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간이 멈춘 날
한참 임신을 준비하던 시기에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니 기운이 빠졌다. 다니던 회사는 야근이 많은 편이었고 건강을 회복해야 임신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2년을 다니고 퇴사했다. 생각해 보면 나는 회사를 잘 그만두는 편이다. 커리어 관리를 하지 않아 나중에 후회가 들긴 했으나, 돈 VS 다른 가치, 예를 들면 돈과 건강 둘 중 뭐가 더 중요해?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했을 때 큰 고민 없이 돈이 아닌 다른 가치를 고르면서 퇴사를 쉽게 하게 된다. 일이 곧 돈일 수도 있지만, 커리어가 될 수도 있고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도 있는데 내 생각의 그릇이 한정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일을 쉬고 집 근처 공원에서 매일 걷기 운동을 하며 속으로 힘든 마음을 고백하며 기도했다. 결혼생활이 불행한 것과 건강의 문제, 그리고 아이를 갖는 문제까지. 그래서 운동 시간은 항상 눈물바람이었다.
몇 달 뒤, 결혼 4년 만에 기적처럼 임신이 되었다. 기다리던 아이였던지라 그 기쁨의 감정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었다. 병원에 가서 심장소리를 듣는데 비로소 실감이 났다. 양가 부모님께도 소식을 알렸고, 임신 소식에 그도 기뻐하고 챙겨주면서도, 욱하는 건 여전했다. 그래도 아이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느꼈기에 하루하루가 기뻤다. 태명은 ‘사랑’이라고 정하고 매일매일 배를 어루만지며 사랑이를 불렀다.
병원에서 아기 심장소리를 듣고 온 며칠 뒤, 컴퓨터 책상 의자에 앉아있었는데 갑자기 큰 재채기가 나왔다.
“에~~~ 취!!”
비염이 있어서 평상시에도 재채기를 하지만 그날따라 유독 큰 재채기였다. 그런데 배가 좀 아팠다. 생각해 보니 재채기할 때 배에 힘이 많이 들어갔고, 아직 초기라 조심할 때인데 아기에게 충격이 가해진 거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계속되었다. 불안함에 주변에 상황을 이야기했는데 다들 괜찮을 거라고 얘기해 주었다. 안심이 되었지만 그것도 잠시, 자꾸만 올라오는 불안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그러던 얼마 뒤, 갈색혈이 나오기 시작했다. 불안한 마음에 맘카페와 블로그 글들을 검색해 보았다. 임신 초기에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걸 수도 있고, 유산 전조 증상일 수도 있다고. 유산 전조 증상이라는 문구에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이렇게 불안할바에 확인하고 마음 편하게 있어야지.'라는 생각이었다. 그날은 다니던 병원 담당 원장님이 안 계신 날이기도 하고 야간진료 시간대라, 집 근처 병원에 연락을 해보고 택시를 타고 갔다.
병원에 도착해 접수를 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초음파 검사를 했다. 그런데, 아기의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누워서 초음파 화면을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참고 정말이냐고 계속 되물었다. 원래 다니던 병원에 가서 확인을 한 번 더 해보기로 하고 병원을 나오는데 멍했다. 그 순간 나의 시간이 멈춘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때는 바로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얼마 전까지도 뱃속에서 콩닥콩닥 심장이 뛰면서 자라고 있던 아이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고?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알리고 집에 들어가자마자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아이처럼 엉엉 울면서 깊은 절망감과 슬픔을 쏟아내었다.
첫 번째로 드는 감정은 죄책감이었다. 내가 무언가를 잘못했기 때문에 아기가 죽은 거라는 전제하에 나의 잘못들을 하나하나 찾아나갔다. 내가 뭘 잘못 먹었나?부터 온갖 일들을 떠올리며 이것 때문인가 저것 때문인가 쉬지 않고 생각했다. 원인을 찾고야 말겠다는 듯이. 남들은 아니라고 해도 크게 재채기를 했던 일이 마음에 걸렸다. 재채기를 참을 걸… 특별한 일은 없어서 그 일이 계속 후회로 남았다. 내가 품고 있던 생명이기에 그냥 다 내 잘못 같았다.
