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가정을 지키고 싶었어

버텨내기

by 히힛


결혼 생활 동안, 무수히 많은 물건들이 부서져나갔다. 침대 헤드부터 티브이 여러 번 부수고, 거실등 부수고, 테이블 여러 번 부수고, 식탁 부수고… 손에 잡히는 걸 다 집어던지니 부서지지 않아도 성한 가전이나 가구가 별로 없었다. 그는 어린 시절 상처가 깊은 사람이었고, 내가 옆에서 그 상처를 잘 보듬어주면 그가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그의 폭력의 수위가 높아졌다. 언어적인 폭력에서 물건을 던지거나 부수는 폭력, 신체적인 폭력으로 발전해 나갔다. 아이가 있으면 더 조심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는 바뀌지 않았다. 바뀌지 않는 환경에서 아이까지 있으니 나의 불안이 2배가 되는 느낌이었다. 아이에게도 그럴까 봐.


그날은 정확히 어떤 이유였는지는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화가 나서 본인이 나무합판으로 직접 만들었던 소파 테이블을 부쉈다. 그래도 분에 풀리지 않는지 그는 부서진 테이블 다리를 잡고는 치켜들더니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아이를 안고 앉아있는 내 머리를 치려고 했다. 그때는 저항의 의지가 없었고 ‘칠 테면 쳐라.’의 자포자기 심정이었다. ‘병원 가겠구나.’라고 생각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우려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이 사람과 있으면 맞아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은 떨칠 수가 없었다.


다니던 교회에서 전교인 수련회가 열렸다. 장소는 강화도였고 그는 일을 해야 해서 참여하진 않고 끝나고 데리러 오기로 했다. 그는 그 당시에 건설현장 일용직 이후 한 업체의 배송을 개인 차로 하는 일을 시작했다. 새벽배송까지 하게 되면 잠이 부족해 더 예민해졌다. 수련회가 끝나고 한참 뒤에 그가 도착해서 보니 많이 피곤해 보여 오늘은 별일 없을지 걱정이 되었다. 목적지는 집이 아닌 송도였다. 큰 마음먹고 외부로 나온 김에 짧은 1박 2일의 휴가를 송도에서 보내기 위함이었다.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강화도에는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많았고 다리를 건너기 위해 정말 많은 차량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결국 강화도를 빠져나오는데 5~6시간이 걸렸고 시간이 지날수록 예민해지는 그를 보며 나도 예민해졌다. 오후에 출발했는데 저녁이 되어 호텔 체크인이 늦을 것 같다고 내가 이동 중에 전화했다. 그런데 그게 발단이 되어 그는 그렇게 전화하면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는데 왜 전화하냐며 언성을 높이며 짜증내기 시작한 것이다. 말을 주고받을수록 그의 분노의 감정이 커졌다. 갑자기 차를 멈추더니 내리라며 협박을 했다. 내리지 않으면 나에게 어떠한 위해를 가할지 몰랐기에 아이가 걱정이 되었지만 내 가방만 챙겨서 내렸고, 그는 내가 내리자마자 차를 운전해서 가버렸다. 처음 맞닥뜨린 상황에 순간 멍했다. 저녁에서 밤으로 향하는 시간이었고 가로등이 드문드문있어 어둑한 골목에서 지금 내가 어떤 상황인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에 빠졌다. 체크인하기로 한 호텔에 혼자라도 가서 시간을 보낼까 싶다가도 그와 함께 있는 아이가 걱정되어 그럴 수가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분노가 차올랐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부재 끝에 그가 전화를 받았다.


"왜 전화 안 받아 어디야!"

"이미 가고 있는 중이라 차 못 돌려."

"차 빨리 돌리라고!!!"


미친 사람처럼 휴대폰을 잡고 소리를 질렀다. 배신감을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 와본 송도에 혼자 남겨진 기분은 참 막막했다. 별 거 아닌 일이 왜 이렇게 크게 끝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나만 생각할 것인가 아이를 생각할 것인가 잠깐 고민하다가 아이를 선택했다. 이 기분으로는 집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아이를 보러 가기로 결정했다. 아이에게는 별 일이 없을지 걱정이 되었다. 휴대폰 지도앱을 켜서 내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 확인했다. 집까지 어떻게 갈 수 있는지 보니 지하철이 가능했다. 그런데 거리가 끝과 끝이라 2~3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저녁도 못 먹어 배가 고팠지만,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지하철이 끝기기 전에 도착해야 했다. 아이가 괜찮은지 확인하는 게 우선이었다. 가는 내내 불안함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지하철 안에서 호텔에 예약 취소를 하고 나니 아무것도 못해보고 돈만 날려 허무했다. 그 돈이면 생활비에 보태서 썼을 텐데, 너무 아까웠다.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에 집에 도착했다. "엄마!" 하며 나를 반기는 아이를 보니 불안했던 마음은 내려갔지만, 그를 보니 분노가 다시 차올랐다. 아이가 있으니 친정 말고는 아이를 데리고 며칠 나가있을 만한 곳이 없어 답답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는 배가 아프다고 했다. 처음에는 찜질도 해주고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많이 아프다고 했고, 집 근처에 있는 큰 병원 응급실로 갔다. 여러 가지 검사를 했는데 별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아 다시 집으로 왔다. 병원을 다녀왔으니 쉬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배가 더 아프다고 했다. 아이 보랴 그를 챙기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는 몸이 아프니 더 예민해졌고,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그의 심기를 건드린 것 같았다. 아파서 누워있으면서도 소리를 지르며 내가 있는 쪽으로 물건을 던져서 깨뜨리고 “썅 X”이라는 욕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내가 왜 그런 욕을 들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고, 나를 막 대하는 그가 용서되지 않았다. 그는 아파 죽겠으니 빨리 119에 전화하라며 욕을 해댔고, 그게 괘씸해서라도 안 해주고 싶었다. 119에 전화한 후 시간이 지나고 구급대원 분들이 오셨다. 현관문 앞에 그가 던져서 깨진 것들이 그대로 있어서 민망했다. 구급대원분들이 그를 간단하게 체크한 뒤, 들것에 실어 나갔다. 그가 간 뒤 물건이 깨져 어지럽혀진 집을 치우기 시작했다. 치우는데 마음이 참 슬펐다.


