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폭탄
신혼여행 후에 지인들을 만났다. 결혼하니 어떠냐고 다들 물어보았다. 행복하지 않았는데, 행복가면을 쓰고 행복한 척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부끄러운 일이다. 그때 나의 진짜 마음은 이랬다.
‘남편이 화나면 너무 무섭게 변하고 언제 화낼지 몰라서 불안해. 결혼 초기인데 결혼을 잘못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데 내가 하겠다고 한 결혼이라 할 말이 없어. 마음은 힘든데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진짜 마음을 누군가와 나누지 못했다. 지인들을 만나고 오는 날이면 결혼 생활에 대한 이상과 내가 처한 현실의 괴리감에 마음이 우울했다.
그가 처음으로 의자 손잡이를 망가뜨리고 컵을 던지고 했던 날을 기점으로, 화가 나면 물건을 던져서 위협하고, 깨부수는 일의 텀도 짧아지고 빈도수가 많아졌다. 처음에는 ‘한 번 그러고 말겠지. 안 그런다고 했으니까 괜찮을 거야. 내가 더 사랑해 주고 상처를 보듬어주면 나아질 거야. 지금은 힘들지만 나중에는 웃을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고 기대했던 만큼 큰 절망감으로 돌아왔다. 아무 일 없던 일상생활 중에도 갑자기 슬픔이 밀려오면서 눈물이 나기도 했다. 싸울 때마다 난장판이 되는 집이 보면서도 현실을 인정하기 힘들었다. 다시 안 그러겠다고 하면서도 감정이 격해지면 컨트롤이 안 되는 그를 보며 점점 기대를 접고 체념하게 되었다.
화가 나면 고함을 치며 앞뒤 안 가리고 집어던지는 통에 TV나 식탁, 의자, 전기밥솥 등 가전이나 가구가 남아나질 않았다. 망가뜨려놓고 나중에 결국 다시 다 사기 때문에 거기에 들어가는 돈도 아까웠다. 그는 화가 나서 부러뜨린 대걸레로 내 목을 잡고 머리를 치려고 하기도 했고, 목을 움켜쥐었던 빨간 손자국이 남아서 증거로 남겨두려고 사진을 찍어두기도 했다. 본능적으로 증거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어느 날은 또 물건을 집어던지면서 화내길래 마음먹고 나도 같이 물건을 집어던졌다. 일반적이라면 거기서 멈출 텐데 그는 일반적이지 않았기에, 더 큰 분노로 대응했다. 이러다가는 둘 다 죽겠구나 싶었다. 물건을 같이 던지는 게 그에게 더 자극이 된다는 걸 알게 되어 그 후로는 최대한 그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어떤 때는 자기 분에 못 이겨서 주방 상부 유리장을 주먹으로 깨고 인대가 끊어져 수술을 하기도 했다. 그의 분노가 밖으로 향하면 상대방을 향한 폭력이 되고 안으로 향하면 자해가 되었다. 어떤 때는 싸우고 내가 방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있으면 끝까지 따라와서 발로 문을 찼고 문고리가 고장 나면서 문이 열렸고, 들어와서 끝도 없는 분노를 쏟아냈다. 집 안에서 안전한 나만의 공간이 없었다. 서글펐다. 그리고 무서웠다. 이보다 더 큰 일을 당하게 될까 봐. 이런 일을 당하고 있는 내가 처량하고 불쌍했다. 내 인생에 이런 끔찍한 경험은 처음이었다.
싸우고 나면 일단 집 밖으로 나왔다.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막상 나오니 갈 곳이 없었다. 집 밖으로 나온 때가 캄캄한 밤이면 내 눈물을 감출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지 없이 길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걸어가며 보는 사람들은 평온해 보였고, 행복해 보였다. 내 상황과 비교되어 내가 더 초라해지는 기분이었다. 집에서 편하게 쉬고 있을 시간에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건가…
갈 곳이 없을 때마다 근처 교회에 가서 울부짖으며 기도했다. 너무 힘들다고. 이혼하고 싶다고. 근데 또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다고. 행복한 척했는데 이혼하면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냐고. 힘들어도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이 의식됐고 두려웠다. 인생의 실패자로 볼까 봐. 손가락질받을까 봐 두려웠다. 그렇게 하나님께 상처받은 마음을 쏟아놓고 또 쏟아놓았다.
물론 가끔 사이가 좋을 때도 있고 자상할 땐 좋았지만, 중간은 없는 감정이 너무 극과 극을 오갔기에 그 간극에서 나는 항상 불안했다. 그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았다. 갑자기 격한 화를 냈고 결국 그 이유를 물어보면 내가 그를 무시한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싸우면 항상 나에게 의도가 뭐냐, 이유를 말하라고 하는데 그를 무시하려고 했거나 의도성을 가지고 한 말이 아니었기에, 그놈의 의도를 말하라며 끊임없이 추궁했다. 그건 그거대로 미칠 노릇이었다.
결혼 후 2년 만에 나는 다시 일을 시작했고, 그는 다른 회사로 이직을 했다. 맞벌이를 했음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월급은 정해져 있는데 매달 월세를 포함한 나가야 하는 고정비에 그의 마이너스통장 대출 갚기에도 빠듯한 걸 넘어 모자랐다. 예산을 세워도 초과되기 일쑤였다. 그는 먹고 싶은 건 먹어야 했고, 사고 싶은 건 사야 했다. 돈을 모으기 힘든 구조였다. 그런 어려움을 그와 이야기해도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재정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도 스트레스받는다며 자리를 피했다. 어떤 일에 대해 상의라는 걸 할 수 없었다. 항상 감정적으로 안 좋게 끝이 났기 때문에.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때가 되면 아이가 생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3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내 마음이 불안했던 탓일까. '아이가 있으면 그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결혼 초반부터 그의 성격적인 문제, 재정적인 어려움, 아이 갖는 문제로 고난도 결혼 생활이 이어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