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없는 연애

착한사람 컴플렉스

by 히힛


일요일, 교회 예배를 마치고 그와 따로 만나기로 했다. 근처 카페에 앉아 지난 일주일 동안 내가 느낀 감정들에 대해 그에게 털어놓았고, 그날부터 우리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26살, 인생의 첫 연애였다. 그래서 잘 몰랐고, 그래서 연애에 대한 환상도 많았다.


연애 초반엔 좋았다. 아마 그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자상했고, 세심하게 챙겨주는 사람이었다. 연애 전부터 그에게 상처가 남다르다는 걸 느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마음 속 상처의 조각들을 하나씩 보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사소한 일로 자주 다투었고, 다툼은 감정적으로 격해지곤 했다. 연애란 원래 이런 건가 싶다가도, 주변을 보면 다투기는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우리는 참 다양한 주제로 싸웠다. 정치, 종교, 생활… 그런데 가장 힘들었던 건 그가 화를 낼 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과하게 반응한다는 것이었다. 화가 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일로 이렇게까지 화를 낼 일인가?’ 싶을 때가 많았다.


한 번은 종로3가에서 영화를 본 날이었다.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서울극장과 피카디리극장이 나란히 있던 때가 있었다. 피카디리에서 영화를 보고 나와 골목길을 걷는데 무슨 일로 다퉜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둘 다 몹시 감정이 상한 상태였고, 비까지 내려 골목마다 물웅덩이가 가득했다. 말다툼을 하던 중, 갑자기 그가 물웅덩이를 발로 '쾅'하고 세게 밟아 나에게 일부러 물을 튀겼다. 화났다는 감정을 그렇게 표현하는 그의 행동은 내겐 큰 충격이었다. 다 큰 어른이, 그것도 여자친구에게 그런 식으로 화를 표현하다니. 그 누구에게도 겪어본 적 없는 일이었다. 나는 화가 난 상태로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주말이라 사람이 많았고, 버스 안에서 누가 볼까 싶은 마음에 숨죽여 울었다. 그를 만나는 것이 힘들었다. 연애가 이렇게까지 고된 일인가.


그에 대해 알게 된 특징 중 하나는 ‘많이 먹는다’는 점이었다. 먹는 양도 많고, 횟수도 많았다. 퇴근 후 함께 저녁을 먹고 후식을 먹고 나면, 나는 더 이상 먹을 수 없는데도 그는 배가 고프다며 또다시 밥을 먹자고 했다. 무슨 밥이냐고 해도 배가 고프니 먹어야겠다고 했다. 한숨이 나왔지만, 싸우기 싫었고 그에게 맞춰 한식메뉴를 파는 식당에 들어갔다. 나는 배가 불러 안 먹겠다고 했고, 그는 혼자 1인분을 주문했다. 그런데 주문한 메뉴가 2인분 이상만 주문 가능한 것이었고, 직원이 안된다고 말하자 그는 큰 소리로 화를 내며 항의했다. 나는 그를 말렸지만 오히려 그의 분노를 더 자극하게 되었다. 식당 안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를 향했고, 자리를 피하고싶을 정도로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는 끝내 화를 내며 식당을 나갔고, 나는 울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뒤따라 나섰다. 바로 옆 테이블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같이 있는 여자가 불쌍하다.” 그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마음이 괴로웠지만, 내 모습이 불쌍해보였다는 사실이 슬펐다. 밖으로 나와서도 그는 여전히 화가 나 있었고, 나는 그런 일로 화내는 그의 태도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결국 그로부터 ‘왜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느냐’는 말이 돌아왔고, 나는 계속해서 갈등을 만드는 그가 이해되지 않아 또 싸움이 되었다. 외부의 문제가 내부의 갈등으로 번졌다.


그는 억울한 일이 생기면 늘 격하게 반응했고, 모르는 사람들과 다투는 일이 잦았다. 나는 웬만하면 싸움을 피하는 성격이라 그런 모습을 보는 게 괴로웠다. 나중에는 그가 누군가와 트러블이 생겨 이야기를 해도 연애 초반처럼 공감해주기 어려웠다. 그러면 그는 또 ‘내 편을 안 들어준다’며 심한 화를 냈다.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가 다른 사람에게 화내는 모습을 볼 때 ‘저 화살이 언젠가 나를 향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어리석게도 시간이 지나면 그가 괜찮아질 거라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나아지지 않았고, 그 모든 건 시작에 불과했다.


한 번은 연애 중에 내가 너무 힘들어서 ‘시간을 좀 가지자’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대답도 안하고 일어나 나가버리는데, 나는 상처받았을 그가 마음에 걸려 결국 그를 붙잡았다. 지금 생각하면, 왜 나는 항상 타인의 상처에는 그렇게 민감하면서, 나 자신이 입고 있는 상처에는 무뎠던 걸까? 나는 나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 타인의 마음에만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걸 채워주려 애쓰는 삶. 나는 나를 사랑하지 못했구나. 그저 타인에게 ‘착한 사람, 좋은 사람’이고 싶었던 거다. 그때, 정말 시간을 가지며 멀어졌다면 좋았을 텐데. 뒤늦게 그런 후회를 한다.


그렇게, 1년 11개월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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