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날 아침!
갑자기 두꺼운 유럽 여행 책을 나라별로 나눠서 들고 다니면
훨씬 덜 무겁고 간편할 것 같다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왜 이런 좋은 생각은 미리미리 떠오르지 않는 걸까.
바쁜 와중에 칼로 책을 가르고 테이프를 붙이다가
엄마한테 한 소리 들었다 힝.
출국 준비를 철저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공항버스가 도착하는 걸 보는 순간 깨달았다.
공항버스 요금이랑 출발 시간만 알아 놓고
요금을 어떻게 내는지는 알아보지 않았구나.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1초쯤 들었지만 이미 버스가 도착해 버린 걸.
다른 사람들을 보고 무사히 버스에 탑승했다!
한국 동전을 새 돈으로 바꿔서 여행 중에 나에게 도움을 주는 외국인들에게 기념으로 주고 싶었다.
그래서 땀 흘리며 공항 은행으로 갔는데 새 동전은 없다고 했다.
당연히 있을 줄 알았는데,,
미리 새 동전으로 바꿔 놓지 않은 나를 탓할 수밖에.
반짝반짝 새 돈으로 선물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다.
그냥 출국해야지 뭐.
이제 조금 있으면 비행기가 이륙하는데 아직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비행기는 역시 무섭다.
조금이라도 내려가는 것 같으면 걱정이...
비행기를 무서워하는 내가 혼자 15시간이나 비행기를 타고 유럽까지 가다니!
욕망은 걱정을 이긴다.
어느새 밑이 보이지도 않는다. 안개가 많이 껴서 그런가?
무사히 이륙하고 나니 이제 배가 고프다.
내 옆에 앉은 외국인 아줌마가 소고기 볶음 고추장을 샐러드에 넣어서 비벼 먹었다.
아마 샐러드 소스인 줄 아셨던 것 같은데....
튜브형 고추장을 샐러드 위에 짜고 계신 걸 본 순간
알려줄까 말까 계속 고민했지만,, 늦어버렸다.
나의 소심한 성격이 여기서도 나오네.
몇 입 못 드시는 걸 보고 알려 드릴 걸 하고 후회했다.
독일을 경유해서 체코 프라하로 가는 일정인데
15시간 비행이 길긴 길구나.
기내식 먹고 책도 읽고 잠도 자고 다 했지만 아직 하늘 위에 있다.
저번에 무궁화 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간 건 일도 아니었음을 느꼈다.
독일에서 비행기 환승하러 가는 길에 가방에서 책이 떨어졌었나 보다.
책이 떨어지는 줄도 몰랐는데 지나가던 외국분이 알려줘서 무사히 챙겼다.
안 그랬으면 프라하 여행 완전 바보 됐을 텐데.
독일 왠지 마음에 든다.
역시 작은 친절이 그 나라에 대한 이미지를 만든다.
드디어 프라하 공항에 도착했다.
밤이긴 하지만 공항버스 타고 시내까지 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한인 민박 픽업 차량 타고 가기로 예약했으니까
그냥 공항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다.
내가 유럽 땅을 밟다니!
듣던 대로 유럽은 여기저기서 자연스럽게 쪽쪽 거리는구나.
키스하는 커플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잘생긴 대학생이랑 같이 픽업 차량 타고 가는 허황된 꿈을 꾸었으나
초 엘리트인 어떤 아저씨와 같이 픽업 차량 타고
민박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숙박객들이 왠지 나 빼고 다들 친해 보여서 좀 어색했지만
뭐 난.... 오늘 처음 왔고 다른 사람들은 며칠이라도 묵었을 테니까 당연한 거지.
내 옆 침대 여자 애는 분명 나보다 어려 보이는데 3개월째 여행 중이라고 한다.
여행 고수일 듯!
근데 왠지 당차게 잘할 것처럼 생겼다.
나 자신 오늘 큰 캐리어 들고 15시간 걸려서 프라하까지 오느라 수고했다.
비행기에서 푹 자서 잠은 안 오지만
억지로라도 자고 내일부터 본격적인 여행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