얼마 뒤에 낮에 갔었던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그가 충수염이고 바로 수술을 진행해야 하는데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니 빨리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한밤 중이라 아이는 잠이 들어있었고, 그의 만행들을 생각하면 가고 싶지 않았지만 수술을 빨리 진행해야 한다고 하니 잠들어있는 아이에게 두꺼운 옷을 입히고 유모차에는 바람이 들어오지 않게 커버를 씌워서 병원으로 향했다. 아이가 깨지 않기를 바라면서. 병원에 도착하니 그는 이동침대에 누워 매섭게 나를 쏘아보며 큰 목소리로 왜 왔냐며 집에 가라고 했다. 간호사분들이 당황한 눈치였다. 공공장소에서까지 왜 저러나 싶었다. 누가 오고 싶어서 왔나 보호자 동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왔는데 진짜 확 가버릴까 보다!


보호자 동의 서명을 하고 응급수술에 들어갔다. 수술실 앞 모니터에 수술 중이라는 글자가 뜨고 그의 이름이 뜨는데 기분이 묘했다. 그가 싫음에도 남편이니 수술이 잘 되게 해 달라는 기도가 나왔다. 처음 맞닥뜨리는 이런 상황이 무섭기도 했다.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지인들에게 연락해 기도부탁을 할 수도 없었고 외로움과 두려움을 오롯이 견뎌야 하는 순간이었다. 수술실 앞에서 아이가 잠들어있는 유모차를 끌며 기도했다. 몇 시간 후에 수술실에서 의사 선생님이 나와서 수술이 잘 되었다고 경과를 설명해 주셨다. 감사했다. 마취에서 깨고 병실로 올라간 그를 마주했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걸로 마음이 풀리지는 않았다. 그는 내가 아직은 어린아이를 돌봐야 하니 보호자 없이 지낼 수 있는 간호병동에 있겠다고 했다. 그의 옆에 24시간 있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새벽이라 어둑한 거리에 사람도 없고 날은 추운데 유모차를 끌며 가는 내 신세가 처량해 눈물이 흘렀다.


한 번은 목이 너무 아팠다. 그러다가 두통이 심하게 왔다. 머리로 진통하는 느낌이랄까. 지금까지 살면서 그렇게 심한 두통은 처음이었다. 그때 무슨 정신으로 아이 어린이집에 등하원을 시켰는지 모르겠다. 병원 다니면서 약 먹다가 목 아픈 게 다 나으니, 갑자기 눈이 심하게 충혈이 되었다. 안과에 가니 감기에 걸린 일이 있냐고 물었고, 바이러스가 눈으로 이동해 이런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고 했다. 눈에 염증이 다 나을 무렵에 배가 아팠다. 하나 나으면 다른 곳이 아프고, 그곳이 나으면 또 다른 곳이 아프고...

갑상선 정기 검진이 있어 채혈을 하는데 피가 나오다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아 당황스럽던 일도 있었다. 원래 마른 체형인데 그때 몸무게가 가장 많이 빠졌었고, 내 건강을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그때 약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보면서 건강기능식품 공부를 시작했고 챙겨 먹기 시작했다. 독박육아와 그와의 스트레스에 몸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


부부상담을 하고 싶었다.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부부상담 얘기를 하면 "돈이 어딨냐. 나를 정신병자 취급하냐" 그랬다. 그가 개인상담을 받은 적도 있었다. 아이 생기기 전 집 근처에 심리상담센터가 새로 생겼는데 친정에서 큰 액수를 지원받았을 때 갑자기 10회 상담비를 결제하고 왔다. 그의 말로는 10회를 결제하면 할인을 해준다고 해서 했다고 했는데 그래도 상의 없이 100만 원 가까운 돈을 결제한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한 번쯤은 나도 같이 가서 상담해보고 싶다고 했더니 끝까지 안된다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자기가 나쁜 사람 될 것 같아서였다. 그의 상담이 끝났지만 내가 기대하던 효과는 없었다. 상담은 선생님이 중요하다고 들어서 선생님과 잘 맞지 않았던 거 아닐까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의 마음속 상처가 낫기에는 상담의 횟수가 짧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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