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의 조식은 깔끔했지만, 커피는 모자랐다. 엄마와 나는 일상에서도 여행에서도 커피가 가장 중요한 취향이다. 빠르게 준비하고 올드타운 안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날씨가 쨍하니, 너무 아름다웠다. 10월의 서울에서는 느껴볼 수 없는 더위라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엄마는 뿌듯해하며 아무래도 본인이 날씨요정인 것 같다고 했다.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나는 여행 때마다 늘 비나 눈이 오는 사람이라 날씨요정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요즘은 태국에서도 커피를 재배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치앙마이에 오면서 꼭 치앙마이에서 자란 원두를 마셔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치앙마이 내에서도 여러 곳에 지점이 있는 카페였는데, 올드타운에 있는 공간이 이렇게 작을 줄은 몰랐던 터라 약간 당황했다.
그럼에도, 느지막한 아침에 손님이 없어도 바지런히 자신의 일을 해내고 있는 바리스타들을 보고 있자니 마냥 좋아지는 공간이었다.
아직은 얼음에 대한 불신이 있어서 굳이 따뜻한 커피를 골랐다.(사실 드립커피는 따뜻한 게 근본이긴 하지만)
엄마와 나란히 치앙마이에서 나고 볶은 원두를 골라 마셨다. 아직 물가에 대한 이해가 없는 편이라 그냥 시원하게 결제했는데, 나중에 이 커피 가격은 두고두고 우리가 가격을 비교하는 기준값이 되었다. 치앙마이에서 제일 비싼 게 뭐였냐 물으면 단연 커피라고 말할 것 같다.
산미가 꽤 느껴졌는데, 그럼에도 매우 맛있는 커피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맛이 산미임에도 맛있는 커피로 기억될 정도니까. 산미가 도드라져서 아이스로 마셔봤어도 꽤 만족스러웠겠다고 생각했다. 치앙마이에 머물며 또 오겠지 싶었는데, 아무래도 커피 가격 때문에 조금 주춤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뭐 하러 그랬나 싶지만.
늘 여행마다 아끼고 아껴놓고, 돌아와서 후회하길 반복한다. 그때 그거 살걸, 그때 그거 더 먹고 올걸, 하는 그런 후회들. 돌아와 생각하면 또 언제 갈 수 있을까 싶은데, 여행지에서는 곧 또 올 수 있으니까 하며 다음에, 다음에 하게 된다.(여행을 조금 더 자주 하다 보면 나아질까?)
별다른 계획이 없어서 그냥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더위에 취약한 엄마가 힘들까 노심초사하면서도 그저 계속 걷는다. 그러다 발견한 가게에 들어가 구경도 하고, 엄마가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으면 슬쩍 "살래?" 하고 묻기도 하면서.
나는 어릴 때부터 남 눈치 보는 것을 기본값으로 달고 태어난 것처럼 남을 그렇게 신경 썼다. 자라온 환경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어떻게 보면 나의 생존 스킬이 되기도 했겠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그게 그렇게 서러웠다. 한 번은 엄마에게 내가 이런 성향을 가진 건 다 엄마가 그렇게 키워서라는 말을 내뱉었다. 그땐 그저 내 삶이 너무 버거워서 가장 잘 받아주는 엄마에게 쏟아내 버린 감정들이었는데, 그 말을 들은 엄마는 얼마나 속상했을까. 나는 왜 엄마에게만 쉬워질까. 늘 엄마는 내편이라 그런 걸까. 어쩌면 그게 내 본성인 건 아닐까.
그래놓고 정작 나는 엄마에게 눈치를 많이 주는 딸이다. 엄마가 갖고 싶어 하는 거, 먹고 싶어 하는 거 그냥 하게 해 주면 되는데 꼭 그렇게 생색을 내고, 이걸 꼭 해야겠냐고 묻기도 한다. 이건 너무 비싸다고 핀잔을 준다. 마음도 돈도 넉넉하지 못하다는 걸 그렇게 티를 내야 직성이 풀리나 보다. 사실 그래놓고 내 마음이 편한 것도 아니다. 결국 엄마를 눈치 보게 하고, 나도 엄마의 눈치를 보니까.
우리는 어쩌다 서로의 눈치를 봐야만 하게 자란 걸까. 나는 엄마를 보고, 엄마는 엄마의 엄마를 보고, 엄마의 엄마는 또 그 엄마를 보고,,,, 그렇게 그렇게 대물림되듯 내려온 것들이겠지. 하지만 누군가를 탓하고 싶진 않다. 그것을 깨달은 나 스스로를 바꿀 수 있는 건 나뿐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