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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믐 Dec 07. 2022

도깨비가 찾아준 6년 전의 추억

옷깃만 스친 이에게 받은 책갈피

잃어버린 물건을 도깨비가 찾아준 적이 있나요?


나만의 징크스가 하나 있다.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 일주일 동안 찾지 못하면 재구매를 한다. 그러면 놀랍게도 잃어버린 물건이 어디선가 꼭 나오는 것이다.

이게 나의 징크스라고 인지하기 전까지는 재구매를 하는 게 억울했지만, 지금은 물건을 잃어버리고 재구매를 해야 잃어버린 물건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크게 억울해하지 않는다. 그리고 재구매 텀은 꼭 일주일 간격 이어야 한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나는 도깨비가 다녀갔나 보다라고 이야기한다.

어제오늘은 또 도깨비가 나타나 내가 소중히 아끼던 것들을 찾아주었다.


어제는 이런 일이 있었다.

얼마 전에 구매한 아끼는 운동복이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는 것이다.

집, 가게, 헬스장을 여러 차례 뒤져보고 심지어 내 방구석, 침대 밑, 세탁기, 건조기,
엄마 아빠의 옷장 구석구석까지 말이다.

그제야 나는 아, 역시 이건 재구매해야 해야 된다며 잃어버린 지 일주일이 되었을 때
나는 새 옷을 구매했다. 새 옷을 받고 어젯밤 내 옷장을 다시 뒤져보니 역시나 그렇듯 내가 아끼던 옷이 나오는 것이다. 분명 여러 차례 뒤져본 곳인데도!
이 징크스는 틀리는 법이 없다. 늘 똑같은 패턴으로 나를 놀라게 한다.


그리고 오늘 아침 또 도깨비가 다녀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도깨비는 6년 전 잃어버린 물건을 그리고 추억을 내 눈앞에 가져다 놓았다.



타생지연.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


2016년 22살,

음대 입시가 막 끝난 가을, 권태로운 일상을 보내던 나는 같이 음악을 공부했던 언니로부터 오래간만에 연락을 받았다. “세린아, 언니 카페에 며칠만 알바 땜빵할 사람이 필요한데 너 혹시 가능하니?”


카페 알바 경력이 있는지라 그리고 때마침 급전이 필요하기도 해서 단번에 수락했다.

숙대입구역에 위치한 투썸 플레이스였다. 함께 피아노를 전공했던 언니는 음악에서 한 발짝 물러나 카페의 매니저로 경제활동에 전념하고 있었다. 동시다발적으로 그곳의 아르바이트생들이 개인 사정으로 일주일간 일을 할 수없다고 하여 매니저인 언니는 나와 예전에 일하던 아르바이트생에게 급히 도움을 요청했다.

커피를 내리고, 음료를 제조하고, 디저트를 포장하고, 매장 청결관리를 하고 딱히 어려울 것 없었지만 대학교 앞이라 그런지 상당히 바빴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함께 일하게 된 또 다른 땜빵 아르바이트생은 상냥하고 훤칠한 남자분이었다.

배우 지망생이라고 하셨던 그분은 나보다 나이가 3, 4살 정도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어찌나 싹싹한지 손끝까지 친절이 몸에 배어있었고 훈훈한 얼굴에 일도 잘했기에 언니가 되게 아끼는 동생이라고 전해 들었다. 같이 있으면 되게 주위가 환해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쯤 되면 극적인 러브스토리의 드라마가 나와야 하지만 아쉽게도 그분과 큰 접점은 없었다.

나 또한 그 당시 남자 친구가 있었다. 그저 친절하고도 형식적인 대화만 있었을 뿐이다.
나이는 어떻게 되는지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지 말이다. 그렇게 짧지만 새로운 사람과 함께 카페 일을 도왔다.


어느덧 알바 마지막 날, 일이 끝나갈 무렵 그분은 작은 선물을 건네었다.
"별 것 아니지만, 오늘 마지막이라서요." 그는 이 이후로는 이곳에 오지 못할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보이며 소박하게 포장된 선물을 전해주며 작별의 인사를 전했다.
아니, 알게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에게 작별의 선물을 주다니!

낯가림이 무척 심한 나는 다소 놀란 마음으로 선물을 받았다.