그다음 감정은 원망과 분노였다. 그가 원망스러웠고, 하나님이 원망스러웠다. 임신 기간에는 마음이 편해야 하는데 항상 나를 불안하게 했기에 그를 탓하고 싶었다. 마구 쏘아대며 화풀이하고 싶었다. 당신 때문이라고. 하나님께는 ‘아이를 주실 때는 언제고 이렇게 갑자기 데려가시나요? 내 결혼생활 중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어떻게 데려가십니까! 줬다가 빼앗아가시는 건가요!’라는 분노였다.
그러다가 대학 동아리의 한 선배가 떠올랐다. 아이가 한 명 있던 그 선배는, 그전에 유산의 경험이 있었다. 이해되지 않는 이 상황을 내가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가 혼란스러웠다.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다잡고 싶었다. 유산의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고 싶었다. 이 힘든 일을 그 선배는 어떻게 이겨냈는지 궁금했다. 전화를 걸었다. 그 선배는 따뜻하게 나를 위로하며 본인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임신 중에 차를 타고 가던 어느 날 갑자기 욥기서 성경구절이 생각났다고 한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실지이다(욥 1:21 중에서)’ 왜 이 구절이 생각날까 의아해했는데 얼마 뒤에 유산이 됐다고 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먼저 주셨구나라고 생각했다고. 그 얘기를 듣는데 선배가 얘기해 준 욥기서 구절이 내 마음에 콕 박혔다. 사람의 어떤 말보다도 그 말씀 한 구절이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이 모든 일들도 하나님 안에 있는 일들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본래 내 것이 아님을, 이유는 모르지만 주신 분이 거두어 갈 수도 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아기가 갖고 싶은 시기에 아기를 갖는 일도, 건강하게 아기를 출산하는 일도 바랄 수는 있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인정하게 되었다.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고, 다니던 병원에 그와 함께 갔다. 혹시 유산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일말의 기대감이 있었지만, 아기의 심장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계류유산이라고 임신 초기에는 자연유산이 많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 아이가 건강하지 않으면 그럴 수도 있다고. 수술을 해야 하니 일정을 잡으라고 했다. 날짜를 정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심란했다. 워낙 겁이 많고 아픈 걸 싫어해서 수술을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 검색으로 여러 정보를 보니 수술 없이 자연적으로 아기집이나 태아가 배출되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방법이 수술밖에 없다면 싫어도 해야겠지만, 다른 방법이 있다면 그 방법을 써보고 싶었다. 마음을 정하고 수술을 취소했다.
머리로는 어느 정도 이 상황을 받아들였지만, 마음은 아직이었다. 누워있으면 옆머리카락이 다 젖을 정도로 눈물이 계속 흘렀다. 눈물이 그냥 쏟아지던 3~4일을 지나 마음도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우울한 기분을 어느 정도 떨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자연배출 후에 자궁상태를 보러 병원에 갔는데 아기집이 깨끗하게 배출된 상태라고 했다. 그러면서 담당 원장님이 포스트잇에 '자궁선근종'이라는 글자를 써서 주면서 "자궁선근종이라고 인터넷에 검색해 봐요. 임신이 잘 안 될 수도 있습니다."라며 무심하게 얘기하는데, 또 다른 청천벽력이었다. 임신이 잘 안 될 수도 있다니 역시나 내 문제였나 싶은 생각이 들었고, 의심되는 병명을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고 검색해 보라는 의사 선생님의 무심한 태도에 병원을 옮기기로 했다.
몇 군데 병원을 가보았다. 그중 한 병원이 분위기가 좋았고, 무엇보다 의사 선생님이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셨다. 전에 병원에서 자궁선근종일 수 있다고 했는데 그러면 임신이 어려운 건지 물었더니 심한 거 아니면 괜찮다라며 인자한 웃음을 지으셨다. "지금 상태 괜찮으니 임신하면 그때 봅시다."라고 하셨다. 마음 안에서 희망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기분이었다. 임신해서 의사 선생님 꼭 만나야지 다짐했다.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