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이었던 내가 결혼을 택한 이유
가끔 일어나서 물끄러미 배우자의 자는 모습을 지켜보곤 한다. 턱을 괴고 고개를 들어 자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다양한 감정이 몰려온다. 다행스레 아직까지 자는 모습이 미운적은 없었다. 아마 우리가 신혼이라 더 그렇겠지만. 큼큼. 앞으로도 자는 모습은 늘 귀엽다고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떨 땐 얌전히 누워서 자기도 하고, 어떨 땐 몸을 한껏 구겨 자고 있기도 하다. 깰 줄 알지만 나중에 어디라도 아플 것 같아 너무 심하다 싶으면 자세를 바꿔주기도 한다. 아마 이건 짝꿍도 마찬가지 일 것 같은데, 우린 취침시간이 달라 내가 먼저 잠들고 먼저 일어나기 때문이다.
어느 날엔 자다가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서 '뭐지'하고 상황을 살피니, 내가 침대를 다 차지하고 있어서 짝꿍이 본인 누울 곳이 없다고 킥킥거리는 소리였다. 또 다른 날엔 세상 웃긴 얼굴로 자고 있는 짝꿍을 보다가 내가 킥킥거린다. 그럼 짝꿍이 한껏 졸린 목소리로 "왜에-"하고 묻는다. 그럼 나는 조용히 사진을 찍지. 찰칵. 그리고 나중에 보여주면서 또 같이 킥킥 웃는다.
누군가의 자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는 건 특별하다. 그래서인지 자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괜히 상대에 대한 마음이 더 애틋해지는 듯하다. 괜스레 자는 얼굴을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이부자리를 정리해주기도 하고. 그래서 로맨스 드라마에서 그렇게 이불을 덮어주는 사랑스러운 얼굴을 많이 사용하나 보다.
신혼집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던 날, 자다가 깼는데 짝꿍이 자는 나를 보고 있었다. 왜 안 자고 그러고 있냐 물으니 "그냥"이라고 답했다. 그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그냥은 그냥이 아니었던 것 같다. 혼자 눕다가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이 막 생겼을 때의 그 낯섦, 설렘, 이상한 긴장감, 내가 이 사람과 정말 평생을 함께할 수 있을까 하는 작은 의문. 아마도 다양한 감정을 묵혀 "그냥"이라고 답했을 테다. 시간이 지나 내가 자는 짝꿍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수 있을 때 나도 똑같은 생각들을 했었으니까.
결혼이나 배우자에 대한 큰 환상도 기대도 없이, 딱히 혼자 잘 먹고살 수 있으면 결혼이라는 제도에 묶이고 싶지 않았던 나였다. 그런데 지금은 '결혼,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은데?'하고 생각한다. 나와 배우자는 성향상 불타오르는 사랑으로 결혼하지 않았다. 서로 의지하는 마음으로, 내게 없는 무엇이 상대에게 있음을 인정하는 마음으로, 아끼는 무엇을 다 내어주지는 못하지만 나눌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마음으로 결혼했다.
그래서 같이 생활하며 초반에는 참 많이도 싸웠다. 나는 짝꿍에 대한 기대가 컸고, 짝꿍은 나를 덜 예민한 사람으로 봤던 모양이다. 그 간극을 찾고, 서로를 위해 조절하느라 많은 감정을 쏟아야 했다. 그럼에도, 그 속에서 나란히 앉아 TV를 보며 치킨을 먹는 일상, 삶은 밤을 이가 깨지도록 쪼개어 서로 킬킬거리며 파먹는 일상, 퇴근하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 짝꿍을 배웅하고 좋아하는 음식으로 저녁상을 내어주는 일상, 서류에서 또 면접에서 떨어졌다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나를 괜찮다고 본인이 더 열심히 벌겠다고 다독이는 일상.
이런 사소한 일상들이 모여 우리를 만들어 간다. 그래서 이제는 눈빛이나 말투만 봐도 상대의 기분을 알아차리고, 덜 자존심 부리면서 우리만의 안전한 관계를 쌓아가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어려움이 많지만 그럼에도 전처럼 흔들리고 부서지지 않을 수 있는 건, 단단하고 든든한 관계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결혼하면 안정적이라고 하는 것 같기도. 비혼을 외치던 내가 "배우자가 나의 비빌 언덕이야"라고 얘기하는 날이 오다니. 새삼 또 신기하다.
오늘도 먼저 일어나 쿨쿨 자고 있는 짝꿍을 보며, 어떻게 이 사람을 선택했지? 하고 생각해 보니, 딱히 큰 이유는 없는 것 같았다. 그냥 함께 보낸 4번의 새해가 그렇게 만들어 준 것 같다. 딱히 그럴싸한 이유가 없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저 우리가 지나온 시간들이 알겠지. 싶어 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