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뀨냥 Feb 02. 2024

두려움을 극복하며 오르락내리락

계단 올라가 보는 거야

  편마비가 찾아온 직후, 세상은 매우 두렵고, 공포스럽게 변해갔다. 불과 얼마 전까지 내가 걷고, 뛰고, 머물렀던 장소가 긴장되고 위협적인 장소로 느껴졌다. 그중에서도 내 심장을 쿵쿵 뛰게 했던 것은 바로 '계단'이다. 계단을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 계단 앞에서 나는 마치 갓 걸음을 땐 영아가 된 것처럼 얼어붙었다.


  편마비가 시작되고, 나는 다시 새롭게 세상을 배워갔다.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듯 한걸음 한걸음 발을 떼고, 의자에서 일어났다가, 앉고, 손을 쥐었다 폈다 한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가 다시 일어 나는 동작도 몇 번의 연습 끝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계단. 계단만큼은 두려움을 떨칠 수 없다. 그것은, 재활치료사 선생님이 내 앞에 서서 나를 어르고 달래도 마찬가지였다.


  "걱정 마세요. 넘어질 것 같으면 제가 바로 붙잡을 거예요."


  선생님께서 몇 번이고 말씀하셨지만, 오른발을 떼고 왼발로만 땅을 지탱하는 것이 무서웠다. 머릿속으로는 계속 내가 계단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끔찍한 상상이 떠올랐다.


  그렇게 계단만큼은 익숙해지지 못하고 지내던 날. 이를 악 물고 어렵게 한걸음을 땠다. 두 눈을 꼭 감고 싶은데, 무서워서 그러지도 못하고 발끝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두 걸음, 세 걸음. 그건, 내 앞에 선생님이 계셨기에 그를 믿고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용기였다.


  "무... 무서웠어요."


 "그래도 난간도 안 잡고 아주 잘하신 거예요!"


  정말이다. 이렇게 한번 성공하고 나니, 난간을 잡고 계단을 타는 것은 초보자 코스처럼 우습게 느껴졌다. 그렇게 계단에 조금 익숙해지자 내 세상이 그만큼 더 넓어졌다.


  이제는 계단이 앞에 나타나도 긴장하지 않고 덥석 난간부터 잡는다. 그리고 온몸에 힘을 주며 한 걸음씩 올라간다. 덕분에 여행을 가서도, 크게 무리 없이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었다.


  '사실은 두려움이 문제였는지도.'


  물론 아직은 난간을 잡지 않으면 보는 사람이 더 조마조마할 정도로 불안하다. 하지만, 언젠가는 계단도 무리 없이 탈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드는 걸 보면, 계단이 나에게는 더 이상 거대한 벽처럼 느껴지지는 않는 것 같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싱어송라이터 이진아의 노래 중 '계단'이라는 노래가 있다. 오랜만에 플레이리스트에서 흘러나오는 그 노래를 들으며, 너무나 내 마음을 대변하는 가사에 눈물이 찔끔 나왔다.


  [계단 올라가 보는 거야. 지쳐서 도망가고 싶어도. 너의 마음 한구석. 보석 같은 꿈이 있다는 걸. 열어 보는 거야. 놓지 않는 거야.]


  지쳐서 도망가고 싶어도, 피하지 않고 마주한다. 계단, 그건 어쩌면 편마비 장애인으로서 내가 오르고 극복해야 할 무언가의 첫 단계인지도 모른다.


오르락 내리락

  

  

이전 10화 또 손가락을 베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