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알지 못했던 내 마음
때는 바야흐로 2007년 무렵, 모바일 게임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대학에서 공부했던 전공 분야가 아니어서 아르바이트만 하다가 전공을 살린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마케팅 부서 직원 제의를 받고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경험을 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그를 만나게 된 계기였다.
그는 그 팀의 팀장이었고, 나는 신입사원이었다. 그때의 나는 조교 활동을 제외한 첫 사회생활이었기 때문에 부족했고, 많이 혼나면서 배웠다. 덕분에 일을 잘 배울 수 있었지만, 그의 혼내는 방식이 비인격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에 대한 잘못만 얘기해도 될 텐데, 사람에 대한 비난과 폄하를 일삼았다. 그래서 업무 중에 실수할까 봐 마음 졸이고, 혼나고 나면 화장실에서 혼자 울기도 했다.
호되게 혼난 날은 퇴근 후에 저녁을 사주었는데, 미안함을 돌려서 전하는 그의 방법이었던 것 같다. 여행이 즐거운 건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와 가느냐가 더 중요한 것처럼, 맛있는 메뉴여도 무서웠던 그와 함께였기에 그 자리가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었다. 그때의 나를 떠올려보면 주변 사람들에게 회사에 있는 그 때문에 힘들다고 하소연하던 내가 떠오른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가 싫었다.
회사에서 그가 일하는 걸 보고 있노라면 '왜 저렇게 살까? 불쌍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2-3일 정도씩 밤을 새우면서 무리하게 일을 했다. 어쩌다 한 번이 아닌 자주 반복되는 일이었다. 그에 따른 성과들은 있었지만 본인을 일에 갈아 넣으면서까지 일하는 걸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안쓰럽기도 했다. 지나친 인정 욕구였던 건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일하는 방식이 건강해 보이지는 않았다. 나도 별난 게, 그가 그렇게 싫으면서도 그의 영혼의 곤고함이 느껴지고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그가 나를 대하는 게 친절해졌다고 느꼈다. 말투도 부드러워지고, 덜 혼내는 느낌이었다. 얼마 후에 그가 내가 다니고 있는 교회에 가도 되는지를 물었다. 본인은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었는데 서울로 올라와 직장생활을 하면서 쉬게 되었고, 이번 기회에 다시 교회에 나가보고 싶다는 얘기였다. 속으로는 '오지 마라'였지만, 교회에 와보겠다는 사람에게 오지 말라고 하기가 어려워 한 번 와보시라고 했다.
그 후로 그는 본인의 집과 거리가 있었음에도 내가 다니던 교회에 다니게 되었고,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고백을 했다. 사실 그가 내가 다니는 교회에 왔을 때 주변 사람들이 "너에게 마음 있어서 온 게 아니냐"라고 했었는데, 혹시나 하면서도 아니겠지라는 마음이었다. 부인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나는 그에게 마음이 없었기에 거절을 했다.
일이 많아 야근 후 퇴근을 할 때는 그에게 문자로 퇴근 보고를 했다. 그런데 고백 거절 이후에 문자로 퇴근 보고를 하니 "앞으로는 퇴근 보고는 안 해도 된다"라는 답이 왔는데, 그 문자를 보는 순간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으면서 눈물이 났다. 나 스스로도 의아한 감정이었다. 분명 좋아하는 감정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왜 큰일이 난 것 같은 감정적인 반응이 있었던 거지? 혼란스러웠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잡아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고백을 먼저 거절해 놓고 '지금은 내 마음이 이래요'하는 것도 웃긴 일이었다. 그 무렵 며칠 동안 퇴근 후에 교회에 가서 울면서 기도했다. 왜 내 마음이 이러냐고, 내가 잘못 생각한 거냐고. 계속 이런 마음이면 내가 다시 고백하겠다고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감정의 혼란을 잘 이겨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감정의 원인을 찾아보라고. 타임머신이 있다면 타고 가서 그때의 나에게 그 감정도 곧 지나가는 거라고 알려주었을 텐데... 그때 내 감정이 왜 그랬을까? 정말 좋아했다면 그저 마냥 좋았을 거다. 원인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없기에.
젊은 20대 청년의 시기에 나에게는 기도노트가 있었다. 나와 주변 사람들의 기도제목을 적어두고 기도하는 노트였다. 그중 미래의 배우자를 생각하며 쓴 기도제목도 있었는데, 여러 항목 중에 '흙 속에 진주 같은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듯한 부끄러움이 몰려오는데, 부풀려진 자아 상태가 아니었나 싶다. 드라마나 판타지 장르를 좋아하는 나에게 주인공 병 같은 게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나에게는 상처받은 사람을 보면 도와주고 싶고 마음이 가는 특징이 있었다. 그는 마음의 상처가 깊은 듯했고 도와주고 싶었다. 도와주더라도 굳이 연애라는 방법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나중에 들었다. 내가 마음이 여리고 상처도 잘 받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상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으로 생각해 본 원인은 그때까지 연애의 경험이 없었다는 것이다. 모태솔로였다. 썸이라고 불릴만한 것들이 있긴 했지만, 이런 감정일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없었다. 친한 사람들에게 물어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때의 나는 하나님과 해결해 보겠다고 기도로 끙끙거렸다. 감정에 급급해 잘 모르면서 고집을 부리는 일만큼 답답한 건 없는 것 같다. 감정이 혼란스러웠던 주간을 지나 일요일이 되었다. 그에게 내 감정을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음의 불편함을 견딜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