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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뀨냥 Sep 23. 2024

행복의 기준을 낮추면

  장애가 생기기 전의 나는, 솔직히 말해서 야망과 포부로 가득한 사람이었다. 몸이 편하고, 마음이 편하면 요즘과 같은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느꼈다. 내가 아등바등 노력할수록 배움의 깊이는 커졌고, 그만큼 나의 가치도 상승하는 기분이었다. 쌓여가는 각종 자격증, 남부럽지 않은 커리어. 이 모든 시간과 땀이 미래의 나를 위한 초석이 되리라 믿었다. 하루가 부족했고, 치열했다.


  그래서 나는, 장애가 생긴 후의 나를 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아, 그렇구나.'라고 수긍하기에는 내가 기대했던 내 모습과 현재의 모습은 너무나 달랐다. 이전에는 '누구 보다 뛰어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지금은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 삶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내가 싫어.' 이 생각을 처음으로 입 밖으로 낸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오른손으로 세게 스스로의 뺨을 내리쳤다. 일종의 자해였다. 나를 상처 입히고 싶었고, 사라지고 싶었다. 이런 상태로 학교에 갈 수는 없었다. 나 스스로도 망가져 있는데, 각각의 아픔을 가진 학생들의 마음을 보듬는다는 것은 기만 같았다.


  병휴직을 신청하고 홀로 쉬는 평일. 나는 길고 무력한 이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했다. 초, 중, 고등학교 때도 미련하게 결석 한번 하지 않은 나였다. 열이 펄펄 끓어도 기어코 등교하려는 나를 보고 친구들은 독하다고 했다. 휴학 없이 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졸업 전에 이미 취업이 확정되어 졸업과 동시에 바로 사회인이 되었다.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 그래야 성공할 줄 알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것은, 사치이자 책임감 부족으로 느껴졌으니까.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아요.' 내가 휴직에 대한 불안감을 털어놓자, 신경정신과 선생님께서는 매우 간단하게 답변하셨다. 정말 괜찮은 걸까 의심이 들었지만, 당장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없는 것도 없었으므로 처음에는 내내 잠만 잤다. 사람이 어떻게 이 정도로 잘 수 있을까 싶게 자고 또 잤다. 


  그렇게 내리 잠만 자던 날이 이어지다가, 문득 조금씩 하고 싶은 일들이 떠올랐다. 블로그에 하고 싶은 일들의 목록을 적어나갔다. 정말 소소하고 우스운 것들의 집합이었다. 이전의 나라면 자격증 취득하기, 해외여행 가기 등의 거창하고 있어 보이는 목록을 적었을 것이다. 


  하지만 뭐랄까, 그 소소한 일들이 하루의 나를 버티게 했다. 한 손으로 설거지를 끝냈다. 와, 뿌듯해라. 하루종일 한 게 설거지가 전부며, 그 외에는 내리 누워 있었지만 그래도 이전과는 기분이 달랐다. 다른 날은, 방 한 곳을 정해서 필요 없는 물건을 싹 정리하고 버렸다. 체력이 부족해 치운 곳이 고작 방 하나였지만 그래도 좋았다. 버리고 정돈하는 일이 내 기분에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어느덧 휴직 중의 취미가 청소(정확히는 버리기)가 되었다.


  가끔은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고 완성작을 남편과 엄마에게 보였다. 놀랍게도, 그릴 수록 실력이 늘었다. 원래도 손으로 꼼지락 거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가위와 칼 같은 거창한 도구는 편마비 장애인에게는 너무 위험한 물건이었다. 내게 주어진 것들은 연필과 지우개. 그리고 디지털 펜슬. 이들로 최대한의 즐거움을 끌어냈다.


  이렇게 소소한 일들을 해나가며 마음을 달래다가도, 무너지듯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지기도 했다. 내가 죽어라 해야 겨우 해내는 일들을, 정상인들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손쉽게 해낸다는 것을 알고 나면 더욱 그랬다. 머릿속으로 수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시뮬레이션을 해야 하는 나와는 다르게, 일반인들은 아주 손쉽게 모든 것을 해냈다. 그 간극이 몸서리질 정도로 서러웠다.


  결국 내가 살아남는 방법은, 주어진 환경에서 최대한의 소소함을 누리는 것이었다. 성장증후군에 걸렸던 이전의 나와는 완벽하게 이별해야 내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를 자꾸만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과거의 내가 바랐던 것, 기대했던 것, 꿈꾸었던 것들을 덜어내는 연습이 필요했다. 행복의 기준을 낮춰야 내가 살겠구나. 그렇게 결심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일단 씻는다. 간단한 아침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또 버리고, 정돈하고. 가끔은 그림을 그리고, 글도 쓰고, 노래를 듣고. 퇴근한 남편과 유튜브나 드라마를 본다. 한량이 따로 없지만, 스스로 세뇌한다. '뭐, 됐지.' 하고.


  뭐가 됐다는 건지 나 조차도 구체적인 무언가를 말하긴 어렵다. 그런데 정말 이걸로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오후에 모처럼 해가 들어 흰 시폰 커튼 틈새로 빛을 내렸다. 이에 커튼을 걷고, 우리 집 유일한 식물인 콩고 야자에게 광합성을 시켜 주었다. '오.' 찰나의 순간 묘한 충만함이 스며들었다.


   저녁으로는 어머님께 받은 단호박으로 단호박에그슬럿을 만들었다. 전자레인지만 사용하는 요리라 수고 대비 맛이 훌륭했다. 자랑하고 싶었다. 사진을 찍고, 남편에게 보냈다. 그 외의 시간에는 또 버리고, 쉬고, 놀았다. 그럼에도 나쁘지 않은 하루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평범했지만, 내일은 슬플지도 모른다. 그다음 날은 우울 속에 잠겨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제는 하루에 거창한 의미를 붙이지 않으려고 한다. 오늘은 그냥 오늘이다. 치열하게 보내지 않아도, 그냥 놀고먹어도 오늘은 오늘이다.


  내가 살아 있는, 오늘을 보내며. 평범함에 기대 조막만 한 위안을 얻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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