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그리고 마지막 독립
독립을 마음먹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스무 살이 되어 대학을 입학하자마자 자취방을 구해 학교 앞에 지냈던 시간이 있었으나 첫 번째 혼자 살기는 극심한 우울증으로 1년 만에 막을 내렸고, 결국 다시 본가로 돌아가기로 결정하였다. 그 시간은 독립이라 이름 붙이기엔 스스로 그렇게 느끼지 조차 못하였기에 독립이라 부르지 않기로 하였다.
독립과 자취 사이엔 큰 간극이 있다.
두 번째로 혼자 살기를 결심하였을 때에는 여전히 대학생이라는 점에서 상황 상 큰 차이가 있지는 않았으나 학교가 멀다거나, 다른 지역으로 회사의 발령이 난 것과 같이 목적을 가진 이사와는 차이가 있었다. 그저 "혼자 살기" 그 자체가 목적이었고 다시는 부모님이 있는 집에서 그들과 함께 지내는 순간을 상상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스물세 살에 다시, 그리고 마지막 독립을 결심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얻었던 학교 후문 바로 앞 자취방은 특별한 공간이 아니었다. 원룸을 구경조차 해보지 못했던 나는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여러 개의 부동산을 돌았고, 그들은 몇몇 개의 방을 보여주었으나 1000/40이라는 똑같은 가격에 똑같은 창문 크기, 똑같은 창문 개수, 침대 바로 위에 붙박이 옷장이 있다는 점까지 획일적이었다. 그렇게 똑같이 생긴 집이 사는 사람에 따라 짐이 너무 많아 정돈되지 않아 보인다던가, 집주인이 집에 애정이 없는지 휑하게 어색한 공기를 품고 있는 서로 다르게 보이는 모습이 이상하리만치 두려웠다. 내가 잘 살지 못하면 그걸 집이 알아 채 버리는 것 같아서.
그렇게 모두 똑같은 집을 나의 모습으로 채우고 싶어 싸구려 스탠드를 사서 가져다 놓는다거나 옵션으로 주어진 책상의 상판을 책장 뒤에 숨기고 좌식 책상으로 꾸민다거나 하는 식으로 나의 공간임을 인지하려 했으나 정이 쉽게 붙지 않았다. 같은 빌라 옆집과 아랫집, 그리고 앞집에는 같은 과 동기들이 살았고 그들도 자기만의 취향으로 좁은 방에 소파를 놓는다거나 다른 식기를 쓴다거나 하며 서로 다른 모습이 되려 애를 썼지만 주말이 되면 정 붙이지 못한 빌라는 모두가 본가로 돌아가버려 텅 비곤하였다.
이번에는 정말로 내가 원하는 모양을 가진 집을 찾아야지. 그리고 내가 원하는 곳에 살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수업이 끝나면 6호선 라인의 수많은 집을 구경했다. 동묘 앞, 신당, 약수, 대중 없이 그저 쉽게 등하교할 수 있는 6호선이면 된다는 마음으로 내가 가진 돈에 맞는 집을 찾아 헤매었다. 베란다 밖에 주방이 있는 집, 화장실은 야외에 있는 집, 엘리베이터 없이 7층을 올라야 하는 집...
내가 원했던 조건은 통창이 있어 해가 잘 들고 넓은 주방을 가진 집이었고 머지않아 그건 최소 조건에 해당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결정해야 하는 것은 화장실에 개수대가 없어도 괜찮은가, 오르막을 10분 올라도 괜찮은가, 창문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도 괜찮은가 하는 나의 최소 주거 조건을 상정하는 것이었다. 해가 드는 창문과 넓은 주방은 사치라는 것.
그러다 뻥 뚫린 넓은 창문 아래 큰 나무와 정자가 있고 저 멀리 남산 타워가 보이는 (집이라고 하기엔 너무 좁은) 방을 발견하였다. 내 조건보다 훨씬 더 비싸 계획에도 없었으나 부동산 사장님이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며 꼭 가봐야 한다 강력 추천을 하여 끌려간 곳이었다. 그의 생각은 옳았고 나는 추후 극심한 생활고를 겪을 것을 예상치 못하고 그 집에 살기로 결정하였다.
집을 보러 갔던 날에도 방 안을 가득 채운 요와 이불로 발 디딜 틈 없이 좁았고, 책상 하나 놓을 자리가 없어 아주 작은 상이 놓여 있던 그 집은 예상대로 침대 매트리스 하나를 허락하지 않았다. 가로 세로 길이가 적당하지 못해 슈퍼 싱글 매트리스도 들어갈 수 없는 집에서도 내가 꿈꾼 독립을 실현하기 위하여 매트리스의 길이를 최대한으로 잘라내어 180cm로 만들었다. 내 키는 170cm이고 베개를 머리맡으로 끝까지 올려 눕지 않는 날에는 발목이 바깥으로 튀어나와 발목이 시큰했다. 그럼에도 넓은 창문은 아침마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사실은 창을 가진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불공평한) 따스한 햇볕을 내려주었고 그걸로 독립은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그 좁은 집에 아주 작은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