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크 교육부에서 마지막 인터뷰를 마치고 휴대폰 분실 해프닝을 감사하게도 잘 수습한 후, 극적으로 베를린행 막차를 타 자정이 넘은 시각 베를린에 무사히 도착을 했다. 이제 드디어 자유 일정이구나! 출발 전까지 인터뷰 일정을 잡으면서도 이거 진짜 가능한 건가 싶었던 모든 일정을 다 무사히 소화하고 맞는 자유 일정이어서인지 뿌듯한 마음과 홀가분한 마음이 교차했다. 싱가포르 교육기행 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그때는 3일 정도의 짧은 기간이었고, 이렇게 장기간 다양한 나라의 교육 기관들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기에 여행 기간 내내 많은 것들을 준비하고 점검하고 신경 쓰는 것이 아무래도 조금 부담이 되기는 됐었나 보다. 정해진 일정이 없는 베를린은 시작부터 한결 마음이 편안하고 여유로웠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우리의 이런 상황을 빼고 본다 하더라도 이 도시는 뭔가 ‘자유로운 감수성’이 물씬 풍기는 그런 분위기였다.
베를린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요즘 말로 참 힙(hip-‘고유한 개성과 감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최신 유행에 밝고 신선하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 단어이다.)한 도시였다. 역사의 현장이 잘 보존되어 있으면서도 도시 곳곳에서 실용적이면서도 예술적인 젊은이들의 감각이 느껴졌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계속 공간과 시간을 함께 넘나드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었는데, 고대와 중세를 지나 서울로 돌아가기 전, 벌어진 시간의 간극을 채우기 위해 이제 가장 ‘현대적’인 도시로 넘어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높은 빌딩 숲을 이루고 있는 복잡한 느낌이 분명 아닌데 고풍스러운 유럽의 건축물 사이에서도 현대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게 바로 베를린의 독특한 개성이었다.
첫날 자정이 넘은 시간에 베를린에 도착한 데다 이제 더이상 인터뷰가 없으니 긴장이 풀려 숙소에서 늦게까지 뻗어 여독을 풀었다. 그리고 늦은 오후 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나섰다. Mutter Hoppe에서 먹은 아이스바인(Eisbein-돼지의 정강이 부위를 삶아서 요리하는 독일의 전통 음식)은 프랑크푸르트에서 먹었던 겉바속촉 학세(Haxe)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고, 식후 베를린 대성당 쪽을 바라보며 만끽했던 석양의 모습은 지금도 그 빛깔이 생생하게 기억 날 정도로 감동이었다. 특히 우리끼리 ‘구름 깡패’라는 말을 반복했을 정도로 시시각각 변하는 베를린 하늘의 구름은 정말 예술이었다.
베를린에 오기 전 베를린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베를린 장벽’이었다. 동독, 서독으로 나누어져 있던 독일 통일의 산 역사인 그곳에 나는 꼭 가보고 싶었다. 사실 교육 인터뷰를 준비하며 독일의 통일과 통일 관련 교육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소망했었는데, 아쉽게도 통일 교육 기관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그래도 베를린 장벽에 가보는 것만으로도 분명 느낄 수 있는 게 많을 거라 생각하며 다음날 우리는 베를린 장벽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로 향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야외 갤러리로, 통일 이후 각국의 작가들이 장벽 위에 평화와 화합, 전쟁 반대의 메시지를 담은 그림을 그려놓은 곳이다. 도착 전 베를린 장벽은 분단의 상처가 깃든 암울하고 어두운 분위기일 거라 막연히 상상했었는데, 막상 가보니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물론 분단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곳에서 가라앉은 분위기를 느끼기도 했지만,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면서도 개성 넘치는 벽화가 가득한 그곳은 말 그대로 예술적 감각이 넘치는 멋진 갤러리였고, 장벽 근처의 너른 잔디밭과 그 옆을 흐르는 슈프레(Spree) 강은 베를린 시민들에게 편안한 휴식 공간이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 걸으며 작품들을 감상했는데도 끝내 다 보지 못할 만큼 많은 작품들이 그려져 있었고, 그 어떤 미술관보다도 지루할 틈 없이 의미와 재미, 감동 모두를 잡은 작품들이 많았다.
