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뀨냥 Jan 30. 2024

편마비지만 요리는 꽤 합니다.

잘 먹는 일이 중요한 이유.

  '잘 먹어야 한다.' 이 말은 내가 어느 병원에 가서도 꼭 듣는 말이다. 최근에도, 한 달 만에 만난 의사 선생님께서 걱정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내게 말씀하셨다.


  "어휴, 살이 왜 이리 빠졌어요? 그러면 안 돼요. 잘 먹어야 해." 

  

  그때까지도 변해 버린 내 몸에 속상해하고 있을 때라서, 의사 선생님의 '잘 먹어야 해.'라는 말이 와닿지 않았다. 장기 복용한 약과 긴 입원 생활로 급격히 늘어난 몸무게에서 겨우 이전의 몸무게로 돌아오려고 하는 격동기였다. 날씬하다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그나마 조금씩 자신감과 자존감을 찾아갈 때였다.


  '잘 먹으면 다시 살이 찔 텐데...'


  그렇게 매일 아침은 아몬드 브리즈 하나로 버텼고, 저녁은 패스했다. 그게 약에 지지 않는 방법이라 믿었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내다가, 결국 탈이 났다. 갑자기 세상이 좌우로 시소 타듯 기우뚱 거리며 중심을 잡기 어려워졌다. 미칠 듯한 어지러움이었고, 구토감이 밀려왔다. 겨우 벽을 짚고 침대로 기어가 가만히 누워 있는데도 몸에서 느껴지는 출렁거림과 어지러움이 멈추지 않았다. 


  응급실로 달려간 나는 수액을 맞으며, 너무나 정직한 내 몸이 야속해 또르르 눈물을 흘렀다. 이제 별의별 증상까지 나를 괴롭히는구나. 이거 괜찮아지는 건 맞겠지. 다행히, 피검사와 CT상으로는 큰 이상소견은 없었다. 다만 다음날 나를 본 주치의 선생님께서 걱정하시며 말씀하셨다.


  "어지럼증 잡는 약이랑 몇 가지 더 드릴 건데요. 꼭 밥 잘 드셔야 합니다. 꼭이요."


  이렇게 의사 선생님께 '잘 먹으라'는 당부를 듣고 돌아온 당일.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강렬한 경험에 나는 다시 밥 숟가락을 들었다. 역시 한국인은 밥심이다. '먹고 싶은 것을 먹는다. 대신 열심히 운동한다.' 이렇게 결심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물론 과식은 사절이며,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단 음식들도 양을 조절해서 먹으려고 한다. 그리고 가능한 채소와 과일을 챙겨 먹으려고 한다. 


  또한, 물! 물은 보일 때마다, 생각날 때마다 마시고 있다. 처음에는 워낙 커피에 익숙해 있다 보니 맹물을 마시는 게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남편이 '물 먹는 하마.'라고 깔깔대며 놀릴 만큼 물 마시기에 진심이다.


  한 가지 밝히고자 하는 것은 이 글이, '건강식을 먹어요.'라고 주장하기 위해 쓴 글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도, 가끔은 떡볶이도 먹고, 피자도 먹고,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맛집을 찾아가기도 한다. 그저 나는 '잘' 먹자고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다이어트는 평생의 숙제지만 몸이 망가질 정도로 자신을 학대하지는 말자고 말하고 싶다. '잘' 먹는 것 또한 나를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다. 


  몇 달간의 입원 끝에 퇴원 후 제일 생각난 음식은 엄마가 만들어 준 미역국이었다. 소고기를 가득 넣고 푹 끓인 미역국. 실제로 나는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을 먹고 기력을 되찾을 수 있었다. 아마도, 그때 느꼈던 것 같다. '먹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지를. 누군가가 사랑을 담아 만들어준 음식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나와 결혼하고 요리를 해본다는 남편은, 서툰 칼질로 갖가지 음식을 만든다. 나 또한 부엌에서 남편과 마주 보며 간단한 음식을 만든다. 어제 내가 만든 요리는 채소를 가득 넣은 계란찜이었다. 비록 너무 많이 쪄서 용기에 닿은 부분이 과자처럼 바삭해졌지만, 맛있게 밥 한 그릇을 비워냈다.


  한 손으로 요리하는 것은 꽤 불편하지만,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한 손으로 재료를 썰고(모양은 이상하지만 썰린다는 것에 만족하며.) 계란을 깨고, 섞고, 뒤집는다. 화려하고 예쁜 요리는 아닐지라도, 밥은 꼭 든든히 차려 먹으려고 한다. 가끔 양식이 생각나는 날에는, 파스타를 만든다. 파스타 또한 한 손으로 만들기에는 레벨이 낮아 부담이 없다.


  어느 날, 인터넷에서 '한 손 도마'라는 제품을 발견했다. 나처럼 한 손으로 요리를 해야 하는 장애인들이 쉽게 요리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제품이라고 한다. 재료가 도마에서 움직이지 않고, 채소나 과일은 도마에 달린 못에 끼워 고정해서 자르면 된다고 한다. 구매 욕구가 치솟았으나, 그간 나를 스쳐간 많은 물품들을 생각하며 꾹 참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이 도마는 플라스틱인 주제에 가격도 상당한 데다, 해외 배송 제품이라 배송비도 무시할 수 없다.

한 손 도마

  편마비로 인해 제약은 있어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이를 함께 먹는다. 이런 일상의 포근함이 매일의 나를 만든다. 오늘의 점심은, 어제 만든 칼칼한 김치찌개! 거기에 계란프라이까지 곁들이면 이만한 호화는 없을 거다.


  잘 먹고, 건강해야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야지. 그렇게 다짐해 보는 오늘이다.

이전 07화 편마비 환자를 바라보는 시선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