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마비가 찾아온 직후, 세상은 매우 두렵고, 공포스럽게 변해갔다. 불과 얼마 전까지 내가 걷고, 뛰고, 머물렀던 장소가 긴장되고 위협적인 장소로 느껴졌다. 그중에서도 내 심장을 쿵쿵 뛰게 했던 것은 바로 '계단'이다. 계단을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 계단 앞에서 나는 마치 갓 걸음을 땐 영아가 된 것처럼 얼어붙었다.
편마비가 시작되고, 나는 다시 새롭게 세상을 배워갔다.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듯 한걸음 한걸음 발을 떼고, 의자에서 일어났다가, 앉고, 손을 쥐었다 폈다 한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가 다시 일어 나는 동작도 몇 번의 연습 끝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계단. 계단만큼은 두려움을 떨칠 수 없다. 그것은, 재활치료사 선생님이 내 앞에 서서 나를 어르고 달래도 마찬가지였다.
"걱정 마세요. 넘어질 것 같으면 제가 바로 붙잡을 거예요."
선생님께서 몇 번이고 말씀하셨지만, 오른발을 떼고 왼발로만 땅을 지탱하는 것이 무서웠다. 머릿속으로는 계속 내가 계단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끔찍한 상상이 떠올랐다.
그렇게 계단만큼은 익숙해지지 못하고 지내던 날. 이를 악 물고 어렵게 한걸음을 땠다. 두 눈을 꼭 감고 싶은데, 무서워서 그러지도 못하고 발끝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두 걸음, 세 걸음. 그건, 내 앞에 선생님이 계셨기에 그를 믿고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용기였다.
"무... 무서웠어요."
"그래도 난간도 안 잡고 아주 잘하신 거예요!"
정말이다. 이렇게 한번 성공하고 나니, 난간을 잡고 계단을 타는 것은 초보자 코스처럼 우습게 느껴졌다. 그렇게 계단에 조금 익숙해지자 내 세상이 그만큼 더 넓어졌다.
이제는 계단이 앞에 나타나도 긴장하지 않고 덥석 난간부터 잡는다. 그리고 온몸에 힘을 주며 한 걸음씩 올라간다. 덕분에 여행을 가서도, 크게 무리 없이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었다.
'사실은 두려움이 문제였는지도.'
물론 아직은 난간을 잡지 않으면 보는 사람이 더 조마조마할 정도로 불안하다. 하지만, 언젠가는 계단도 무리 없이 탈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드는 걸 보면, 계단이 나에게는 더 이상 거대한 벽처럼 느껴지지는 않는 것 같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싱어송라이터 이진아의 노래 중 '계단'이라는 노래가 있다. 오랜만에 플레이리스트에서 흘러나오는 그 노래를 들으며, 너무나 내 마음을 대변하는 가사에 눈물이 찔끔 나왔다.
[계단 올라가 보는 거야. 지쳐서 도망가고 싶어도. 너의 마음 한구석. 보석 같은 꿈이 있다는 걸. 열어 보는 거야. 놓지 않는 거야.]
지쳐서 도망가고 싶어도, 피하지 않고 마주한다. 계단, 그건 어쩌면 편마비 장애인으로서 내가 오르고 극복해야 할 무언가의 첫 단계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