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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뀨냥 Feb 07. 2024

편마비 환자의 취미생활-애니메이션

나의 세계가 넓어지는 이유

  생각해 보면, 나는 어렸을 적부터 오타쿠의 소양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텔레비전에서 틀어주는 마법소녀물에 열광했으며, 일요일 아침 디즈니 만화동산은 꼭 사수했다. 초등학생 때 부모님 손을 잡고 간 영화관에서 본 지브리의 명작은, 감수성 많은 어린이의 눈물샘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여기가 한국이야? 일본이야?"


  어김없이 소파에 앉아서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는 나에게, 남편이 툭, 한마디를 던진다. 아쉽게도, 남편은 정말 유명한 애니메이션 한, 두 개만 나와 함께 보는 편이라 이쪽 주제에 있어서는 대화의 폭이 좁다.


  "자기도 같이 볼래? 여기 제작사가 말이지, 작화로 유명한..."


  "저는 들어가서 게임하겠습니다."


  남편은 내 권유를 단칼에 자른 후 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열연하는 성우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이 만들어낸 환상적인 이야기에 빠져든다. 어떻게 그림으로 저런 액션을 표현할 수 있지? 저 연출과 OST는 어떻고! 작화진을 갈아 넣었네!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끝까지 달린다. 그리고 오타쿠의 레벨이 한 단계 더 오른다.


  디즈니와 지브리 애니메이션과 같은 비교적 대중적인 애니메이션부터, 제목을 말하면 '그게 뭔데요?'라고 고개를 갸웃할만한 TV애니메이션까지. 그동안 나를 스쳐간 수많은 작품들이 생각난다. 애니메이션으로 논문 한 편을 뚝딱 써 내려갈 수 있을 것도 같다.


  사실 나도 영화나 드라마보다 왜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드라마는 아무리 재미있다고 해도 뒷 내용이 궁금하거나 진심으로 푹 빠져 보기가 어렵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드라마보다는 낫지만, 굳이 찾아보지 않는다.


  물론, 교사로서의 체면이 있으니, 학교에서는 완전히 일코(일반인 코스프레)를 유지한다. 간혹, 학생들이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주제로 이야기를 꺼내면, 침착함을 유지한 채 '아, 그거 재미있지.' 정도로만 반응한다. 하지만 속으로는 하루종일 그 애니메이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정도다.




  다행히도 현재 내가 가장 빠져든 애니메이션은 남편도 어느 정도 재미를 인정해 주어서, 내가 주접을 떨어도 인정해 주며 맞장구를 친다.


  "아냐 너무 귀여워! 요르 너무 예뻐!"


  "맞아."


  이렇게 반가운 오타쿠 친구가 한 명 늘었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이유는 너무 간단하다. '재미있고, 예쁘고, 뭐든지 가능해서.' 거의 반년동안 입퇴원을 반복하던 시기에도 애니메이션은 내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병실의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이어폰을 꽂고 애니메이션을 보다 보면 하루가 금방 흘러갔고, 그렇게 견뎌낼 수 있었다.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여운이 남는다. 희망찬 주인공이 내뱉는 명대사에 마음이 요동쳤고, 두 연인의 간질간질한 썸에 대리 설렘을 느꼈다.


  어쩌면, 이 나이 먹고도 아직 철이 덜 든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쭉 애니메이션을 보며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세상에 한 명쯤, 그런 할머니가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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