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중독

by 김동수

종종 봉사원님들의 욕심 때문에 탈이 나기도 한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열정이다. 좋게 받아들이면 책임감이다. 팔이며 발목에 깁스를 하고도 봉사현장을 포기하지 않는다.

한 번은 충북 괴산 수해복구현장에서 원두막 지붕이 무너져 압사할 뻔 일이 있었다. 아찔했다. 다행히 주변에 있던 30여 명의 봉사자들이 꺼내지 않았다면 큰일이 날 뻔했다. 허리를 심하게 다친 우리 지사 봉사원은 당시 영부인에게 위로 전화를 받는 영광을 누렸다고 한다. 그리고 언론에서 찬사를 받았고 무용담이 되었다.

제주지사에 근무할 때다. 지구 회장직을 마치면서 목이 메이며 하신 말이다. “ 봉사를 정말 열심히 했다. 내 몸을 사리지 않고 봉사를 했다. 그런데 남을 돕는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내가 행복했다. 그래서 오히려 고맙다 ”


#인생의 반은 일하고 인생의 반은 봉사

오늘은 봉사원 대회가 여수에 있어서 가는 길이다. 문득 봉사원님들과 함께 해온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재난 급식, 김장, 세탁, 제빵, 삼계탕, 화재구호품 전달, 밑반찬, 봉사원 교육 등등 너무나 많은 현장에서 만난다.

노란 조끼의 천사님들은 나눔의 대명사다.

원조 경쟁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1905년 고종황제께서 적십자 인도주의 정신을 박애구제로 선포하였던 것이다. “널리 구제하고 고루 사랑하라”는 뜻으로 우리나라 근대 봉사활동의 효시다. 일제 강점을 넘어 임시정부부터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6.25 전쟁,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대열에 이르기까지 적십자는 우리나라 전 국민을 십시일반 기부자로 만들었고 봉사자를 양성했다.


# 작은 앙리 뒤낭과 희망을 지키는 사람들, 그리고 휴머니타리안

우리는 봉사자나 후원자를 교육하면서 “작은 앙리 뒤낭이 되자!”라고 한다. 앙리 뒤낭은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고 자신의 사업을 뒤로하고 부상자를 구호하는 대 헌신하신 분이다. 이후 우리는 기부나, 봉사, 헌혈에 지대한 공을 세우시는 분들을 가리켜 ‘희망을 지키는 사람들’이라고 명명했다.


적십자사는 앙리 뒤낭을 비롯하여 근래 일제 임시정부 하에서 적십자의 역할이 조명되면서

당시 인도주의 활동을 하신 도산 안창호, 안정근 같은 분들을 가리켜 ‘ 휴머니타리안’이라고 한다. 이제는 자신의 이익을 버리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사는 사람 모두를 ‘휴머니타리안’이라고 포괄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고로 봉사자 모두가 휴머니타리안인 것이다.



#선한 영향력

“ 물 위에 던진 돌이 파문을 만들어 널리 퍼지게 한다. ”

적십자는 정부 수립 이래 적십자회비, 각종 재난 등을 통해 기부자나 봉사자를 양성해 왔고 정부 보조자로서 헌혈을 통해 전 국민이 나눔 활동을 시작한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이런 활동은 오늘날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자원봉사센터, 지역사회보장협의체로 발전하였다. 적십자의 활동이 그 선례였음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과거 정부에서 사회복지공무원을 증가시키고, 시도 자치단체장들이 자원봉사센터를 이용하는 부작용은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이 두 가지는 다분히 정치적이며 비효율적으로 복지예산을 증가시키고,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봉사하는 봉사자의 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 오히려 봉사단체를 지원하는 것이 더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김형석 교수는 백 년을 살아보니 30세까지는 ‘즐겁게 사는 것’이 행복, 60세까지는 ‘성공하는 것’이 행복, 노년에는 ‘보람 있게 사는 것’이 행복이다. 결국 나누고 베푸는 것이 행복이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가치있는 삶의 이치를 아는 듯 젊은 시절부터 나눔을 시작한 우리 봉사원님들은 그야말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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