾아 이를 제거하려고 하는 내 태도를 가장 경계하셨다.

그런 원인들을 제거하면 내 우울증이 해결될 것처럼 믿고 있었다 나는.

임신마저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 오만한 사람, 김윤강은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회복을 위해 약을 다시 증량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약을 증량하게 된 날은 남편과 내가 언쟁을 했던 날이었다.

옛날 아버지 어머니도 이렇게까지 대책 없게 낳으면 알아서 클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왜 우리 집안 경제 문제는 혼자 생각해야 하는 거냐고 남편은 나에게 책임을 물었다.

그렇다. 무책임한 사람.


책임이 막중한 그는 무책임한 아내에게 적어도 아이 이야기는 제발 꺼내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아이 이야기를 종용하면 종용할수록 미쳐버릴 것 같다고.

제정신이 아닌 사람은 나 하나로도 충분한데 남편까지 미치게 만들 의도는 아니었다.


국가가 저출생 문제로 고통받고 있는 시점에 나도 기여를 하고 있어서 할 말은 없지만 당분간 우리 가족계획에 아이는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없어졌다.'


남편은 남편대로 서운하고 나는 나대로 서운한 점이 가득하다만 우리 부부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절름발이처럼 어딘가 걸음이 맞지 않는 구석이 있다.

서로를 벽이라 생각하고 메아리처럼 되돌아오는 말을 가슴에다 내리꽂았다.

싸늘하다.

남편의 말이 비수가 되어 꽂힌다.


남편의 입장대로 대책이 없는 나와 나의 입장대로 계획만 있는 이 사람들의 대결은 언제 끝이 날까?


정말 우리에게 아이라는 존재는 찾아는 와 주는 걸까?


일단 내 우울증이 나으면 모든 게 해결이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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