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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뀨냥 Feb 08. 2024

학교에 택배가 어마어마하게 온 날

할 수 있는 만큼은

  일 년에 한 번. 상담실에 택배가 몰아 오는 경우가 있다. 바로 10월에 진행하는 애플데이. 사실 학교에서 필수로 해야 하는 행사는 아니지만, 학생들의 참여도와 반응이 너무 좋아서 매년 진행하고 있다. 전교생 대부분이 참여하다 보니, 그만큼 구입해야 할 물품들도 많다. 애플데이 편지지, 선물로 줄 볼펜, 각종 과자, 포장용품 등등. 한동안은 상담실에 택배박스가 차곡차곡 쌓이는 시기가 바로 10월이다.


  아쉽게도, 택배는 상담실이 있는 2층이 아닌 1층 행정실 앞에 한꺼번에 놓아둔다. 나의 편의를 위해 택배기사님께 상담실 문 앞까지 배송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절대 안 될 일이다. 당연하게도, 커다란 택배 박스는 한 손으로는 들 수 없다. 작은 상자들은 어찌어찌 한 팔로 안고 물건을 옮기지만, 커다란 박스는 아무리 안에 든 물건이 가볍다고 해도 한 손으로는 무리다.


  사실 학교 복직 전부터 머릿속으로 각종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편마비 환자인 내가 학교현장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각종 상황을 상상하며 그에 대한 대처 및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시뮬레이션은 내게 불안과 걱정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로 인해 해결된 많은 일들이 있고 지금껏 무리 없이 학교에서 지내고 있다.





  커다란 택배를 옮기기 위해 웨건을 샀다. 바퀴가 달린 웨건을 돌돌 끌고 택배가 쌓여 있는 1층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웨건을 복도 벽에 딱 붙인 뒤 발로 쓱쓱 택배상자를 밀며 웨건 바로 앞으로 가져온다. 그리고 한쪽 팔과 몸을 이용해서 택배상자를 굴려 웨건에 안착시킨다. 이 방법으로 택배를 옮기고 나면 이마에 땀이 맺히지만, 그래도 혼자 힘으로 해냈다는 뿌듯함이 밀려온다.


  "다른 선생님께 부탁하면 되지 않아?"


  다른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친구가 내게 걱정을 표하며 물었다. 물론, 내가 SOS를 요청하면 다들 도와주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학교에서 단지 가르치는 일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다른 동료 선생님들의 귀한 시간을 감히 뺏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또한 장애가 있는 교사라고 해서 동료 선생님들에게 과도한 배려의 대상이 되고 싶지는 않다. 내 욕심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장애 교사가 아닌 '그냥 선생님'으로 남고 싶으므로.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초, 중 통합학교여서 가끔 내가 1층에서 낑낑거리고 있으면 중학교 남학생들이 "도와드릴까요?" 하고 묻는다. 그럴 때는 감사히 고개를 끄덕인다. 나보다 덩치도 크고 힘도 센 중학생들은 무심한 표정으로 쓱 택배상자를 들고 웨건 안으로 놓아준다. 마음 같아서는 상담실에 있는 간식이라도 주고 싶은데, 그들은 고마움을 표하는 나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쿨하게 제 갈길을 간다.


  수업을 할 때도 웨건에 수업자료를 싣고 각 반으로 떠난다. 학생들은 웨건을 끌고 온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며, 안에 든 물건이 무엇인지 너도 나도 확인하려고 한다. 학생들에게 웨건은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상자처럼 느껴지는지, 눈을 반짝이며 이건 뭐예요? 저건 뭐예요? 하고 묻는다. 그런 아이들의 호기심이 귀엽고 기뻐서, 나 또한 힘차게 수업을 시작한다.


  '할 수 있는 만큼은 스스로 최선을 다한다.' 그게 나의 고집이자 일종의 신념이다. 가끔은 남편에게 속상함을 토로하고 혼자서 울기도 하지만, 스스로 할 수 있다면 아무리 힘이 들어도 도전하고, 해나가고 싶다.


  그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자, 세상에 맞서는 마음가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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