그분이 건넨 내게 선물은 피아노 모양의 책갈피였다. 하지만 코팅된 종이나 자석 같은 것으로 만들어진 흔한 디자인이 아닌 빈티지 골동품 샵에서 발견할 법한 디자인이었는데 기다란 줄에 그랜드 피아노가 매달려 있었다. 그분에게는 내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일 뿐인데도 사소하게 오고 갔던 대화를 기억하며 선물을 골랐다고 생각하니 얼굴 못지않은 그의 아리따운 마음씨와 올곧은 인성에 나는 감탄했다. 그리고 그가 준 피아노 책갈피를 무척이나 아꼈었다.


하지만 머지않아 나는 유학길에 오르며 수차례 이사를 다닌 탓에 이 책갈피가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아 완전히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조그마한 물건이니 잃어버리기 쉬울 것 같아 분명 소중한 추억이 담긴 작은 상자에 넣어두었던 것 같은데 그 상자 조차도 어떤 것이었는지 기억이 안 날뿐더러 내 짐은 미국, 통영, 서울 여기저기로 흩어져있었다. 그 후로도 책을 읽고 갈피를 꽂을 때면 이따금 그 피아노 책갈피가 생각나곤 했는데 이미 잃어버린 것을 어쩌겠냐며 아쉬운 마음으로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잊고 살았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도깨비가 나타났다!

엄마와 함께 출근을 하기 위해 화장하는 엄마를 기다리며 푹신한 안방 침대에 눌러앉았다.

그때 내 시야에 들어온 건 다름 아닌 그토록 찾았던 피아노 책갈피였다.

이게 뜬금없이 엄마의 침대 협탁 위에 떡하니 얹어져 있는 것이다.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엄마!! 이 책갈피 어디서 났어 갑자기?”

“몰라? 어제 침대 밑에 떨어져 있던데 니끼가?”

“내가 몇 년 동안 찾았는데 이게 왜 갑자기 거기서 나와??????”

“모르겠네 거기 있던데? 예뻐서 주워놨다.”


정말 귀신이 곡 할 노릇이다.

이게 왜 갑자기 땅바닥에서 나타난 거지?

시간차가 몇 년인데, 심지어 유학을 가기 전부터 지금까지 우리 본가인 통영 집도 이사를 3번이나 했다.

창고에서 발견이 되면 몰라도 숨 쉬듯 드나드는 안방 땅바닥에서 갑자기 나타나다니 이 무슨 얼토당토않은 일인가?

나는 성급히 책갈피를 손에 쥐고 들뜬 마음으로 방에 달려가 읽고 있던 책에 책갈피를 꽂았다.

줄이 길어서 달랑거리는 피아노는 긴 세월에 때가 묻어 더욱 골동품스러워졌다. 사연 있는 골동품.

나는 책 페이지에 꽂혀 오래된 시계 추처럼 달랑거리는 피아노 책갈피를 엄마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엄마 이거 봐 너무 예쁘지. 이거 도깨비가 찾아줬나 봐.”

종일 책갈피를 바라보며 과거를 그리워한다.


이 작은 책갈피 하나에 이렇게나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에도 감사함을 소중함을 느끼는 그 배우 지망생은 지금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문득 궁금했지만 과거는 과거이기에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 이상 궁금해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단지, 그분에게 받았던 작은 선물 하나로 나는 별 볼 일 없는 일상에서 잠시나마 옛 추억으로 따분한 공기를 환기하며 하루를 따뜻하게 보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책갈피 하나로 오늘 하루 내내 과거를 추억하며 나는 인연이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왔는지 그리고 가족, 연인, 친구들에게 어떤 선물을 해왔는지 되돌아보았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속담을 너무 간과하고 살지는 않았던가? 진심으로 상대방을 생각하여 선물을 고른 적이 있는가?

단순히 인맥 유지를 위해 카카오톡 선물하기에서 인기 많은 상품을 그저 골라 보내진 않았는지 돌아보며 나의 방식도 고쳐나가고자 마음을 먹는다.

이토록 값진 선물은 주는 이의 섬세하고 진정성 있는 마음에서 비롯되어 받는 이에게 오래도록 아름답게 회자되고 소중한 자산으로 남는 것이다.

나 또한 받는 이에서 끝나지 않고 더욱 주는 이의 진정성 있는 면모를 갖춰야겠다.



그리고 이 어여쁜 책갈피는 도깨비가 6년 만에 찾아주었으니 더 이상 잃어버릴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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