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 집안환경이 중요하구나
그와 미처 풀지 못한 감정은 냉랭한 분위기로 티가 났다.
“너네는 왜 이렇게 잘 싸우냐?” 시어머니가 한마디 하신다.
‘아들 성격 모르시나요? 아시잖아요.’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그는 삼 형제 중 첫째이다. 삼 형제가 시아버지를 대하는 방법이 달랐다. 시아버지가 계신 방에는 신기하게 그가 들어가지 않는다. 반대로 막내 도련님은 방에 들어가 시아버지와 곧잘 대화를 했다. 삼 형제 중 가장 부모님과 관계가 소원한 것이 그였다.
그는 싸움의 끝에 항상 그것과 상관없는 자기 어린 시절에 상처받았던 얘기를 했다. 여러 번 들었던 터라 대략적인 내용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가 어렸을 때, 박카스가 먹고 싶었다. 사 먹을 돈이 없었는데 어느 날, 아버지 호주머니에서 오백 원을 훔쳐서 박카스를 사 먹었다고 한다. 나중에 돈이 없어진 걸 아신 그의 아버지는 그가 아닌 다른 동생이 가져갔다고 생각하고 혼내고 있었다. 그는 그 장면을 목격하고선 자기가 가져갔다고 고백할 용기가 안 났다고 했다. 결국 그가 가져갔다는 걸 알고 쫓아오는 아버지가 무서워 도망갔다. 시골이라 논과 논 사이의 길(길과 논의 높이차가 컸음)로 무작정 뛰는데 도망가다가 결국 아버지에게 붙잡혔고, 아버지는 그를 논바닥으로 던졌다. 그 당시 논은 추수를 끝낸 후라 낫으로 벼를 베서 벼의 밑동이 날카롭게 있던 상태였다. 논바닥에 등으로 떨어졌는데 순간 숨이 안 쉬어졌다고 했다. 죽음의 공포를 부모로부터 경험한 것이다. 자주 그 얘기를 하면서 울었다. 몸은 어른이지만 그는 그 시절 어린아이로 남아있는 듯했다.
시아버지는 폭력적이었고 대상은 주로 시어머니였으며 그다음은 삼 형제였다. 시아버지는 주방칼을 휘돌러 시어머니를 다치게 한 적도 있고, 배울 게 있는 형들과 놀아야지 나이가 어린 친척동생과 놀았다고 논리로 그를 집까지 질질 끌고 가서 매타작을 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억누르기만 하다가 감정을 표현 방법을 배우지 못하니, 어른이 되고 나서는 부정적인 감정이 건드려졌을 때 제어가 되지 못하고 폭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은 그를 다독이며, 위로했다. 옆에서 그의 상처를 잘 보듬어주고 싶었다. 그러면 언젠가는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몇 해 전, 시아버지께서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임신 중이던 나는 시아버지의 수술과 항암 치료 과정을 가까이에서 함께하지 못했다. 몸이 좋지 않아 병문안도 몇 번 가지 못했고, 결국 아이를 낳기 전 시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다.
장례식장에도 친정 식구들의 도움을 받아 먼 길을 이동해 잠시 다녀올 수밖에 없었다. 맏며느리로서 끝까지 자리를 그때 나 대신 여러모로 애써준 동서들에게는 고마운 마음이다.
그와 나이차이가 큰 탓에 며느리들 중에 내가 나이가 가장 어렸고, 그릇이 작은 나로서는 맏며느리로서의 자질도 부족했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그 자리가 불편했다.
한 번은 시댁에 아무것도 안 사서 내려갔다. 무얼 사서 내려갈지 그와 상의가 안되고 그 얘기하다가 다툼이 생겨서 뭘 사가자고 얘기하지 않게 되었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한몫했다. 시댁에 도착해서 필요한 걸 근처 대형마트에서 사 오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채소를 다듬고 계셔서 도와드리려 앉자마자 대뜸 나에게, “아니 너네는 엄마 보러 오면서 요구르트 한 줄도 안 사 오냐! 예전에 둘째가 집에 빈손으로 와서 쫓아냈더니 그 뒤로는 뭐라도 꼭 사들고 오더라. 나는 애들 그렇게 교육시켰어~!” 하시는 게 아닌가. 그와 사이도 안 좋은데, 시댁에 와서 이런 말을 들으니 그곳이 편할리 없었다. 순간 “집에 올 때 뭐 안 사 와도 된다.”는 친정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시어머니가 그렇게 얘기해서 서운했다고 그에게 감정을 내비쳤다. 그때부터 내가 시댁 오는 걸 싫어해서 잘 안 오려고 하는 거라며, 언성을 높이며 짜증의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이 짜증의 끝이 어떨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조절되지 않는 분노가 그에게서 터져 나왔다. 아이가 놀라지는 않았는지 살폈다. 국도를 지나는 길이었다. 갑자기 갓길에 차를 세우더니 문을 열고 운전석 뒤에 앉은 내쪽 문을 열었다. 그가 내리라고 위협을 했지만 내리지 않았다. 국도에서 내리면 히치하이킹 말고는 집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었다.
그러자 안전벨트를 억지로 풀더니 내 왼팔을 세게 잡고 힘으로 끌어내렸다. 무게중심이 갑자기 기울자 엉덩방아를 찧으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내 옆으로는 도로를 쌩쌩 달리는 차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조금만 더 멀리 떨어졌으면, 큰 사고가 났을 수도 있었다. 아찔했다. 그 짧은 순간에 아이를 데리고 아이 짐가방을 들고 그 길로 그와 떨어져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현실적으로 집으로 가기 위해선 일단 차에 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무너지는 마음을 부여잡으며 차를 탔다.
그가 힘주어 잡았던 왼팔에 멍이 들었다. 서러웠다. 살면서 누구도 나에게 이렇게 대한 사람이 없는데, 나를 막 대하는 사람이 남편이라는 것이 나에게 너무도 깊은 상처였다. 그의 어린 시절 깊은 상처로 인해 마음이 고장 난 것에 대해서는 불쌍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와 상관도 없는 과거 때문에 내가 영향을 받는다니 억울했다. 그의 과거를 이해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 상황을 합리화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