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소 변화를 좋아하지 않고 평범한 삶을 추구하는 편이다. 하지만 여행에 있어서만큼은 좀 다른 것 같다. 일상에서 좀처럼 ‘일탈’을 하지 않는 성실하고 바른 생활(?)의 아이콘인 나에게 여행은 일탈을 향한 숨은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돌파구였는지도 모르겠다. 그 절정의 사건이 이번 여행 끝자락에서 일어났다.
언젠가부터 막연히 꿈꿔왔던 여행이 있었으니, 바로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우연에 맡기는 여행이었다. 서울역에 가서 지금 제일 빨리 탈 수 있는 기차표를 달라고 해서 그 기차의 종착역까지 가본다든지, 지도에서 눈 감고 게임하듯 한 점을 찍어 나온 도시를 가본다든지 뭐 이런 방식으로 순전히 우연에 기댄 그런 여행을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의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기에 막상 이를 실천에 옮기는 건 쉽지 않았다. 계획을 짜고 움직이기 시작해도 예측하지 못한 일들이 늘 일어났기에 정해진 범위 내에서의 일탈만으로도 사실 꽤 즐거웠다.
이제까지와는 사뭇 다른 일탈의 시작점은 1장에서 잠시 언급했던 ‘베르니나 열차’였다. 이탈리아 티라노(Tirano)에서 출발해 스위스 쿠어(Chur)까지 이동하는 통유리 특급열차의 여정은 기차 여행을 유독 좋아하는 나에게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여담이지만 밀라노에서 티라노로 출발을 할 때, 이름이 비슷한 티라노(Tirano)와 토리노(Torino)가 자꾸 헷갈려 완전히 다른 열차를 탈 뻔했다. 나중에 지도를 보니 전혀 다른 방향이어서 아찔했던 경험이 있다. 물론 토리노로 갔어도 생각지도 못한 여정이 펼쳐지며 여행은 계속됐으리라 확신한다.)
유럽에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특별한 절차 없이 기차로 국경을 넘을 수 있다는 건 여행자들에게 편리하면서도 소소한 재미를 준다. 국경에 있는 도시들이 서로 다른 나라이면서도 꽤 닮은 모습을 띠고 있는 것도 흥미로웠다. 아마 사진만 보고 이 도시가 어느 나라인지 골라보라고 하면 이탈리아? 스위스? 쉽게 고르지 못할 것 같았다. 지금까지도 나의 인생 여행지인 ‘슬로베니아(Slovenia)’가 ‘유럽의 미니어처’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것도 국토 전체 면적이 우리나라의 전라도 정도밖에 되지 않아 국경을 마주한 도시들마다 인접국가와 닮은 개성을 보여줬기 때문이었는데……. 가까이 있으면 사람도, 도시도 이렇게 서로에게 물들어가는구나!
이런저런 생각에 젖을 때쯤 어느 순간 차창 밖으로 안개가 자욱하고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내가 기대했던 풍경은 해가 쨍하게 맑은 날 새파란 하늘과 하얀 만년설이 조화를 이룬 모습이었는데, 변화무쌍한 날씨로 뿌옇게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구간도 있었다.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역시 이렇게 한 치 앞도 모르는 여행은 우리의 인생과 너무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측할 수 없고 정답이 없기에 삶은 더 흥미롭고 하루하루는 더 소중한 게 아닐까?
