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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뀨냥 Oct 19. 2024

평범한 부부 한 쌍

  최근, 유튜버 박위님과 송지은의 결혼식이 이슈가 되었다. 동화 같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종교의 유무를 떠나 나 역시도 응원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축사에 다소 아쉬운 점이 있기는 했지만,  또한 그들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지금은 그저 용기 있는 두 부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을 뿐이다.


  "저, 결혼했어요." 결혼 여부를 밝히면, 내가 결혼을 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친한 친구들 조차 내가 장애로 인해 시댁에서 '눈칫밥'을 먹고 있을 거라고 지레 짐작다. 즉, 남자 쪽이 굉장히 손해를 본 결혼이라는 말이다. 아직 많은 이들에게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결혼 생활은 한쪽의 숭고한 희생으로 비친다. 장애에 대한 세상의 솔직한 인식이지만, 참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작 나는 평범한 며느리 중 한 명이며, 남편 또한 평범한 사위 중 한 명이다. 눈치를 볼 것도, 눈치를 줄 것도 없는 그런 가족의 모습이다.


  가끔 걸려오는 어머님의 전화에는 다정함이 묻어난다. 몸이 힘든지는 않은 지, 먹고 싶은 것은 없는지 물으신다. 어머님 힘드시니 괜찮다고 말씀드려도, 시댁에 다녀오는 남편의 손에는 어머님표 반찬들이 가득이다. 기쁜 일이 있을 때는 함께 축하하고 슬픈 일이 있을 때는 함께 고민하고 응원한다. 나는 남편과의 결혼으로 인해 넓어진 나의 세계가 참 따뜻하고 아늑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남편과 결혼을 하겠다고 결심했을 때, 시댁에서는 적어도 내게 '장애와 병으로 인한 싫은 티'를 내지 않으셨다. 아버님의 염려가 살짝 있으셨지만, 남편에게 '괜찮겠냐.'라고 딱 한마디 물으시고는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으셨다. 심지어 결혼 후 점차적으로 왼쪽 편마비가 시작되었을 때에도, 시부모님들은 일부러 내 상태를 지적하지도, 억지로 모르는 척하지도 않으셨다. 그냥 며느리를 대하듯이, 나를 바라보고 담백하게 이야기를 건셨을 뿐이다. '운동 열심히 하렴.' '잘 먹어야 된다.'가 시부모님이 내게 한 잔소리의 전부다.


  사실 나는, 결혼 후 점차 진행된 편마비에 시댁에 큰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도무지 떳떳할 수 없었음이 사실이다. 지금도 내가 온전히 기능할 수 있었더라면, 시댁 식구들과 여행도 같이 가고 맛난 것도 직접 만들어 드릴 수  있을 텐데 라는 아쉬움 있다. 하지만 나를 대하는 시댁의 모습에서, 그럼에도 행복한 우리 부부의 모습에서, 나는 점차 안정감을 찾고 죄책감을 덜어낼 수 있었다.


  우리 남편은 대단한 성인군자가 아니며, 종교도 없다. 그리고 남편은 나와의 결혼을 '절대적인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와 남편은 서로를 사랑했고, 함께하는 미래를 그리고 싶었고, 그래서 결혼했다. 단지 그뿐이다. 그 과정에는 한쪽의 숭고함도 희생도 없다.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 서로에게 푹 빠져 같은 길을 걸어 나갈 뿐이다.


  내가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하면, 바로 "남편분이 대단하시네요."라는 대답이 들려온다. 그래, 맞다. 쉽지는 않은 일이었겠지. 이후 남편에게 이야기를 전하며 "자기 어떻게 나랑 결혼할 생각을 했어?"라고 하면 남편은 일부러 화난 표정을 지으며 "나, 화낸다?"라고 한다. 남편이 화가 나는 대상은 물론 내가 아닌, '대단하다'라고 생각하는 이들이다. 남편에게 있어서 나와의 결혼은 대단하다거나 한쪽의 희생이 묻어나는 것이 아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당장 내가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될 수도 있는데? 그럼 자기는 나 버릴 거야?"라고 남편이 물은 적이 있다. 나는 바로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남편은 "거봐, 그런 건 아무도 모르는 거야. 나는 장애가 있든 없든 당신이라는 사람 그 자체가 좋아서 결혼한 거야."라고 답했다. '그런 생각이 대단한 거 아닐까?' 하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장애에 대한 남편의 무심함이 좋다. 너무 호들갑을 떨지도, 너무 안타까워하지도 않는 담백한 태도가 좋다. 내가 심한 공황을 앓았을 때, 차 안에서 곧 쓰러질 거 같다 울었을 때도 남편은 침착했다. 두통으로 응급실에 실려갈 때도 그랬다. 한창 상태가 좋지 않았을 때는 남편의 침착함이 서러웠지만, 지금은 그런 남편의 태도로 인해 자연스럽게 공황과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복직을 앞두고 불안감에 눈물 한 바가지를 흘렸을 때도 '장애는 부끄러운 게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남편에게 힘을 얻었다.


  살아간다는 것은, 장애인에게도 비장애인에게도 고난과 행복의 반복이다. 그리고 나는 장애의 여부를 떠나, 고난의 순간들이 찾아올 때 나를 다시 일으켜 줄 수 있는 존재가 있음에 참 감사하다. 지금도 흔들리고 불안하 우울과 친구 먹고 있는 일상이지만 매일을 살아갈 수 있는 존재와 응원이 있기에 나아간다.


  내 나이 또래에 장애와 비장애인 부부는 흔치 않다. 그렇지만 나는 우리 부부가 특별하지도 않고, 별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느 부부처럼 다투고, 화해하고, 토라지고, 그러다 또 함께 기뻐하는 평범한 부부다. 서로를 위하고, 걱정하고, 토닥여주는 그런 평범한 부부. 이렇게 나와 남편은 지구의 부부 한 쌍으로 또 오늘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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