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고보니

육아가 이렇게 힘든 거였어?

by 히힛


조리원 2주 생활을 마치고 친정에서 몇 주 더 시간을 보내며 산후조리를 하기로 했다. 본격적인 육아의 시작이었다.

아이는 사랑스러웠다. '이 작은 얼굴에 어떻게 눈, 코, 입이 다 들어가지?' 싶은 생각이 들었고, 인형 같은 손, 발을 보면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그 순간만큼은 마음속 모든 근심이 사라지는 듯했다. 아이의 얼굴은 태어났을 때에 비해 조금씩 변해갔다. 제법 사람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아이를 눈앞에 보고 있으면서도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누구 엄마라는 단어가 아직 어색하기도 했다. 내가 엄마가 되다니!


아이가 사랑스러운 것과는 별개로 나의 고난도 결혼생활에 고난도 육아생활이 더해졌다.

3~4시간 텀으로 수유를 해야 하니 밤에도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자니 예민해지고 짜증이 많아졌다. 친정엄마가 육아를 보조적으로 도와주시기는 했지만, 그래도 할 일이 참 많았다. 내 중심으로 삶을 살다가(사실 그 중심으로 살다가) 아이를 낳고 나니 삶의 중심이 아이에게 옮겨지고 있었다. 친정에 온 며칠 뒤부터 갑자기 아이의 밤낮이 바뀌었다. 밤부터 새벽까지 안 자고 울기도 많이 울고 아침 7시에 잠들고 그랬다. 그럼 나도 그때 잠을 자기 시작해서 아이가 깨면 일어나야 했다. 밤낮이 바뀐 상태로 쪽잠을 자는 생활이 1~2주 반복되니 스트레스가 심해지며 몸도 마음도 힘들었다. 엄마라는 역할이 처음이라 모든 게 서툴렀다.


밤에 잠도 안 자고 울면 먹여야 하나,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나, 심심한 건가, 어디가 아픈 건가 체크를 해보는데, 다 해줬는데도 울면 원인을 모르는 답답함에 화가 났다. 나중에는 아이의 울음소리만 들어도 화가 치솟고 아이를 던지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했다. 아이를 간절히 원했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에게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그런 무서운 생각을 한 나는 자괴감과 죄책감에 허덕였다. 아이를 돌보느라 정작 나를 돌보지 못해 위험신호가 켜졌다.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몰랐을 감정이다. 엄마가 된다는 건, 극한의 감정도 느껴보고, 내 마음의 바닥도 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란 사람에 대해 알아가고 한 사람으로서 성숙해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그때 조금 더 나은 대처를 할 수 있었을까? 그러면서 문득 든 생각은 아이 기질마다 더 힘들고, 덜 힘들고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들 이런 과정을 거쳐 아이를 키운다는 사실이었다. 낳는 과정, 키우는 과정을 잘 견뎌낸 이 땅의 모든 부모님들이 존경스럽다.


친정에서 몇 주 지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날.

육아 스트레스로 힘들었지만 그나마 친정에 있으면서 그와 부딪히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친정에 데리러 온 그를 마주하니, 오늘은 별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저절로 들었다. 운전면허를 딴지 얼마 안 된 그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는데 나뿐 아니라 아이도 함께 있었기 때문에 사고가 나지는 않을까 긴장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마음 졸이며 차를 탈 바에는 차라리 마음 편히 택시 타고 가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독박육아로, 그는 일에 대한 구상으로 각자 분주한 삶을 살았다. 그는 인테리어 사업이 하고 싶었으나, 상가를 얻거나 당장 사업을 진행할 자본이 없었기에 집수리를 해주며 돈을 모으기로 했다. 홍보할 전단지를 만들고, 돌아다니며 전단지를 붙이고 다녔다. 전단지를 보고 일이 몇 건 들어왔으나,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았기에 일을 해도 고민이었다. 돈을 벌어도 사업자금을 모으기는커녕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어려웠다. 월세에 렌터카 비용에, 규모가 큰 고정지출이 많았다. 수입은 아주 적은데 지출이 많으니 매달 마이너스 신세였다. 보험을 담보로 몇 백만 원 대출을 받기도 하고, 그럼에도 그 상황이 길어지니 빚은 늘어만 갔다.


그에게 매일같이 추심전화가 걸려왔다. 그 전화를 받고 나면 그의 예민함이 올라감을 알기에 혼자 조마조마 마음을 졸이며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추심전화를 내가 받은 것은 아니나 그 부담감은 나에게도 동일했다. 빚 독촉에 매달 마이너스인 상황을 맞닥뜨리니 괴로운 나날이었다.


무엇보다 태어난 아이에게 이것저것 해주고 싶은데 꼭 필요한 것을 사야 할 때도 사고 싶은 것보단 가격비교 후 저렴한 것만 사게 되었다. 아이를 보는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했으나,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그는 사업을 유지하려 몇 달을 버텼지만, 일단은 먹고살아야 하니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나가기로 했다. 쉽지 않은 결심이었을 텐데 그런 결정을 해주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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