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연속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뒤 답변을 기다리는 며칠이 몇 년 같았다. 중요한 시험을 보고 나서 초조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는 마음이었다. 엄마와 다시 통화를 했고 친정집이 이사를 하면서 여윳돈이 생긴 상황에서 아빠 몰래 2천만원을 도와주시기로 했다. 내가 처음으로 돈 이야기를 꺼낸 것에 놀라셨던 것 같다. 통화를 끝내고 엉엉 울었다.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했다는 안도감이었다. 캄캄한 동굴 같은 현실에서 터널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나를, 그를 이렇게 살리시는구나 싶었다. 그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것 봐. 끝이 아니라고 했지.”
그는 그 말을 인정하기보다 그래서 돈이 언제 들어오는지를 물어보았고, 엄마에게 돈을 받은 후에는 빨리 자기 계좌로 보내달라고 했다. 고맙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그는 생활비나 여러 쓰임새로 돈을 떼어둔 듯했고, 빚은 일부만 갚은 것 같았다. 받은 돈에서 빚을 갚는 비중을 늘렸으면 하는 게 나의 생각이었고, 그의 생각과는 달랐다. 답답했지만, 그와 돈 얘기를 하면서 싸움이 시작되기에 뱃속에 있는 아이를 생각하며 스트레스를 덜 받고 싶었다.
임신 중반을 넘어가면서 배도 점점 불러오고 밤에 잠을 푹 자기가 어려웠다. 여느 날과 같이 자다가 새벽에 깼는데 축축한 느낌이 들어 확인해 보니 하혈이었다. 순간 아이가 잘못되는 것은 아닌지 아직 나올 때가 안 되었는데 무슨 일인지 혼란과 두려움이 몰려왔다. 안정기가 지나도 아이가 유산되는 경우들이 있다고 들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심장이 빠른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거실에서 자던 그를 깨워 상황을 설명하고 병원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피곤한데 자다가 깨운다고 “아이씨” 하며 짜증을 냈고, 그 모습을 보며 드는 서운함과 속상함을 말하면 새벽부터 싸울 것을 알았기에, 애써 외면하며 나갈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았다. 가는 동안 기분은 가라앉고 병원비가 많이 나올까 봐 걱정도 되었다. 임신 중인 아내가 하혈로 새벽에 응급으로 병원에 가는 이런 상황에서도 괜찮냐는 따뜻한 말 한마디 없는 사람이 내 남편이라는 게 슬펐다. 그와 결혼하기로 한 내 선택을 후회했다. 병원에 도착해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조치를 받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자궁경부가 약한 것 같다고 했다. 새벽에 응급으로 병원에 가는 일은 그 후로도 2~3차례 더 반복되었고, 임신 기간 동안 거의 누워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 임신 후반으로 갈수록 입덧이 없어지거나 약해진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는 여전히 입덧이 심했다. 입덧 종류가 여럿 있지만, 나는 먹고 나면 속이 울렁거리면서 구토하는 토덧이 심했다. 투명한 위액이 나올 때까지 구토가 나왔다. 구토를 하는 과정에서 눈물, 콧물 다 쏟기 때문에 괴로운 과정이었다.
그는 친정엄마가 주신 돈 중에 일부를 그가 하고 싶던 인테리어 사업을 위해 쓰겠다고 했다. 상가를 얻을 수 있는 상황은 안되어 집수리나 방충망을 설치해 주는 걸로 시작하기로 했다. 그는 손재주가 있었기에 그 일을 해오지 않았지만 할 수 있었고, 중간중간 어려움들은 있었던 것 같다. 의뢰가 많이 들어오지 않아 수익이 크지 않았고 여전히 생활은 어려웠다.
그가 신용카드 돌려 막기로 친 사고 후 돈을 일부만 갚았고, 갚지 못한 돈에 대한 추심전화가 거의 매일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자주 왔다. 그는 그 전화를 받고 나면 더 예민해져서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늘 조마조마했다. 내가 임산부여도, 새벽에 하혈을 해서 병원에 응급으로 갔다 오는 일이 있어도, 언성을 높이며 위협적으로 화를 내는 건 여전했다. 내 마음이 이렇게나 불안한데 편안한 마음으로 태교가 잘 될 리가 없었다. 그가 화를 내지 않는 날엔, 좋은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의미로 불안했다. 이러다가 언제 갑자기 화 내려나 하는 생각이었다. 마음이 편하고 싶었다. 그의 극단으로 치닫는 화를 겪고 나면 그와 떨어져 있고 싶었지만 막상 갈 곳이 없었다. 몸 상태가 좀 괜찮았을 때 친정에 며칠 있다가 오기도 하고, 집에서 너무 멀지 않은 거리의 저렴한 레지던스로 피해 집을 나가있기도 했다. 그래도 그에게 연락은 오지 않았다. 불쑥불쑥 이혼하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왔으나, 뱃속에 있는 아이를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는 현실에 망연자실했다. 1박이 지나고 나서도 집에 안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홀몸도 아니고 갈 곳이 없어 집에 들어갔는데, 그게 왜 그렇게 지는 것 같고 분했는지. 재정적인 여유만 충분했다면 집에 오~래 안 들어갔을 거다. 내가 집에 들어가도 그는 거실에서 취침 중이었고 화해하기 전까지 나는 침실인 작은 방에서 먹고 자고 생활했다. 각방 생활이었다.
상황과는 별개로 막달이 되어가면서 출산 준비를 해야 했다. 출산 전에 출산 준비물을 다 사야 하는데 생각보다 준비할 게 많고 돈도 많이 드는 일이었다. 마음 같아선 돈 생각 안 하고 아이에게 제일 좋은 걸로 사주고 싶었지만, 형편에 맞추어야 했다. 임산부들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출산용품을 무료로 배송해 주는 서비스들을 알게 되어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한 번은 대학교 동아리 선배가 물려줄 육아용품이 있어 집에 왔었는데 현관에서 잠깐 대화만 나누고 보냈던 일이 있었다. 그때는 그가 화나면 집어던졌던 물건들로 인해 벽이나 가전, 가구에 흠집이 나 있었고, 그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 현실을 살고 있는 나를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40주가 되었다. 출산의 시기가 되었는데 아이는 나올 기미가 안보였다. 임신 기간에는 빨리 나올까 봐 걱정이었다면 이제는 나올 때가 됐는데 안 나와서 걱정이었다. 누워만 있던 나에게 의사 선생님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이제 운동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