그런데 진짜 내 발걸음을 붙잡았던 건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에서 유명한 특정 작품이 아니라 바로 베를린 장벽의 ‘얇디얇은’ 그 두께였다. 나는 막연히 동독과 서독을 오랜 시간 갈라놓았던 그 장벽은 무겁고 튼튼하고 두꺼울 거라 생각했었나 보다. 그런데 내 생각보다 그 벽은 참 얇았다. 그리고 그곳의 지금은 너무나 평온했다. 그 순간 제자 A가 떠오르며 우리 남북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제자 A의 사정을 이 책에서 자세히 풀 수는 없지만, 감히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힘든 시간과 과정을 거쳐 남으로 내려온 그 아이가 넘어야 했던 벽이 결국은 이렇게 얇은 벽이었던 거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독일과 우리가 처한 상황은 물론 다르지만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것도 결국은 저 얇은 벽일 텐데, 우리는 언제쯤 어떻게 이 상처를 풀어갈 수 있을까? 복잡한 생각들이 마구 뒤엉켰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통일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면, 반대하거나 별다른 생각이 없는 학생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이미 분단이 된 지 오랜 시간이 흘렀고, 사실 우리 세대들조차 전쟁, 이산가족 문제가 직접적으로 와닿을 만한 경험을 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어쩌면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건 너무나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통일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기본적으로 존중한다. 그런데 분명한 건 전쟁을 경험했든 경험하지 않았든 또 남북문제와 관련된 직접적인 경험이 있든 없든 간에 기본적으로 분단국가에서 살고 있는 우리 민족에게는 누구에게나 회복해야 할 상처가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보다 미리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이 상처를 치유하고, 화합과 평화의 길로 나선 독일의 경험이 우리에게는 분명 큰 선물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교사가 된 후 처음으로 담임 학급 아이들을 데리고 갔던 수학여행이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2008년 금강산 수학여행’이었고, 내가 교사가 돼서 처음으로 받은 상이 ‘2016년 서울 학생 통일탐구토론대회 지도교사상’이었던 걸 보면 평소에는 잘 못 느끼지만 나도 은연중에 통일 문제와는 크고 작은 인연이 있는 것 같다. 앞으로도 나의 교직 생활에서 우리가 평화와 희망의 길로 나아가는 데 작게나마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노력을 다해보리라 다짐을 했다.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구경을 마치고 OSTBahnhof 역 쪽으로 가던 중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있고 줄을 서서 무언가를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모습을 목격했다. 우리도 자석에 이끌리듯 그 무리 속으로 들어갔는데, 내 눈에 들어온 건 “Portrait Vending Machine”이라는 이름을 걸고 초상화 버스킹을 하고 있는 홍콩 청년이었다.
초상화 자판기?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뜨 언덕에서처럼 길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들은 많이 봤지만, 초상화 자판기라……. 발상이 신선했다. 마치 우리나라 지하철역 같은 곳에서 볼 수 있는 즉석 사진 기계처럼 본인이 부스를 만들어놓고 그 부스 안에 들어가 부스 바깥에 앉은 사람을 보며 직접 3분 안에 무료로 초상화를 그려주는 시스템이었다. 우리가 스티커 사진을 찍을 때 원하는 설정을 고르는 것처럼 머리카락 색깔이나 코의 모양 등을 취향껏 고를 수 있었고, 진짜 기계 같은 재미를 더하기 위해 그림 완성본을 우리에게 줄 때 입으로 기계음을 내며 부스의 작은 구멍으로 그림을 뱉어냈다.
처음에는 구경만 하다 우리도 흥미로운 초상화 자판기의 행렬에 동참했다. 나는 지금 여행을 다니며 책을 쓰고 있는데, 당신의 그림을 작가 소개 사진 대신 쓰고 싶다고 했더니 그는 흔쾌히 더 성의껏 그림을 그려줬다. 줄을 서 있는 동안 그가 적어 놓은 초상화 자판기 근처의 자기소개를 유심히 읽어봤다. 그는 홍콩의 학생인데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미술 버스킹 휴가를 보내고 있다고 했다. 전도유망한 청년의 창의적인 발상과 멋진 도전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이런 게 진짜 제대로 된 진로 탐색이지! 자신의 꿈과 능력을 펼치기 위해 스스로 아이디어를 고안하고 넓은 세계를 마음껏 누비며, 이 값진 경험을 꿈의 디딤돌로 만드는 그의 모습은 베를린 장벽 앞에서 진정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우리 아이들이 진로를 찾아가는 과정도 이렇게 흥미롭고 즐거워야 하는데, 아직까지 우리 교육은 아이들을 틀 안에 규정짓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15년 정도 학교 현장에서 교육을 하며 느낀 건 아이들은 늘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여행 중 교사가 이렇게 재미있는 사례를 접한 만큼 수업 내용과 엮어 아이들이 한 단계 자신의 틀을 깨고 나아갈 수 있도록 자극을 주면, 아이들은 또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놀랍게 창의력을 발휘하며 한 단계 더 성장한다. 이것이 바로 교사들이 열린 마음을 가지고 다양한 세상을 경험해야 하는 이유이고, 내가 여행에서 끊임없이 배움을 추구하는 본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