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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진 May 24. 2022

#2. 카페인 중독자에게 내려진 커피 금지령…….

선생님 그건 안될 것 같아요...


1. 나를 고양이와 비교하지 말기



쉬거나 여유가 생기는 날이면 자주 가는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낸다. 카페는 도보로 10-15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데 좁은 골목을 나오면 주차장이 있는 주택이 있다. 그 주택에는 몇 년 전부터 고양이 집, 장난감, 등 고양이 물품이 늘어나더니 5, 6마리 정도의 길고양이 쉼터가 되어버린 듯했다.


그런 날은 그 쉼터에서 멈추어 고양이를 구경하는 것이 스케줄이 되어버렸다. 이곳에서 지내는 고양이들을 보면 항상 편안해 보인다. 대부분 늘어지게 자는 고양이들, 느리게 걷는 냥이, 넌 뭐냐는 듯 나와 눈싸움하는 냥이... '다가가면 도망가겠지?' 생각에 거리를 두고 감상하곤 하는데……. 기다리다 보면 마음속으로 다가와 줬으면 하곤 한다. 요즘은 날씨가 좋아서 고양이들이 마당에 몸을 널브러뜨려 잠을 자 곤하고 나는 자는 고양이들을 구경하며 혼잣말도 하고 멍 때리기도 한다. 5-10분 남짓이지만 복잡한 머리가 5분 동안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다.


‘쟤네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아무 생각도 안 하려나.……. 며칠만 고양이로 살 수 있다면 좋겠다.…….’

정말……. 하다 하다 고양이를 부러워하는 나를 한심해하며 다시 카페로 향한다.…….


"뭘보냥..."





2. 자책하면 안 되는 걸 알고 있지만…….



매일 같이 일기를 쓰진 않았지만 노트북에 저장된 나의 지난 일기들을 꺼내어 볼 때면 공통점이 있다. 항상 마지막 문장은 후회와 자책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일을 쉴 때 집에 있으면 생각이 많아져서 일주일 중 5일을 카페로 향한 적도 있다. 카페에 있는다고 해서 잡생각이 안 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누워있기보다 앉아있음으로써 덜 게으르다고 나를 설득한다. 


주로 자존감이 많이 무너졌던 시기는 일을 쉴 때였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뭐라도 하다 보면 위축된 마음이 조금은 나아지는 듯하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면 다들 열심이다 태블릿 pc, 노트북으로 일을 하는 듯한 사람, 미팅을 하는 사람, 공부를 하는 사람, 점심시간에 나와 시간을 보내는 듯 한 회사원들, 과제를 하는 학생들 그 사이에 책 읽다가 멍 때리는 나……. 어떨 때는 아무도 소외시키지 않는데 소외된 듯 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글도 쓰고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내다가 짐을 챙겨 카페를 나온다.


왔던 길과는 다른 육교가 있는 큰길을 지나 집으로 향한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큰길은 왔던 길보다 돌아가는 길이라 집에 가는데 시간은 좀 걸리지만 사소한 이유가 있다. 이 길을 통해 육교를 건널 때에는 대부분 해가 지고 있거나 지고 밤하늘을 보며 돌아왔다. 오늘 했던 일과 앞으로의 걱정으로 생각을 정리하며 육교를 내려온다. 너무 많은 생각이 날뛰어 정리가 안 되는 날에는 멈춰 서서 해지는 걸 보며 멍 때리기도 하고 느리게 걷기도 하며 내려온다. 그렇다 한들 사실 개인적인 상황이 나아지는 건 없다... 그래도 어디 다치지 않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으니 그걸로 되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3. 약물치료 중 카페인은 독이래요…….



우울증은 내가 카페 일을 하던 중에 찾아왔다. 아니 사실은 외면하고 있었다가 맞는 것 같다. 일을 시작하고 적응기간 중이었는데 카페의 특성상 반복적인 일이 많았다 실수도 너무 잦았고 늘 하던 일이 갑작스레 기억이 안나는 순간이 자주 찾아왔다 그럼 또 자책으로 이어지고 악순환이었다... 망설이다 결국에 옆 동네에 있는 병원을 찾았다. 우울감과 불안감이 높다는 진단을 받았고 약물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뜻하지 않은 청천벽력 같았던 말은 우울증도 불안장애도 아닌 커피 금지령이었다…….


