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있던 보조기의 배신(AFO)
세상을 향해 한걸음
"선생님, 깁스했어요?"
1학년 두 명이 내 왼발에 찬 보조기를 보고는 걱정스러운 듯 묻는다. 이럴 때 나는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 아이들은 자신들이 추측한 것처럼, 선생님이 다리가 부러졌거나 삐었나 보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영 어색했던 보조기도, 지금은 나와 한 몸인 듯 매일을 함께 하고 있다. 이제는 보조기 없이 집 밖을 나선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다.(집 안에서는 보조기를 차지 않는다.)하지만 이렇게 소중한 존재인 보조기가, 한 번은 나를 크게 배신한 적이 있다.
때는 바야흐로 2박 3일의 여수여행. 남편과 함께 여수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여수의 낭만에 흠뻑 젖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보조기를 찬 왼쪽발이 불편하고 시큰거리고 따가웠다.
'왜 이러지?'
그동안에는 보조기에 의지하며 큰 도움을 받았기에, 설마 보조기에 이상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걷고 또 걸었다. 생각해 보면, 발에 무언가 이상을 느꼈을 때 여행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왔어야 했다.
"대... 박..."
숙소로 돌아와 발을 확인하니, 왼발 옆 부분이 보조기에 계속해서 쓸려 피부가 벗겨지고 빨갛게 물집이 잡혔다 터졌다. 손만 대도 온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짜릿한 통증이 느껴졌고 상처를 씻으려고 물을 묻히는데
"크허어업!!"
머리카락이 쭈뼛서는 강렬한 고통이 찾아왔다. 그리고 어릴 적 기억 속에 비슷한 고통이 있었음을 생각해 냈다. 초등학교 때 소풍으로 스케이트장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 딱 맞지 않은 스케이트를 신다가 지금과 비슷하게 물집이 터지고 피부가 벗겨진 적이 있다. 딱 그 느낌이다. 세상에! 내게는 너무나 큰 존재였던 보조기의 배신이었다.
며칠 뒤 병원에 가서 상처가 난 부위를 보여드리자, 의사 선생님께서는 '아이고... 이건 보조기가 발에 안 맞는 거예요.' 하면서 보조기를 다시 맞춰야 한다고 하셨다.
보조기 또한 사람이 만든다. 석고로 발을 뜬 뒤에 모양에 맞게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하기 때문에, 완벽하게 딱 맞는 보조기를 찾기에는 쉽지 않다. 처음에는 내 발에 딱 맞더라도, 걸음걸이나 발의 붓기에 따라 조금씩 틀어지거나 헐렁해지거나 한다.
다행히 나는, 보조기 기사님께서 상처가 난 부위의 플라스틱만 조금 늘리면 된다고 하셨다. 그렇기에 큰 지출 없이 보조기를 조금 수정하는 쪽으로 타협을 보았다. 하지만 발의 상처는 꽤 오래갔기에, 한동안은 가방 안에 붕대와 연고를 늘 가지고 다녔다. 또 상처가 또 덧나지 않도록 한여름에 양말도 두꺼운 것으로 신었다.
지금 수정한 보조기는 내 발에 착 맞아서, 오랜 시간을 걸어도 그때처럼 탈이 나지는 않는다. 계속 이 보조기만 신고 다녔기에 꼬질꼬질 낡은 티가 역력하지만, 한 번 보조기에 크게 데었던 나로서는 탈없이 왼발을 지탱해 주는 보조기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가끔은 나도 부츠를 신거나 예쁜 구두를 신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조금 우울해지기도 하지만, 대신 내 마음에 쏙 들면서도 보조기를 차고도 불편하지 않는 운동화로 그 마음을 달랜다.
나의 왼발이 세상을 향해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보조기. 비록 한 번의 배신을 경험했지만, 내게는 뗄 수 없는 친구임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