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으로 반병신 되느니 차라리 죽고 말지." 이 말은 내가 병원에 입원해 다인실을 썼을 때, 다른 환자의 간병인이 실제로 한 말이다. 그때 나는 커튼을 치고 누워있었고, 또 다른 환자는 검사를 받으러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아마 그 간병인은 아무도 자신의 말을 듣지 못할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저 말을 지껄인 간병인은, 뇌졸중으로 섬망증상이 있는 할머니를 간병하는 중이었는데, 할머니가 섬망으로 소리를 지르거나 버둥거리면 짜증과 화를 쏟아부었다. 그 외에도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 민폐행동과 언행으로, 다른 간병인이 그녀에게 핀잔을 주며 나무라기도 했다.
나 역시 그녀가 불편했으나, 3인실 병실에 자리가 나면 옮겨 주겠다는 병원 측의 말을 듣고 꾹 참았다. 하지만 위의 '죽고말지'라는 언행은 참을 수 없었다. 솔직히 미친 거 아닌가 싶었고, 그녀가 돌보고 있는 할머니 환자의 자식들에게 이르고 싶었다.
내가 커튼을 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 간병인은 잠시 움찔하더니 텀블러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 뒤로 나는 커튼을 치지 않고, 혹여 그 간병인이 할머니에게 못된 짓을 하지는 않을까 내내 지켜보았다. 다행히 며칠 뒤, 그 간병인은 할머니의 간병을 못하겠다고(정확히는 못해먹겠다고) 선언하고 나갔고, 할머니의 간병인은 새로운 사람으로 교체되었다.
그 사람이 가고 난 뒤 다른 간병인에게 들으니, 그 못된 간병인은 조선족인데(이 때문에 조선족 간병인에 대한 편견이 지금까지도 솔직히 있다.) 이전에도 여러 문제로 주의를 받았다고 했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자신이 고용한 사람의 화와 멸시를 받아야 하다니. 짜증이 났다. 몸이 온전했을 때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문제였다. 나는 그나마 정신은 멀쩡해 그런 일은 겪지 않았지만, 세상의 많은 환자들이 이보다 더 심한 일을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치가 떨렸다.
이래서 아픈 건 서럽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들이 건강이 최고라고 하는구나.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며, 절대 간병인이 필요한 순간까지 나를 다치게 하지는 않겠다고 결심했다.
사실은, 저 간병인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장애가 생길 바에는 죽겠다고 말한다. 특히 넷상에서 익명 뒤에 숨어 저런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마치, 죽고 난 이후에 새로운 삶이 보장이라도 된 듯이. 그들의 진짜 의중은 모르겠지만, 그들이 장애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느껴져서 실소가 나왔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타인이 아닌 내가 정한다. 내가 선택하고 나아가는 내 삶인 것이다. 사지 멀쩡한 정상인이 장애를 운운하며 만약을 가정하는 것은 기만이다. 그들이 가정하는 장애의 고뇌와 아픔은, 실재 장애를 겪고 있는 이들이 느끼기에는 정말 가볍다.
장애인의 삶을 가정하며, 우월감이든 동정심이든 느낄 바에는 차라리 당신의 삶을 살라고 비웃고 싶다. 타인의 삶에 간섭하지 말라고 오지랖 부리지 말라고 말이다.
장애의 존재가, 그들의 눈에 죽음의 원인이 된다면 묻고 싶다. 그럼 살아 있는 나는 죽음밖에는 선택지가 없나요? 하고.
사람은 참 잔인하다. 마음속에 독을 품은 이들이, 언젠가는 이 순간을 후회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