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고의 순간

해피벌스데이 투유

by 히힛


예정일 하고도 3일이 지난날, 그와 집 근처 공원으로 나갔다. 5월 중순의 공원은 많은 사람들로 활기찼고, 하늘은 파랗게 예뻤다. 공원을 돌며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출혈이 생길까 봐 활동이 부담스러웠다면, 이제는 걱정하지 않고 걸을 수 있어 좋았다. 천천히 공원을 걸으며 잔디밭에 돗자리 깔고 소풍 나온 사람들도 보고, 새소리도 듣고, 나무와 호수를 보며 아름다운 자연을 감탄했다.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언제 또 그가 화낼지에 대한 불안감은 항상 있었다. 1시간 넘게 걸으니 피곤이 몰려와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누워서 쉬는데 갑자기 출혈이 시작되었다. 출혈이 있으면 병원에 오라고 했기에 병원 갈 채비를 급하게 하고 병원에 가니 입원절차가 시작되었다. 팔에 링거를 맞고 누워있는데 진통은 감감무소식. 유도분만을 하기로 하고 촉진제를 맞았다. 저녁부터 약한 진통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어? 진통 별거 아닌데?’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진통의 강도가 점점 세졌다. 처음 느껴보는 고통의 종류였다. 지금까지 느껴본 아픔들과는 달랐다. 이렇게도 아플 수 있구나 싶었다. 무통주사를 맞고 싶었으나, 밤 시간에는 마취과 선생님이 안 계셔서 무통주사를 맞을 수가 없었다.


깊은 밤을 지나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기나긴 새벽을 맞이했다. 진통이 심해지니 내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너무 아프다고 얘기했을 때 처음에는 잘 들어주다가 시간이 갈수록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새벽이니 당연히 졸렸겠지만 나는 아파서 잠도 못 자는데, 깨워도 자고 깨워도 자는 그의 모습에, 나만 이 고통을 겪는 것 같아 억울했다. 한 공간에 같이 있는데도 외로웠다.


아침이 되어 마취과 선생님이 오시고, 무통주사를 맞기로 했다. 출산 전에 무통주사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사람에 따라 약물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 했고 지인 중에는 무통주사를 안 맞고도 낳은 사람들도 있어서 안 맞아볼까 싶기도 했지만, 아픈 걸 유독 못 참는 나였기에 맞기로 했다. 척추에 주삿바늘을 넣는다는 사실이 두렵기도 했지만 진통의 아픔이 더 컸기에 주사에 대한 무서움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무통주사를 맞고 시간이 지나자 언제 아팠냐는 듯 정말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왜 사람들이 무통천국이라고 하는지 알겠더라. 개인차가 있다고 하는데 나는 무통천국은 약 3시간 정도였다. 안 아프다가 진통의 강도가 더 세지니 더 견디기가 어려웠다. 자궁경부가 열리는 속도가 느려 오래 진통해야 했다. 다시 찾아오는 극심한 통증에 또 한 번, 그 후에 또 한 번 맞아서 총 3번의 무통주사를 맞았다. 간호사님께 더 맞을 수 없냐고 물어보니 3번이 맞을 수 있는 최대치라고 하면서, '안 아프게 낳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아이를 건강하게 낳는 것이 목표'라고 단호하게 얘기해 주셨다. 그 말을 들으니 맞는 말이다 싶으면서도 고통이 심하니 크게 와닿지 않았다.


진통 주기에 따라 호흡을 하면서 아랫배에 힘을 줘야 하는데, 아프니 호흡도 어렵고 힘을 주는 것도 어려웠다. 산모교실에서 호흡법을 배웠지만, 실전에선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꼬박 하루를 진통하면 제왕절개 하자는 이야기를 할 법도 한데, 의사 선생님은 조금 더 기다려보자고 얘기하셨다. 결국 힘을 잘 못 주자, 진통이 올 때 간호사 분들이 배를 누르며 밀어내도록 도와주셨고 결국 수술하지 않고 아이를 낳았다. 힘들었지만 끝까지 기다려주신 의사 선생님께 감사하다.


“으아아앙! 으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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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9일 저녁. 분만실에 우렁찬 울음소리가 퍼졌다. 아이를 낳고 나면 눈물을 펑펑 쏟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눈물이 나지 않았고, 눈으로 사진을 찍듯 그저 아이의 동선을 눈으로 좇기에 바빴다. 마침내 아이를 내 품에 안겨주셨다. 이렇게 작디작은 아이가 내 뱃속에 있던 아이라니! 아이를 안아주며 마음속으로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분만실 조명에 아이가 눈이 부신 것 같아서 손그늘을 만들어 가려주기도 했다. 생각보다 아이는 쪼글쪼글했고, 내가 상상하던 얼굴과 달라 살짝 당황스럽기도 했다. 10달 동안 보고 싶던 아이를 현실에서 마주할 수 있음에 감격하고, 감동했다.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가진 뒤에 아이는 신생아실, 나는 휠체어를 타고 병실로 올라갔다. 아이가 너무 보고 싶었지만 병실에서 지낼 준비를 했다. 자연분만임에도 불구하고 소변줄을 끼웠고 움직일 때마다 출산 부위가 많이 아팠다. 쉬면서 휴대폰으로 지인들에게 출산 소식을 알리고 축하를 받으며 출산의 기쁨을 나누었다. 그러다 문득 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이 힘들고 아픈 과정을 거쳐 아이를 낳고 키워서 사람을 만들었을까. 그리고 들었던 생각은, '둘째는 없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숨을 쉬면 갈비뼈 부분이 아팠다. 크게 숨 쉴수록 더 아팠다. 알고 보니 출산과정에서 간호사분들이 내 배를 강하게 누를 때 갈비뼈에 금이 간 것이었다. 갈비뼈에 금이 갔으면 아팠을 텐데 진통이라는 고통이 너무 크니 알 수 없었다. 별다른 치료법이 없기에 자연적으로 갈비뼈가 다시 붙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크게 숨을 쉬거나 웃을 때도 아팠다. 나 아픈 거 정말 싫어하는데... 다 나을 때까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아이를 보러 신생아실로 갔다. 유리창 안쪽으로 많은 아기들이 있었고, 곧 드림이를 유리창 앞으로 데려다주셨다. 내가 아이를 낳았다는 게 믿기지 않았고 신기해서 가만히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자면서도 울려고 얼굴을 찡그리기도 하고 다채롭게 변하는 표정을 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차올랐다. 부모가 된다는 건 이런 기분이구나. 경험해보지 않고는 절대 몰랐을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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