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임신을 하니 주차마다 해야하는 검사들이 많았다. 임신을 해야 할 수 있는 검사였으므로 검사를 할 수 있는 대상이 되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태아 목둘레 검사, 기형아 검사, 초음파, 정밀 초음파, 입체초음파, 임신성 당뇨검사 등등. 아기의 건강과 직결되는 검사라 긴장이 되었다. 임신 기간동안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었기에 아기에게 안좋은 영향을 끼쳤을까봐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히 여러 검사들을 무사히 통과했다.
그는 술을 조금만 먹어도 얼굴이 빨개져 많이 먹는 편은 아니었는데 어느 무렵부터 자주, 많이 마셨다. 기분이 안 좋아보였으나 이유를 말해주지 않아 답답했다. 어느 날은 밤이 늦도록 연락이 되지 않아 걱정이 되었다. 밤을 지나 새벽이 되어도 집에 들어오지 않아 피곤했지만 잠도 못자고 기다렸다. 무슨 일이 생겨서 못 들어오는 건 아닌지, 무거워지는 몸을 이끌고 찾으러 나가야하나 별의별 생각이 드는 새벽이었다.
얼마 후 그는 술을 많이 먹어 몸도 못 가눌 정도로 비틀거리며 집에 들어왔다. 임신한 아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지는 못할망정 불안하게 만들고 걱정시키는 그에게 화가 났다. 그 다음 날이 되어 올라오는 화를 삯이며 그에게 어제 일의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는 소파에 누워 팔로 얼굴을 가린채, 거대한 폭탄을 터뜨렸다.
저축해둔 돈도, 수입도 없는 상태에서 필요한 고정비와 생활비를 그의 명의로 된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와 대출 서비스를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서는 결제일은 다가오는데 갚을 돈이 없으니 다른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고, 그 카드 결제일이 되면 또 갚을 돈이 없으니 다른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고... 카드 돌려막기를 했던 것이다. 결국 갚지못한 돈은 높은 이자율로 연체가 되어 빚이 2천만원이 넘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기가 죽어야 끝이 난다는 말까지.
절망이었다. 얘기를 할거면 상황이 악화되기 전에 얘기를 하고 상의를 했더라면 좋았을텐데, 더 이상 손 쓸 수 없는, 본인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나서야 터지기 직전의 폭탄을 나에게 넘겼다. 상황도 기가 막혔지만, 그 상황에 대해 생각한 해결책이 '죽음'이라니. 임신중인 아내에게 할 소리인가! 나에게 그의 말은 ‘나는 무책임합니다.’라고 들렸고 분노가 치밀었다. 하지만 나의 분노가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았고, 이번만큼은 아기를 지키고 싶었다. 소중한 생명을 또 잃을 순 없었다. 나는 시댁이나 친정에 도움을 요청해보자고 그에게 최대한 감정을 다듬어서 말을 했다.
"상의도 없이 이런 문제를 만들어서 미안해. 이런 문제가 생겼지만 우리 힘을 합해 이 문제를 해결해보자. 분명 해결방법이 있을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남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결국 문제는, 문제 그 자체라기보다 그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의 태도가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시댁에 이제 아기도 생겨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이직도 안되고 본인이 하고싶던 인테리어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경제적인 지원을 해달라며 이야기했으나, 해결이 잘 되지않아 내가 시댁 어른들과 직접 통화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집 구할 때 경제적으로 도와주시기로 하지 않으셨냐 도와주셨으면 좋겠다 라는 내용으로 말씀드렸다. 돈을 빌려달라는 이야기를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 보았는데, 휴대폰을 붙들고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를 들키지 않으려 애쓰며 돈 이야기를 하고있는 내 신세가 처량했다. 생각해보기로 하시고 조금 도와주시기로 하셨지만, 여러 상황적인 이유로 나중에 마음이 바뀌셔서 도움은 받지 못했다. 그때는 도움을 못 받았으나, 결혼생활 중 재정적으로 어려울 때 몇 번 경제적인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는데 3번의 시기에 500만원씩 도움은 주셨다. 결혼까지 한 다 큰 성인이 부모님께 경제적인 도움은 드리지 못하고 오히려 경제적으로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때는 그 생각보다 내가 직면한 문제에 대해 위기감과 두려움이 더 컸다.
빚 문제를 해결해야했다. 돈 문제 앞에서 무너지는 그를 보며, 무너지고 싶어도 무너질수도 없는 나를 스스로 다독이며 친정에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대출을 받으려고 해도 수입이 있어야 하는데, 조건이 안됐기에 친정이 마지막 보루였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부로서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 고군분투 해야하는 것이 슬펐다. 하지만 슬픔을 뒤로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했다.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사실대로 얘기하면 그에 대해 엄마가 부정적인 생각이 들 것 같아서 그가 새로운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재정적인 부분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도와달라고 했고 엄마는 기도를 해보겠다고 했다. 나도 기도했다. 살려달라고. 그가 진짜 죽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불안했고, 멘탈이 불안불안한 그를 보며 괴로웠다. 그래도 나는 그에게 이게 끝은 아니라고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나의 이 스트레스가 아이에게 영향이 미치지 않기를…
그 때의 나의 목표는
아이를 건강하게 잘 품고 있다가 출산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