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
결혼식이 끝나고 눈물을 쏟았다. 절망감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일생 중 가장 행복한 날이었을 텐데, 나도 나의 결혼식이 그러길 바랐는데... 현실은 정반대였다. 결혼식 당일, 새벽부터 분주하게 준비가 시작되었다. 행복하다기보다는 '오늘은 별 일이 없기를 바란다'는 마음이었다.
사건은 결혼식이 끝난 후에 벌어졌다. 결혼식을 마치고 예식장 비용을 정산하고 결제하는 시간, 그와 예식장 직원 사이에 비용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초반 계약에서는 식을 마치며 행진할 때 축포를 터트리지 않기로 했는데, 그가 여러 준비로 바쁜 상황에서 직원이 와서 축포를 추가하겠냐고 물어보았고, 정신없는 상황에서 그가 하겠다고 했던 것이다. 예상 비용보다 많이 나오자 그가 직원에게 따져 물었고, 직원은 그가 수락한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는 그 직원이 일부러 자기가 정신없을 때 와서 말한 거라고 했다. 의도성이 있다고 판단한 그는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그만의 발작 버튼이 눌린 것이다. 옆에서 그를 말렸지만 그는 나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마음속 불안 게이지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결혼식날만큼은 큰일이 없기를 바랐다. 전에도 이런 비슷한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내 그 직원을 건물의 비상계단으로 불러내더니 부하직원 혼내듯 쥐 잡듯이 잡았다. 옆에서 말려도 멈추지 않고 자기의 분노를 쏟아내는 저런 사람과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스러웠다. 결국 눈물을 터트린 그 직원 대신 윗사람이 나와 사과하고서야 그 상황이 끝날 수 있었다.
눈물이 났다. 앞으로 펼쳐질 결혼생활에 대한 염려와 그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었다. 외부 문제는 내부 문제가 되었다. 나는 문제를 크게 만드는 그가 이해되지 않아서 화가 났고, 그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에게 화가 났다. 신혼집으로 가는 길에는 정적이 흘렀다.
살아가면서 문제는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 사실 인생은 문제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문제를 어떻게 다루며 사느냐가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한다. 나는 그가 문제를 만났을 때 이성적으로 잘 대처하기를 바랐지만, 그는 내가 자기편을 들어주지 않는 것이 서운했고, 서운함이 화가 되었고, 나에게 쏟아지는 분노가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향하는 분노가 결국 나를 향하게 된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결혼 후 알게 된 진실
결혼을 하고 얼마 후 시댁어른들께 인사드리러 기차를 타고 이동하던 때였다. 결혼 전에 서로의 재정상태에 대해 투명하게 이야기 나누고 싶어서 물어봤을 때 얼버무리며 정확히 얘기해주지 않아 답답했다. 그런데 이제 결혼을 했으니 얘기해도 괜찮다고 생각한 건지 빚이 있다고 했다. 얼마냐고 물어보니, 1200만 원이라고... 머리를 큰 망치로 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다. 배신감이 몰려왔다. 결혼 전에 알았으면 그 부분에 대해 나도 고민할 시간이 있었겠지만, 그런 시간을 주지 않고 결혼했으니 어쩔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것에 화가 났지만 스스로 마음을 다독였다.
그의 얘기를 들어보니 결혼할 돈이 없어 부모님께 도와달라고 했지만 도와주지 않으셨고, 마이너스 통장을 발급받아 그 돈으로 결혼준비를 했다는 얘기였다. 시아버지가 보증을 잘못 서서 갚을 수 있도록 도와드리기도 했다고 했지만, 평소 씀씀이가 큰 편이었다. 7살이라는 나이 차이가 있었기에 당연히 모아둔 돈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라면 사건
나는 결혼을 몇 달 앞두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일이 많아서 야근하기 일쑤였고, 결혼 준비하기에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심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는 결혼 전에 제법 큰 모바일게임 회사의 운영팀으로 이직을 했고 적응하느라 애쓰는 시기였다. 집과 직장의 거리가 멀어서 왕복 2~3시간은 족히 걸렸고 야근이 많아 집에 오면 밤 11시, 12시였다. 외벌이로 가장의 역할을 감당하는 그가 안쓰러워 잘 챙겨주고 싶었고, 힘든 마음을 잘 다독여주고 싶었다.
하루는 야근을 하고 와서 배가 고프다고 해서 라면을 끓여주었다. 그의 건강을 생각해서 라면 스프를 다 넣지 않고 조금 빼고 넣었다. (결혼 전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엄마의 영향으로 그렇게 먹었었다) 그가 한 젓가락 먹어보더니 라면이 왜 이렇게 싱겁냐며 화를 냈다. 건강 생각해서 라면 스프를 조금 빼고 끓였다고 했더니, 맛이 없다며 싱크대에 라면을 쏟아 버렸다. 맛이 없을 수 있고, 그래서 기분이 안 좋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를 생각하며 정성껏 끓인 라면을 버려버리는 그 행동은 마치 내가 버려진 그 라면이 된 것 같았고 모욕적이었다. 내가 그 정도로 잘못했나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도 어떻게 라면을 버릴 수 있냐고 했더니 그런 걸 어떻게 먹냐고 대답했다. 더 이상 대화할 수 없었다.
결혼 후 첫 번째 폭력
야근을 하고 늦은 귀가를 했던 어느 날, 그는 너무 피곤했는지 좁은 거실 겸 방에서 씻지도 않고 잠이 들었다. 양치질도 안 하고 자면 이가 썩겠다는 생각에 걱정이 되어 잠을 깨웠다. 그랬더니 갑자기 "피곤해 죽겠는데 양치질하라고 깨우냐"며 의자를 발로 차고 머그컵을 벽에 던져서 깨면서 극도로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 거친 말과 함께 의자의 팔걸이가 부서지고 벽에는 컵이 깨지면서 움푹 파인 흔적을 남겼다.
결혼 후 처음으로 마주한 그의 폭력적인 모습이었다. 방 하나에 거실 겸 방인 오피스텔에서 신혼집을 시작했기 때문에 미닫이문으로 분리된 방(미닫이 문이 유리로 되어있어 완전한 분리라고 보기 어려웠지만)에 들어가 무릎을 세워 끌어안고는 흐느껴 울었다.
끝없는 어두움에 내던져진 기분이었고 무서움을 뛰어넘는 공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