항우울제는 카페인과 함께 복용 시 불안감을 증가시킨다고……. 

카페에서 일하기도 하고 워낙 커피 없이 안 지내본 나이기에 걱정을 한가득 안고 병원을 나왔다. 그래서 카페에서 일하면서 커피를 어떻게 끊었냐고? 당연히 못 끊었지…….

물론 줄이려고 노력은 했다 기본 2샷으로 먹었는데 1샷으로 줄였고 하루 3잔 마시는 커피를 2잔에서 1잔 반으로 줄였다.


2주 뒤에 내원했을 때 선생님은 당연히 물어보셨다 커피는 끊으셨냐고……. 끊었다는 대답 대신 많이 줄였다고 애써 대답했다……. 솔직히 얘기를 다음 시작했다 줄이기가 힘들다고…….


선생님  안녕하세요. 가을 씨 지난 2주는 어떠셨나요?


      나  그럭저럭 지낸 것 같아요.


선생님 가을 씨 커피는 끊으셨어요.?


      나  아니요……. 그래도 많이 줄였어요.…….


선생님 힘드신 건 알지만 끊으셔야 합니다……. ㅎㅎ


      나  사실 끊기가 힘들어요.……. 날씨도 덥고 손님들도 많으면 목이 말라서 계속 커피를 찾게 돼요...


선생님  물드세요 카페인은 수분이 부족할 때 드시면 오히려 수분을 빼앗아가서 더 안 좋습니다.


        네……. 그리고 오픈 근무를 하게 되면 커피 세팅을 해야 되고 커피 맛을 봐야 되는 것도 일이라…….


선생님  맛보고 뱉으세요~


      나  네……. 사실 커피 마시는 게 유일한 낙이라 안 마시면 불안해서 찾게 되는 거 같아요…….


선생님  카페인을 섭취하게 되면 오히려 불안감을 높여요 힘드시겠지만 안 드시면 좋아요 가 아니라 다시                 면 좋지 않고 약과 함께 복용하면 더 안 좋기 때문에 끊으라고 단호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가을               커피는 끊으세요.


      나 네……. 노력하겠습니다.…….


선생님 네~ 2주 뒤에 뵐게요. 가을 씨~


모두 맞는 말씀으로 창과 방패처럼 날 위해 단호하게 모두 쳐내시는  선생님에 결국 노력하겠다고 수긍했다…….





4. 하루 늦어도 괜찮아



20대 초반에 나의 대부분 관심사는 옷이었고 가장 좋아하던 브랜드가 있었다. 그중 카디건이 너무 맘에 들어 구매욕구가 솟아났다……. 그렇지만 나에게 많이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홈페이지에 '재고 수량 5개'라는 숫자는 나를 전전긍긍하게 만들었고, 더군다나 나에겐 사이즈가 많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예쁜 디자인에 혹해 결국 구매하고 말았다. 거의 나의 한 달 아르바이트비였지만…….


선주문 후 제작되는 제품이어서 구매를 하고도 오랜 기간 기다려야 했었다. 택배를 기다리며 홈페이지를 자주 들락날락했는데 하루라도 지체되었다가는 살 수 없을 것 같게 만들었던 남은 수량이 보게 되었고.... 오랜 기간 기다린 끝에 받은 옷은 마음에 들었지만 궁금해서 계속 들락날락하며 남은 수량을 보았지만 결국 마지막으로 들어갈 때까지 내 카디건은 품절되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카디건이 대체 뭐라고 나는 하루라도 늦게 사면 안 될 것처럼 전전긍긍하고 조급하게 느꼈을까...? 만약 구입을 안 했더라도 나중에 더 마음에 드는 카디건을 사거나 중고로 사도 되는 선택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야가 많이 좁았음을 느꼈다.


성인이 된 후 늘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뒤쳐졌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항상 바로 앞 밖에는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못 살까 봐 조급하게 사버린 카디건처럼 하루쯤 늦는다고 크게 잘못되진 않는데……. 갓 성인 된 나에게는 '늦었을 땐 진짜 늦은 것'이라는 말은 와닿고,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은'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었고 지금에서야 조금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어떤 선택을 하던 후회하기 마련이며 후회하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급하게 해결하지 않아도 큰일이 나지 않는다고 어렸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1번에서 이야기한 신기한 고양이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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