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크리스마스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by 영자의 전성시대

어릴 때 크리스마스는 몇 주 전부터 두근거리며 기다린 날이다. 손꼽아 기다리며 ‘과연 산타가 어떤 선물을 줄까?’ 너무 궁금해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지금도 기억나는 건, 기대감으로 새벽녘에 실눈을 떴을 때 내 어깨 위로 롤케이크(이 당시 롤케이크는 구경하기도 힘든 음식이었음)의 상자가 보였고 잠이 번쩍 깨서 괴성을 질러댔다. 내 소리에 부모님은 화들짝 놀라 깨셨고, 개의치 않고 내복 바람으로 신이 나서 노래 부르며 이불 위에서 흥분이 가라앉을 때까지 춤을 추었다. 롤케이크를 주다니 산타 할아버지가 특별히 나를 더 사랑하는 줄 알았다. 그땐 그랬다.


좀 더 커서는 친구들과 노는 게 선물이었다. 그래서 부모님께 한 달 전에 허락받고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친구들을 우리 집으로 초대했다. 치킨이며 간식을 잔뜩 준비하고 밤새 먹고 ‘진실게임’을 하며 눈물을 흘려가며 웃고 떠들었다. 한 번은 우리가 너무 떠들어서 새벽에 잠을 깬 엄마가 나와 “조용히 해!”하며 신경질을 내셨다. 우리는 그게 또 웃겨서 숨이 넘어가라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웃어댔다. 굴러가는 낙엽에도 웃긴 사춘기의 청소년이라 그랬나 보다.


갓 어른이 되어서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남자친구 만들기 미팅이나 소개팅을 하며 설레는 시간을 보냈다. 금세 남자친구가 생겨서 많은 만남을 해보진 않았지만 나름 그 설렘이 좋았던 것 같다. 남자 친구가 생긴 뒤, 크리스마스는 시내 데이트를 하는 날로 공연을 보거나 평소 가지 못했던 레스토랑을 가는 특별한 날이었다. 제일 예뻐 보이는 옷을 입기도 하고, 얼어 죽어도 좋을 얇은 옷을 입기도 했다. 오랜 시간 공들여 화장을 하고 한껏 멋을 부렸다. 남자친구에게 보여 준다기보다는 예쁜 내가 되고 싶은 날이었기 때문이다.


내 가정을 만든 뒤에는 나의 크리스마스라기보다는 아이들을 위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해마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찾고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애썼다. 우리 부모님이 나를 위해 해주었듯이 말이다. 한 번은 아이들이 찜질방에서 노는 걸 좋아해서 크리스마스 전날 가서 자게 되었다. 아이들 선물을 몰래 다른 가방에 넣어 숨겨두었고, 다음날 이른 아침 아이들의 사물함에 선물을 넣어 두었다. 일어난 아이들은 산타의 선물을 찾았는데 옆에 없으니 산타가 찜질방이라 못 찾는 거라며 슬퍼했다. 아이들에게 그럴 리가 없다며 혹시 모르니 사물함에 가보라고 키를 주었다. 선물을 찾아온 아이들은 깜짝 놀랐고, 찜질방까지 산타가 찾아왔다며 감동했다. 그 옛날의 나처럼.

KakaoTalk_20221222_160816695.jpg


크리스마스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이날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았다. 굳이 계획하자면 아무것도 하지 않을 계획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토록 매력적인 줄 처음 깨달았다. 평소대로 늘 하던 만큼의 화장을 하고 주일이니 교회 가고, 늘 만나던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와 가족과 함께하는 것, 이것이 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특별한 날이 될 것이다. 요즘 자꾸만 평범한 하루가 감사하고 이게 참 평안하다. 특별한 게 싫어지는 게 나이가 드는 것이라고 한다면 할 말 없겠지만, 살아오면서 특별한 날이 특별히 기억에 남지 않는다. 오히려 소소한 일상 속에 생긴 일들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다.


고로 이번 크리스마스에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KakaoTalk_20221222_160816695_02.jpg


이전 18화내 친구의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