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생각한다. '만약에' 그때 바다에 가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그때 긴장하지 않았더라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타이레놀 대신 병원을 우선 찾았더라면.
과거를 되돌아보고 후회하는 것은 스스로 불행을 만드는 지름길이라고 한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내 삶의 분기점이 된 '그날'에 대해 다양한 가정을 세어보곤 한다.
내가 쓰러진 그날은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의 부모님을 처음으로 뵙는 자리였다. 단정하게 화장을 하고, 심사숙고하며 고른 정장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처음 뵙는 남자친구의 부모님도 다정하고 따뜻하셔서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 시부모님과 헤어진 뒤 남자친구와 분위기 좋은 카페에 들렀고, 이후 가까운 바다에 가서 노을을 보았다. 이대로 끝났다면, 나와 남자친구의 인생에서 더할 나위 없이 기쁘고 의미 있는 날이 되었을 거다.
사실, 징조는 있었다. 그날을 기점으로 1년 동안 직장 내 빌런으로 인해 하루종일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많았다. 어느 순간 타이레놀을 먹어도 해결되지 않는 두통이 빈번하게 있었다. 더 확실했던 징후는 가끔 직장에서, 운전을 하다가 등등 왼쪽 팔과 손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미세하게 떨리는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두통은 그렇다 쳐도, 손이 떨리는 일은 내가 봐도 예사롭지 않았기에 정형외과를 찾았다. 정형외과에서 각종 검사를 해도 전혀 이상이 없다며 나를 예민한 사람 취급을 했다.(추후에 찾아보니, 그 정형외과의 방문리뷰가 매우 안 좋았다.) 그 당시에 나는 신경외과가 정확히 무얼 하는 곳인지, 언제 가는 곳인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나마 내 기준에서 제일 그럴싸한 정형외과에 갔던 것이다. 평생 방문할 일 없다고 생각했던 신경외과와 신경과. 그리고 재활의학과를 내 집처럼 방문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무지는 독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평소 건강에 관심이 있었더라면, 주변에 이런 증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아니 그보다 세상에 좀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내 몸을 좀 더 사랑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꾸준히 운동을 하며 술, 담배도 하지 않는 30대 여성. 그런 내가 갑자기 쓰러져서 뇌병변장애 진단을 받을 줄은 몰랐다. 지금까지 괜찮았다가, 왜 인생에서 꽃길만 펼쳐질 것 같은 이때에 발병한 걸까. 이 당시 나는 임용고시에 합격해 번듯한 직장이 있었고, 다정한 남자친구가 있었으며, 가족은 화목했다. 걱정이라고는, 내 옆의 빌런이 오늘은 얌전히 있을까 정도가 전부였다. 모든 것이 원망스러운 그때에는, 누군가 나의 행복을 시샘해서 저주라도 건 것은 아닐까 싶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때의 나에게 "당장 신경외과로 달려가서 뇌 MRI 찍어!"라고 소리치고 싶다. 이미 뇌혈관이 꼬였으니 조금 미리 안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질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미리 알았더라면 갑작스럽게 쓰러져 병원에 실려와 "당신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같은 얘기에 눈앞이 캄캄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또한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조금 더 차분하게 수술할 병원을 고르고, 다양한 검색을 해보고,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그렇지 못했던 그때의 나는, 마치 파도에 휩쓸리듯 이리저리 흔들렸다. 가족들도 남자친구도 모두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멀쩡했던 가족이, 여자친구가 죽을 수도 있단다. 생생하게 다가온 눈앞의 '죽음'에 겁을 먹은 우리는 병원 의료진을 붙들며 어떻게든 살려달라고, 빨리 수술해 달라고, 쓰러지지 않게 해달라고 서둘렀다. 생각해 보면 그때는 모두가 급했다. 몸에서 가장 중요한 '뇌'를 건드리는 수술임에도. 조금 더 현명한 판단과 지혜가 필요했음에도.
수술만 하면 괜찮다는 의사의 말을 믿었고, 의사가 뇌부종 등의 부작용을 설명했지만 우리에게 그런 불행은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우리 가족이 이렇게 끈끈한데,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착하게 살아왔는데. 이 또한 성장을 위한 시련일 거야. 인생에 큰 굴곡이 없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금방 좋아져서 이전과 같은 삶을 누릴 거리고 믿었다.
하지만, 뇌 방사선 수술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날(생각해 보면 수술 후 입원을 했었어야 했다. 감마나이프가 아닌 노블리스라는 방사선 수술을 선택했는데, 의료진들이 개두술이 아닌 매우 간단한 수술이니 바로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했다.) 두 번째 경기를 했고,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눈을 뜨니 구급차 안이었고, 밀려오는 역함에 우웩 하고 구토를 했다. 어째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한 병원에 입원해 검사를 진행하니 수술 부작용으로 뇌부종이 생겼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수술은 잘 되었지만 아무래도 방사선을 쏜 부위가 넓고, 뇌를 건드렸기 때문에란 답변을 내놓았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모든 일들이 현실인지 멍해졌다.
평생 나는 언제 기절할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살아야 하는 건가.
허망했다. 좋아지려고 받은 수술이 아니었던가. 지금까지 간절히 바라면 결과가 좋은 일들이 가득한 삶을 살았다. 이처럼 두 번째 기절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쌓았던 믿음과 가치관을 완전히 무너뜨린 계기가 되었다.
무서웠고, 내가 있는 공간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혼자'이고 싶었으나 '혼자'인 것이 무서웠다. 또 쓰러지면 어쩌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쓰러지면 어쩌지, 그렇다고 남들에게 내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이고 싶은 것도 아니야. 여러 가지 생각이 나를 짓누르는 듯했고 매일을 울었다. 내가 환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어느 순간 운전을 하면 신호를 기다리는 그 몇 초 동안 심장이 뛰고 숨이 가빠왔다. 여러 사람이 있는 회의실에서는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가 늦게 오면 그 찰나의 순간이 억 겹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짜증이 늘어나고 화가 났다. 이전의 내가 아닌 것 같았다. 모든 걸 부정하고 숨거나 죽고 싶었다.
아, 인정해야 했다.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걸.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병명은 공황과 우울. 그리고 불안장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