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의 대가
아침 출근길은 언제나 분주하다. 그날도 지하철은 각자의 일터로 출근하는 직장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데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시야가 점점 어두워지고 머리에 쥐가 난 듯 저릿해졌다. 기절할 것 같다는 생각에 속으로 '쓰러지면 안 돼'라는 말을 수없이 되뇌었다. 사람이 꽉 찬 지하철이라 바닥에 쪼그려 앉아서 쉴 수도 없었고 그저 손잡이를 꽉 잡은 채 하차역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나는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늘 그 일이 벌어진 뒤의 모습을 먼저 상상하곤 한다. 그런데 쓰러질 것 같은 그 찰나의 시간에도 지하철에서 내가 쓰러진 장면을 떠올리니,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 보듯 바라볼 그 시선이 두려워 마주하고 싶지 않은 미래였다.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스러웠지만 정신력으로 버티며 하차역에 이르러서야 겨우 지하철을 내릴 수 있었다. 한참 동안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면서도, 머릿속에는 지각하기 전에 서둘러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조금 진정이 된 뒤 다시 출근했지만,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동료들이 창백한 내 얼굴을 보고 놀라며 조퇴하고 병원에 가라고 성화였다. 결국 조퇴하고 집 근처 큰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가는 길 내내 마음이 심란했다. 혹시 큰 병에 걸린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밀려왔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병원에 도착한 나는 진료를 잘 본다는 의사를 만나고 싶어 특진 진료를 선택했다. 하지만 오랜 대기 끝에 들어간 진료는 기대와 달리 불과 5분 만에 끝나버렸다. 의사는 내 증상을 들은 뒤 검사도 권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미주신경성 실신’이라고 했다. 스트레스로 인해 혈압이 낮아져 뇌로 가는 혈류가 줄어 일시적으로 의식을 잃을 수 있다고 간단히 설명했고, 특별한 치료법도 없다며 자주 반복되면 다시 오라는 말만 덧붙였다. 병원을 나와 집으로 가는 길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처한 현실이 원망스러웠다. 만약 그가 아닌 평범한 사람과 결혼했다면 이런 일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서러움이 밀려왔다.
얼마 뒤 회사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그 결과 갑상선 이상 소견이 발견되어 2차 검사를 권고받았다. 집 근처 여성외과에서 피검사를 하자 갑상선 자극 호르몬 수치가 지나치게 높고 갑상선 항체가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진단명은 만성갑상선염이라고도 불리는 하시모토 갑상선염. 내 몸의 면역세포가 갑상선에 생긴 항체를 적으로 오인하고 공격해 갑상선을 파괴해 갑상선 기능이 저하된다고 한다. 자가면역질환은 아직 뚜렷한 치료법은 없다고 했다.
또한 피검사에서 염증 수치를 나타내는 CRP 항목이 1000mg/dL이 나왔다. 참고로 정상 수치는 0.5mg/dL이다. 의사는 1000mg/dL이라는 수치는 그 병원의 검사 장비가 나타낼 수 있는 최대치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1000mg/dL일수도, 1000mg/dL 이상일수도 있다고 말이다. 설명을 듣고 나니 덜컥 겁이 났다. 이러다 염증이 온몸에 퍼져 죽는 건가 싶었다. 살려달라는 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그리고 초음파 검사에서 혹이 발견되어 세침흡입검사를 진행했다. 마취를 했음에도 주삿바늘이 목에 들어간다는 사실에 떨렸다. 다행히 검사 결과는 괜찮았지만, 이후 일 년 동안 갑상선 호르몬 수치는 불안정하게 오르내렸다. 비타민 D 수치 역시 극도로 부족해 수치를 정상 범위로 올리기 위해 주기적으로 주사를 맞았다.
의사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물었다. 갑상선 질환은 스트레스 안 받고 마음 편히 지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나의 현실을 떠올렸다. 그와 결혼식 이후로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는데 어떻게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한숨이 나왔다.
씬지로이드라는 약을 복용하며 시간이 지나니 다행히 오르락내리락하던 갑상선 호르몬 수치는 안정되었고, 정상 범위를 유지하게 되었다. 씬지로이드는 갑상선 기능이 떨어질 때 사용하는 갑상선 호르몬제로, 갑상선이 일을 덜 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의사는 이 약을 평생 먹어야 한다고 했지만, 오히려 큰 수술 없이 약을 먹으며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기도 했다. 그 후 셀레늄 주사도 정기적으로 맞고, 근처 공원에서 걷기 운동을 하며 건강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앓게 된 질환에 대해 공부해 보니, 스트레스를 받으면 교감신경이 올라가는데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혈압이 올라가며, 근육이 긴장되는 현상들이 일어난다고 한다. 몸이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에너지를 급격히 동원하는 신호인데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게 되면 교감신경이 과잉작동하게 되고 코르티솔 같은 호르몬 분비를 계속 증가시켜 면역체계 균형을 무너뜨리고, 결국 자가면역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역시나 원인은 스트레스. 내가 매 순간 긴장하고 있다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그의 분노를 매일 견디며 살아온 시간이 결국 내 몸의 면역체계를 무너뜨리는구나... 마음 한켠에서 자꾸 억울함이 올라왔다. 그에 대한 원망이 깊어졌다. 체력은 약했지만 건강한 편이었는데, 그와 결혼하면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병이 생겼다고 생각하니 서러움과 분노가 밀려왔다. 그에게 내 병의 원인을 말했지만, 그는 "원래 네 몸이 안 좋았던 걸 수도 있지."라며 인정하지 않았다. 건강을 잃은 것도 슬펐지만, 부부라는 이름으로 엮인 가장 가까운 사이에 위로받을 수 없고 의지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슬펐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그와의 결혼을 후회하면서도, 한편으로 그를 사랑으로 보듬어 주면 언젠가 '반드시' 나아질 것이라고 믿었다. ‘반드시’가 포인트였다. 마치 신앙과도 같은 믿음이었다. 결혼생활을 통해 스트레스를 얻고, 건강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