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결핍에서 시작된 친구 같은 엄마

by 태림

정처 없이 걸으면서, 궁금했던 망고 스티키 라이스를 먹었다.

외부 테이블이 몇 개 있는 집이었는데, 큰 나무가 위에 드리워져 있어 덥지 않았다.

끝이 어디인지 가늠할 수 없는 그 나무의 그늘 아래에서 살랑살랑 부는 바람을 마음껏 느꼈다. 결국 사람은 자연일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별다른 계획이 없기도 했지만, 바깥의 날씨가 점점 더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시간도 때울 겸 한국보다 싼 페디케어를 받으러 가기로 했다. 엄마는 발에 유독 각질이 많은 편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샵 직원이 보더니 스크럽도 추가하겠냐고 물었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시원하게 하라고 해보겠나 싶어서 흔쾌히 추가했다.(나는 추가 안 함..)


민망할 정도로 계속 계속 나오는 각질에 엄마는 머쓱하게 웃으며, 케어해 주시는 분에게 너무 미안해하셨다. 그러면서도 너무 좋아하셨다. 그 모습이 나는 괜히 슬펐는데, 이게 뭐라고 돈, 돈 거리면서 못해왔나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국으로 돌아와선 그 슬픔은 잊고 또 돈, 돈 거리면서 당연하다는 듯 눈치를 주고, 눈치를 보게 되는 게 삶이라 이 글을 쓰면서 또 조금 슬퍼졌다.





컬러칩을 보면서 고심하고 고심해서 고른 디자인이었는데, 하자마자는 마음에 쏙 들더니 숙소 돌아가서 보니 또 괜히 이 컬러로 했나 싶어지기도 했다. 나는 왜 이렇게 늘 후회를 하며 살까.. 그럴 거면 충동적이 지나 말지...





사실 치앙마이에 오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요가였다. 저번 발리여행에서 자연과 함께 영어로 드문드문 알아들으며 하는 수련이 꽤 매력적이었던 탓이다. 엄마랑도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아서 함께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엄마는 "한 번 해보고 ~"라고 답했다. 그 한 마디에 나는 어느 요가원으로, 어떤 수련을 가야 하나 한참 고민했다. 치앙마이에서의 첫 요가 경험이 완벽하지 않으면 다음은 당연히 안 간다고 할 것 같았기에.





그나마 무난히 괜찮은 곳으로 골랐다. 인요가는 나도 처음이었는데, 오히려 하드 한 수련이 아니라 괜찮겠다 싶어서 선택했다. 미리 도착해서 요가원도 둘러보고 일부러 맨 앞자리를 골라 앉았다(엄마가 약간 눈초리를 주긴 했지만 꿋꿋하게 사수했다.) 인요가는 마음을 많이 건드린다던데, 사실 영어를 다 알아듣진 못해서 그렇게 효과적이진 않았다. 하지만, 엄마와 함께 치앙마이에서 요가를 했다는 경험으로 충분했다.


선생님이 나와 엄마를 번갈아 보더니 자매냐고 물었다. 웃으며 엄마라고 대답했더니 에? 하는 반응이기에 엄마에게 전달했더니, 소녀처럼 좋아하셨다. 어릴 때도 엄마랑 다니면 이모랑 나왔냐고 많이 물어봤었는데, 이젠 언니라는 소리를 듣다니. 내 외관 때문인지, 엄마의 외관 때문인지 여전히 도통 모르겠다. 하나 확실한 건, 그때도 지금도 엄마는 젊어 보인다는 소리를 듣기 좋아한다는 것.


엄마와 지난 시간들을 얘기하다 보면, 엄마는 늘 '친구 같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했다는 말을 한다. 확실히 그 선택 덕인지 나는 엄마와도 아빠와도 친구처럼 지내는 딸이 되었다. 가끔 할아버지가 보시곤 애를 이렇게 버릇없게 키웠냐? 할 정도로. 사실 엄마와 나는 그 정도라고 체감하진 않는데, 웃어른이 보기엔 그런 부분이 있나 보다.


삶의 어떤 부분은 결핍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엄마의 엄마와 그렇게 지내지 못했기에, 딸과 친구처럼 지내는 관계를 선택했다. 엄마는 지금까지 한 번도 나와 그렇게 지냈던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다른 선택에 대한 궁금은 남아있겠지만 적어도 후회스럽지 않은 것은 그것이 결핍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엄마가 그렇게 선택해 준 덕에 나는 태어난 순간부터 가장 친한 친구를 가지고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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