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퍼 Aug 28. 2024

차분히 멀어질게

이제 더 이상 너랑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어서.

그다지 친하지도 않을 때 나를 집으로 초대한 동료는 네가 처음이었어. 

관계에 선이 있는 편인 내가 흔쾌히 초대에 응한 것도 처음이었지. 

아마도 나는 그때부터 너한테 잘 보이고 싶었던 것 같아. 

너를 대하는 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지만, 나는 너와 잘 지내고 싶었거든. 어떻게 보면 친하게 지내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어. 


너는 너를 참 멋지게 생각했고, 사랑하는 사람이었어. 나는 내가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고, 나를 무척 많이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거든. 그래서 그런 너를 부러워했던 것 같아. 자신을 그만큼 사랑한다고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는 네가 꽤 멋지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그런 너는 일할 때 너만의 뾰족함을 가지고 있었거든. 


우리는 서로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있었고, 어떨 땐 비슷한 걸 가지고 있기도 했어. 그래서 우린 빨리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 너와 친한 동료들과 자연스레 나도 친해지기도 했고, 새로운 동료들이 생기면 그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는 너와 친하게 지내며 나도 그 사람들과 어울렸었어. 굳이 내가 애써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진 않았던 것 같거든. 어쩌면 나는 그냥 너에게 안주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네가 떠나니 나는 애써야 했으니까. 


너와 같은 조직에 머무는 1년 동안 나는 사적으로도 동료들을 참 많이 만났었어. 퇴사자와 재직자 할 것 없이. 너는 사람이 싫다면서 그만큼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지. 사실 사람을 좋아하는 척 하지만 사람을 싫어하는 나와는 달리. 거절을 잘 못하는 나는 늘 네가 원하면 함께했어. 그게 불편했지만 또 마냥 불편하지도 않다고 느꼈던 건 나는 너에게 멋진 사람이고 싶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 멋진 사람이자 좋은 사람. 


그래서 나는 말에 상처를 많이 받는 사람이고, 너는 감정보단 사실에 기반해서 말하는 사람이라 네가 하는 말들이 내게 꽤 많이 상처가 되어도 나는 말하지 못했어. 너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았거든. 


어느 날 나와 더 가깝게 지내던 네가 다른 동료와 더 가깝고 즐겁게 지내더라. 너와 내가 당연하게 함께 먹던 점심이 약속을 잡아야 먹을 수 있게 되고, 너와 다른 동료 사이에 내가 낀 것처럼 불편해지더라. 그래서 나는 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어. 그러면서 내가 하는 말에 너는 더 날카롭게 반응하더라. 그 반응들에 나는 더 위축되고 더 상처받게 되더라고. 그래서 나도 굳이 너와 무언가를 함께하려 하지 않게 되더라. 그러다 우린 그냥 형식적인 사이가 된 거겠지.


그런 너를 오늘 우리가 함께 일하던 때 자주 가던 카페에서 우연히 만났어. 더 가깝게 지내던 동료와 함께인 너를. 나는 너와 그 동료를 보자마자 불편해졌어. 그래서 다른 자리를 잡았는데, 그런 내게 너는 아무렇지 않은 듯 왜 거기에 짐을 놓냐고 물었지. 그래서 나는 둘이 보내는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라고 답했어. 그런 내게 너는 말을 왜 그렇게 하냐고 했지. 나는 그 말조차도 상처였어. 너의 말에 나는 더 불편해졌지만 늘 그렇듯 내색할 수 없었어. 애써 웃으며 그간의 안부를 전하고, 별 시답잖은 얘기를 하다 일어서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이제 더 이상 너와 하고 싶은 얘기가 없다는 걸 깨달았어. 


너는 나 스스로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인가? 고민하게 해. 너는 내가 예민한 사람인가? 생각하게 해. 나는 너의 기분을 살피는데 너는 나의 기분을 살피지 않아. 너는 늘 네가 옳고, 네가 하는 말은 다 논리 정연하다고 생각해. 나는 그런 네가 가끔 버거웠어. 삼켜내기 어려웠어. 하지만 나는 구태여 그것들을 표현하여 너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어. 그게 나에겐 너에 대한 배려였고, 관심이었고, 신뢰였어. 


너와는 다른 방식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런 나에게 너는 유해해. 나는 이제야 그걸 인정하고 내뱉어. 이제 나는 너와 더 이상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마음이, 감정이 없어. 이런 내게 누군가는 회피한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네가 내게 유해하니 나는 이제 너와 멀어지려 해. 


사실 내가 이렇게 멀어지는 게 너에게 그렇게 큰일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내겐 아주 큰 일임을. 그만큼 나는 너를 참 좋아했음을. 너에게 더 좋은 사람이, 멋진 사람이 되고 싶어 했음을 남겨두려 해. 나중에, 아주 나중에 내가 이 글을 볼 땐 글을 쓸 때보단 조금 더 나은 사람이, 그릇이 큰 사람이 되어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감히 좋아한다고 말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