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사명감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결혼을 결심하게 되는 이유는 ‘이 사람이다!’라는 느낌이 든다거나, 한결같이 나의 곁에서 응원과 지지를 보내며 안정감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평생 같이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
내가 결혼을 결심한 계기는 좀 달랐다. 삐걱삐걱 거리며 1년을 넘게 만나고 있을 즈음 자연스럽게 결혼얘기가 나왔던 거 같고 그는 돈을 모으고 그다음 해쯤 하는 게 어떻냐고 했다. 그는 35세, 나는 27세였다. 그가 했던 얘기는 충분히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야기였음에도 내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도 모아둔 돈이 어느 정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나는 돈 때문에 의리 없게 결혼 미루고 그런 사람 아니야.’라는 메시지도 주고 싶었다. 그리고 엄마가 나를 36세에 낳아서 환갑이 넘는 나이였기 때문에 장녀인 나는 혼자만의 조급함, 불안감이 있었다.
사실 주변에서는 그와 연애한다고 했을 때 부정적인 반응들이 많았다. 그를 만난다고 하면, “왜~?” 이런 반응들이었다. 연애 자체로도 힘겨웠는데, 주변의 인정을 못 받는 거 같아서 속상한 마음이었다. 엄마가 그는 아닌 것 같다고 우려했고, 결혼하려고 한다고 했을 때도 처음에는 반대하다가 ‘네가 그래도 좋다면 해라.’라는 허락을 해주셨다. 아빠와 관계가 좋고 나쁘고 할 것은 없었지만, 바쁘셨고 아빠와 대화를 많이 하거나 친밀한 정서적인 교류가 있진 않았다. 아빠는 엄마를 통해 내 이야기를 들으셨고, 좋다 싫다 얘기는 안 하셨지만 나중에 들으니 아빠도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했다.
본격적인 결혼 준비가 시작되었다. 어떤 드레스를 고를지, 스튜디오 촬영은 어디에서 할지, 어떤 샵에서 메이크업을 받을지, 가구는? 가전은? 끝도 없는 선택에 선택을 해야 했고, 결혼 준비를 위해 모아둔 돈을 쓰기 시작했다. 돈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이상적인 생각이 있었지만 서로의 재정상태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돈을 어느 정도 저축해 두었는지 물어보았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답답했으나 그가 돈이 없어서 내가 결혼을 안 하기로 한다면 사람들은 내가 속물이라고 생각하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내가 세운 기준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에 초점이 쏠려 있었다. 그래서 올바른 결론을 낼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신혼집은 해결이 안 된 상태였고, 그는 부모님께 재정적인 도움을 요청하겠다고 했으나 “돈이 없으니 네가 알아서 해라.”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집 관련 문제로 엄마와 예비 시어머니가 통화했는데 시골땅이 개발에 묶여있어서 당장은 팔 수가 없으니 지금은 안되고 나중에 도와주겠다고 했다는 얘기를 엄마에게 들었다. 그 일이 있은 후 그가 나에게 말을 했다. “엄마가 상황이 이러하니 지금은 안되고 나중에 집 구할 때 도와주겠다고 했더니 장모님이 전화를 끊어버리셨다는데?” 그 얘기를 듣고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며 엄마에게 내가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상황이 정반대였다. 예비 시어머니가 상황이 안된다고 하니 엄마는 “어쩔 수 없지요.”라고 대답을 하자마자 바로 전화가 끊어져서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엄마는 기분이 안 좋았지만 이 일을 나에게 얘기하면 예비 시어머니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할 수 있으니 말을 아끼셨다고 했다. 그래도 내가 살아오면서 보아온 엄마는 기분이 안 좋다고 전화를 먼저 끊을 사람이 아니었기에 엄마 말을 믿는다. 그에게 그 이야기를 전달했고 그래도 해결이 안 되어, 예비 시어머니께 직접 전화해서 엄마에게 들은 상황을 전달했지만 그분은 “나는 거짓말하고 그러는 사람 아니야. 지금까지 거짓말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라고 했다. 그날의 의문은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
그의 힘들었던 부분 중 또 다른 하나는, 싸우면 전화를 해도 연락이 안 되고 잠수를 탔다는 점이다. 전에 자취할 때 갑자기 쓰러진 적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가 쓰러져서 연락이 안 되는 일이 생기면 자기를 잘 챙겨달라는 뜻으로 그 얘기를 했던 듯싶다. 그 이후로 연락이 안 되면 혹시 또 쓰러진 건 아닌가 싶어 불안했고 안 그래도 걱정이 많은 나는 그가 연락이 안 되면 집에 달려가서 괜찮은지 확인해야 안심이 되었다. 가는 길에도 온갖 불안한 생각들에 가는 길이 괴로웠다. 몇 번 달려가본 결과 쓰러져서 연락이 안 되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고, 그냥 연락을 일부러 안 받은 거였다. 괜찮은지 확인하고 나면 허무하기도, 화가 나기도 했다. 참고로 내가 살던 집과 그의 자취집의 거리는 1시간 반~2시간이었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내가 이 결혼을 잘 선택하고 준비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결혼을 하지 않아도 될 이유들이 넘쳐났다. 정서적인 교류가 중요한 나에게 그는 함께 가구를 보러 갔을 때 이런 거 혼자 결정도 못하냐는 핀잔을 주기도 하고, 내 마음의 정서그릇을 따뜻하게 채워주지 못했다. 물론 그가 평일에는 일 때문에 야근이 많아 주말에 쉬고 싶었던 것은 안다. 그래서 내가 혼수준비도 스스로 하고 그가 쉴 수 있도록 배려하길 원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주말이라도 만나 결혼 준비 겸 데이트도 하며 알콩달콩 하루를 보내고 싶었고, 서로 원하는 게 달랐다. 결혼 준비를 위해 주말에 만나면, 그는 늦잠 자느라 약속시간보다 훨씬 늦게 나오고 만나면 짜증을 내서 결국 싸우게 되고... 결혼 준비 기간이 참 외로웠다.
결혼 준비하는 동안 많이 싸우면서 결혼을 취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주변에 결혼한다고 다 알리고 청첩장도 찍어놨는데 이제 와서 취소하면 뒷감당을 어떻게 해...’ 주변을 의식하는 시선이 커 생각만으로 그치고 말았다. 이혼보다는 파혼이 더 나았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짐에 다짐을 하며 이 결혼을 했다. 그가 나를 만나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데 내가 도움이 되고 싶었다. 성격적으로, 신앙적으로도. 이렇게 상처 많은 사람을 보듬어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감히 생각했다. 내가 아니면 이런 힘든 사람을 누가 감당할 수 있을까 라는 교만한 생각 말이다. 내 마음이 상처로 너덜너덜해지면서도 내가 시작한 이 연애에 막중한 책임감이 있었다. 누가 그러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에게 결혼은 사명감이었다.
'아무도 다른 누구에게 구원일 수는 없어요.' (김영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中)
구원환상. 이 단어 하나로 나를 설명할 수 있었다. 나만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 스스로 낮았던 자존감을 다른 사람의 인정을 통해 나를 채우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내가 나를 이 정도로 몰랐구나. 헤어짐에 따른 그의 상처와 비난, 주변의 시선, 충족되지 않는 나의 인정욕구들을 직면할 용기가 없었던 결과로 결혼생활 12년이 고통이었다. 그 때문에 내 인생이 상처투성이가 되었다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이 문제를 잘 들여다보면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나로 인해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고 잘못된 선택에 대한 과정과 더 큰 결과를 겪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