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뀨냥 Oct 01. 2024

열등함 보다는 불편함을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서 법률스님과의 대화를 짧게 편집한 게시물을 보았다. 사연의 주인공은 후천적 장애인을 자녀로 둔 엄마로, 얼른 아이가 좋아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 담아 스님과의 대담 신청한 것이었다.


  엄마의 말을 곰곰이 듣던 스님은, 대화가 끝나갈 때쯤 아이의 현재 모습열등한 것이 아닌 불편한 것일 뿐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엄마가 안달하고 간절할수록, 아이는 자기 스스로를 열등하다고 느끼게 될 것이라고도 하셨다.


  짧은 글이었지만, 나는 그 글을 읽고 그동안 내 마음에 자리 잡았던 불편함의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엄마가 떠올랐다. 지금도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을 엄마가.


  엄마는 내게 기적이 올 거라 믿었고, 지금도 믿고 있다. 나 역시 처음에는 기적을 바라였지만, 바람이 클수록 실망도 무기력도 커졌다. 병원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예전만큼 희망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내가 만난 최고의 거짓말쟁이는 의사들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의사가 말하는 말들 중, 부정적인 것들이 진짜라 믿었다. 하지만 엄마는 이를 제외한 희망적인 한마디에 사활을 걸었다.


  엄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완벽한 쾌차를 위해서는 죽도록 재활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고, 처음에는 정말 온 힘을 다했다. 하지만 일 년을 주기로 발, 그다음에는 손이 망가지자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노력이 나를 배신하는 순간들을 언제까지고 반복해야 할까 막막했다.


  온전히 장애를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기약 없는 기적에 삶을 맡길 수는 없다. 나는 장애를 안은 현재의 나를 불쌍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열등한가? 열등한 생물인가? 그 물음이 곧 처절한 외침이 될 것이 두려웠다.

  

  기적이 찾아오는 그 순간부터가 아닌, 지금부터 나는 잘 살고 싶었다. 지금의 나를 열등하다 여기고 싶지 않았다. 행복하길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태어날 때부터, 혹은 사고로 장애를 얻게 되면, 그 순간부터 사람은 열등한 존재가 되는 걸까. 그 사람이 이뤄온 모든 것, 살아가는 발자취가 열등함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되는 것뿐인 걸까.


  '불편할 뿐, 열등하지 않다.'이 한 문장의 정의가 나는 참 고마웠다. 자기 위안일 뿐이라도, 이 한 문장이 나를 살려줄 것 같았다.


  스스로 열등하다고 느꼈던 때에는, 내가 노력하는 모든 것들이 오히려 버겁고 부질없다고 느꼈다. 분명 나도 정상인이었는데, 갑자기 그 범주에서 밀려나 다시 정상인이 되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 창피했다.


  엄마는 지금도 내게 기적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른 이들에게는 어려워도, 자신의 딸에게는 신이 은총을 내려주시리라 믿는다. 하지만 신이, 그런 기적을 굳이 나에게 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나는, 신이 그 사람이 감당할 정도의 시련만을 준다는 이야기가 어이없다. 사실이라면 정말 사이코패스가 아닌가? 왜 그걸 신이 판단하고 평가하지? 그렇다면 두부멘탈에 불안으로 똘똘 뭉친 나에게 연달아 이런 시련을 준 것은 완벽하게 신의 실수다.


  죽어라, 죽어라. 이래도 안 죽을 테냐. 하고 누군가가 나를 사지로 밀어 넣는 순간이 느껴질 때가 있다. 몇 번은 어, 그래. 죽어줄게.라고 생각했다. 그저 삶이 지긋지긋 해서였다.


  지긋지긋한 감정의 기반은, 스스로 만들어 낸 열등감 때문이었다. 나 조차도 싫어하는 나. 이런 삶을 굳이 이어갈 필요가 있나. 힘겹다, 지친다, 갑자기 실패한 인생이 된 것 같다, 내 삶은 망했다. 밀려오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쉽게 삶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딱히 삶에 엄청난 의미와 가치를 두는 것은 아니다. 앞서 본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결말이 궁금해서 조금만 더 살아볼까 싶어도 괜찮은 걸까. 이 정도의 미련을 이어가며 살아가는 삶도 의미가 있는 걸까. 그렇다면, 살아가는 동안에는 열등함 보다는 불편함을 택하리라.


  불편함을 감수하는 삶도 서럽긴 매한가지지만, 열등함을 품고 사는 삶은 더 지옥 같다. 작은 이유들에 기대어 생을 이어 나가야 한다면, 스스로를 먼저 속여야 한다. 그래, 열등한 것보다는 불편한 게 낫지 하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거짓을 진실로 믿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이전 09화 행복의 기준을 낮추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