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승자는?
칼과 방패의 싸움이 아닌, 칼과 가위의 싸움이다.
학교에서 업무를 하거나 집안일을 할 때 종종 '도구'가 필요할 때가 있다. 특히 학교에서 학생들과 활동을 하거나 환경정리를 할 때 도구의 힘을 빌려야 할 때가 많다. 양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었을 때 내 손은 꽤 야무졌다. 바느질이나 뜨개질 같은 일은 매우 서툴렀지만, 칼과 가위로 오리고 자르는 것은 자랑할 수 있을만한 결과물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어쩌나, 편마비가 내게 오고 나서는 칼과 가위로 정교한 작업을 하기 어려워졌다. 특히 칼은, 양손의 협업 없이는 매우 어려웠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이 "가위가 더 자르기 어렵지 않아? 날도 칼보다 무르고."라고 말한다. 글쎄,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칼보다는 가위를 다루는 것이 더 쉬웠다.
한 손으로 칼을 잡고 자르려고 하면 종이가 자꾸만 움직이고 틀어진다. 자로 종이를 눌러도 마찬가지다. 결국, 두꺼운 책으로 모서리에 고정시키고 책선을 따라 조심조심 잘라보지만, 삐뚤삐뚤한 건 여전하다. 생각해 보면, 칼로 종이를 재단할 때, 자를 붙잡고 있는 왼손에 꽤나 힘을 주었던 것 같다.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왼손을 억지로 종이 위에 올려놓고 고정하려고 해도, 어느 순간 힘이 스르르 풀려 버리면서 팔이 강직으로 휙 올라간다.
그래서 결국 나는 나의 완벽주의와 적당한 타협을 하기로 했다. 반듯하지 않아도, 대충 알아볼 수 있을만한 결과물을 만들면 됐지. 왼손으로 자와 종이를 누르는 것은 어려웠지만, 손가락 사이에 얇은 종이를 끼우는 것은 가능했다. 그렇게 종이를 끼우고 오른손으로 어린이용 안전 가위를 집는다. 그리고 최대한 정신을 집중하며 자른다. 썩 마음에 드는 결과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칼보다는 훨씬 낫다.
그리하여 나의 판정은, 가위 승!
사실 요리를 할 때도 부엌 가위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파를 채 썰거나 재료를 다져야 할 때. 왼손으로 어색하게 파를 움켜쥐고 가위로 싹둑싹둑 자른다. 하다 보니 꽤 노하우가 생겨서, 꽤 얇게 파를 채 썰(?) 수 있었다. 볶음밥등 야채를 잘게 다져야 할 때는 칼로 크게 숭덩숭덩 재료를 자른 뒤, 가위손이 된 듯 커다란 볼 위에 재료를 집어넣고 싹둑싹둑 썬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덧 주방에는 부엌가위가 몇 개씩 늘어나고 있다.
단, 택배상자만큼은 칼의 도움을 받는다. 이 경우에는 몸(주로 가슴과 배)에 택배상자를 딱 붙여서 고정한 뒤에 멀리서부터 칼로 쓰윽 그어 테이프를 자른다. 칼로 몸이 다치지 않게 모서리 끝 바로 앞에서 칼을 멈추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간혹 비닐로 포장이 되어 오는 택배가 있으면, 약간의 짜증과 함께 최대한 얇게 윗부분을 가위로 서걱서걱 잘라 오픈한다. 가끔 왼손에 강직이 심하게 올라오는 날에는, 의자에 앉아 오른발로 종이와 상자를 붙잡은 뒤에 칼로 살살 자른다.
작은 과자포장지나 약봉지를 뜯을 때는 이를 사용해서 물고 오른손으로 당겨 연다. 언젠가 나의 이런 모습을 본 엄마가 기함하며 "그러다 이 다 나가!"라고 하지만, 잘 열리지 않는 포장지를 입으로 가져가는 게 나쁜 버릇이 되어 가고 있다. 어쩌면 답답한 마음에 도구보다도 이를 먼저 쓰는 것일 수도 있다. 조금은, 침착하고 여유를 가져야겠지.
뭐든, 시행착오를 겪다 보면 나만의 해답을 찾게 된다. 물론 그 해답이 최선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때그때 나만의 답을 찾으며 포기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