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예민보스 아기라니

by 히힛

출산 후, 2박 3일 병원 생활이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

여전히 출산부위는 아프고 갈비뼈도 아픈데 퇴원이라니... 믿기지 않았지만 퇴원 수속을 마치고, 조리원으로 향했다. 사실 조리원을 갈 수 없었던 상황이었는데 친정엄마가 조리원 비용을 물어보시며 도와주시겠다고 하셨다. 전에 경제적인 큰 도움을 받아서 말할 생각도 못했는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엄마에게, 하나님께 감사했다. 어려울 때 받았던 그 은혜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나도 내 딸이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도울 수 있는 능력이 있기를 소망해 본다.


조리원에 들어가니, 여기가 원래 내 방이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아늑해서 좋았다. 들어가서 첫날, 자려고 누웠는데 방문 밖에서 아기 우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어떤 아기가 새벽까지 계속 우나 했는데 새벽에 일어나 모유 유축 한 걸 신생아실에 갖다 주러 가서 조리원 선생님께 얘기를 들어보니 밤부터 새벽까지 내내 울던 아이는 바로 우리 집 아기였다. 이럴 수가! 예민보스 아이가 태어났다.


조리원 선생님은 "혹시 아기가 힘들게 태어났나요?" 물으셨고, 나는 "하루를 꼬박 진통하고, 힘을 잘 못 줘서 간호사분들이 배 누르면서 도와줘서 낳았어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힘들게 태어난 아이일수록 많이 안아줘야 해요."라고 하시면서 아이를 안아서 등을 토닥토닥 해주셨다. 아이도 편안해 보였고, 그 모습을 보며 좋은 조리원 선생님을 만날 수 있어 감사했다.


아기가 조그마하니 안으면 부서질까 조심스럽고, 안고 있다가 떨어뜨리면 어쩌나 별의별 걱정이 다 들었다. 엄마라는 역할이 처음이니 모든 게 서툴고 어색했다. 익숙하지 않아 더 힘들게 느껴졌다. 그래도 조리원 선생님들이 계셨기에 본격적으로 육아방법을 배워나갔다. 기저귀 가는 방법부터 모유 먹이는 법, 모유 유축해서 젖병에 먹일 때 어떻게 하면 공기를 덜 들어가게 먹이는지, 트림을 어떻게 시켜야 하는지, 아기를 잘 안는 방법 등 육아의 최전선에 뛰어들기 전에 기초를 다지는 시간이었다.

새벽에도 수유가 있고 미리 유축도 해놓아야 해서 피곤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조리원에 있을 수 있어 좋았다.

아이를 낳아놓고 어찌 편하기만을 바라랴. 아이가 없어서 마음 고생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도 사치였다. 몸이 고되고 힘들어도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삶에 새로운 희망이 생긴 기분이었다.


조리원 생활 중 병원에 들러야 할 일이 생겼다. 그가 빌려온 봉고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편하게 병원에 데려다주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은데, 솔직하게 택시를 타고 마음 편하게 가고 싶었다. 운전도 처음이고 그가 예민해질 상황이 뻔히 예상되어서 긴장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도로를 주행하며 예측할 수 없는 상황들에 그는 예민해질 데로 예민해져 버렸다. 그의 짜증의 화살이 결국에는 옆에 있는 나를 향하게 되고, 그동안의 일들이 있었기에 나는 본능적으로 불안해졌다. 그가 화내는 상황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기에 의식적으로 그의 편을 드는 말을 하거나, 다른 사람은 의도가 그런 것이 아님을 대변했다. 그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싶지 않았다. 운전도 고비였고, 주차도 고비였다.


임신 기간에 그는 자기 사업을 위해 차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그는 차를 사기엔 세금의 부담이 있으니 렌트를 하자고 했다. 여러 자재를 싣기 위해서는 트럭이 괜찮지만 아기도 태어났으니 짐도 실을 수 있는 카니발로 하자고. 다달이 내는 금액을 확인하니, 월 70만 원이 넘는 금액이었고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그 금액은 무리라는 판단이었다. 나는 "비용이 너무 비싸고 감당이 안될 것 같다."라고 하니 그는 "그럼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라며 화를 냈다.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고, 본인 뜻대로 안 하면 또 난리 날 것을 알기에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


문제가 2가지 생겼다. 하나는 운전면허를 따고 나서 차를 렌트하려면 1년 뒤에나 가능하다는 사실이었고, 다른 하나는 카드돌려막기 사건 후 그의 이름으로 다 갚지 않은 부채가 있었기에 신용불량자가 되어 렌트차 계약을 할 수 없었다. 렌터카 업체 중 운전면허를 취득한 지 1년 미만도 계약해 주는 업체도 있었는데 대신 렌트비용이 비싸다는 단점이 있었다. 결국 그의 사업자등록증에 내 이름을 공동대표로 올리고, 렌터카 계약은 내 명의로 하게 되었다. 자의는 아니었지만, 상황상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내 명의로 한다는 게 책임을 지는 자리에 앉는 것 같아 탐탁지 않았다. 그는 본인의 사업을 준비하는 일에 몰두되어 있었고, 다른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결혼생활을 유지해야 한다면 그가 최대한 화내지 않도록 그의 의견에, 기분에 맞추려고 노력해야 했다. 사소한 일에 짜증내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때문에 그가 폭력적으로 되는 상황을 막고 싶었다. 그가 돌변하는 것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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