날씨가 안 좋아지면서 바깥 풍경에 가던 시선이 열차 객실 내부로 향하기 시작했다. 잠깐 이동하면서 보니 객실마다 분위기가 달랐는데, 우리가 타고 있던 2호차 객실은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였다. 혼자 책을 보시는 분도 계셨고, 함께 탄 지인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분들도 계셨다. 그중 우리 옆 좌석에 타신 노부부는 나중에 우리도 저 나이가 됐을 때 남편과 저렇게 같이 늙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참 보기가 좋았다. 장시간 기차를 함께 타고 가다 보니 짧게 인사를 나누게 됐다. 오래전 업무차 한국에 와보신 적이 있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이 친근하게 다가왔고, 현재 네덜란드에 살고 계신다는 말씀도 유독 귀에 쏙 박혔다.(처음에 ‘네덜란드(Holland)’라는 답을 ‘폴란드(Poland)’로 잘못 알아들어 잠시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 해프닝도 있었다. 여행을 다니며 매번 영어를 비롯한 언어의 중요성을 느낀다. 이번만큼은 다양한 외국어 실력을 제대로 늘려보겠다는 다짐의 일환으로 각국의 서점에서 이탈리아어, 독일어로 된 ‘어린 왕자’ 책을 사가지고 왔다. 다시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기쁨의 세계로 풍덩 빠져봐야지.) 마침 우리의 마지막 여행지가 스탑오버로 머물게 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었기 때문이다. 암스테르담에서 기차로 15분밖에 걸리지 않는 하를렘(Haarlem)에 살고 계시다며 좋은 곳이라고 추천을 해주셨는데, 기차에서 생전 처음 들어본 도시였지만 두 분을 닮은 도시라면 분명 멋진 곳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베르니나 열차의 종착지인 스위스 쿠어에 도착해 우리가 캐리어를 내리는 것까지 다정하게 도와주신 후 노부부와 우리의 짧은 만남은 이렇게 끝이 났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록 왠지 모르게 하를렘 노부부와 보냈던 베르니나에서의 따뜻한 여운은 진하게 우리 곁을 맴돌았다. 대화를 많이 나눈 것도 아니고 그냥 옆자리에 앉아 서로의 시간을 보냈을 뿐인데 우리는 하를렘에 꼭 가고 싶어졌다. 어느 순간 하를렘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우리의 마지막 행선지가 되었다. 하를렘에 대한 정보는 베르니나 열차에서 노부부께 들은 게 전부였고 정말 아는 게 없었지만, 더 이상의 검색 없이 우리는 암스테르담에서 하를렘에 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 결정은 우리를 꽤 설레게 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종종 계획들이 바뀌기도 하지만 이렇게 처음 들어본 곳을 아무런 정보 없이 가본 적은 없었다. 여기에 우리는 또 하나의 엉뚱한(지금 생각해도 정말 엉뚱한) 상상에 빠져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하를렘에 가서 이곳저곳을 걷다 보면 왠지 열차에서 뵀던 할아버지, 할머니를 우연히 지나다가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만나면 얼마나 반가울까? 꼭 만났으면 좋겠다. 아니, 분명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었기에 우리의 머릿속의 하를렘은 암스테르담 근교의 작은 마을이었다. 노부부가 한적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음 직한 평화로운 농촌 마을을 상상했던 것 같다. 대학교 배낭여행 때 갔었던 풍차와 튤립의 마을 잔세스칸스(Zaanse Schans)의 축소판 같은 느낌이랄까? 마을의 규모가 작아 걷다 보면 서로 만날 수 있고, 또 못 만난다 해도 지나가던 마을 분께 사진을 보여드리면 마을 사람들끼리는 모르는 사람이 없어 바로 우리를 할아버지 댁으로 데려다줄 수 있을 거라는 상상까지 이르니 너무나 신이 났다. 비록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어머, 너희 진짜 여길 찾아왔구나!” 하시며 엄청 반가워하시지 않을까? 무엇보다 여행 중 만난 귀한 인연에게 드리려고 한국에서 준비해왔던 선물이 캐리어 안에 들어 있어서 결국 전달을 못 했는데, 이걸 다시 만나 드릴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잡혀 있던 모든 인터뷰와 마지막 베를린 자유여행도 무사히 잘 마치고 8월 11일 저녁 드디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12일에는 반고흐미술관을 비롯해 암스테르담 시내를 둘러봤다. 2004년 반고흐미술관 앞 잔디밭에서 찍었던 사진을 보면서, 똑같은 배경에서 똑같은 구도로 사진을 찍으며 추억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한 달여의 여행의 마지막 밤 스카이라운지에서 암스테르담 야경을 내려다보며 못다 한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대망의 8월 13일, 당일 밤 21시 20분 비행기로 출국을 앞둔 우리는 부푼 마음을 잔뜩 안고 하를렘으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15분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차창 밖으로 비치는 풍경은 하를렘에 대해 내가 했던 기대를 한껏 충족시키는 느낌이라 설렘은 더욱 배가되었다.
하를렘 역사를 나가니 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자전거를 대여할 수 있는 곳도 있었다.(유럽에는 곳곳에 자전거를 대여할 수 있는 곳이 참 많다. 스위스 취리히에는 여권과 보증금을 맡기면 무료로 자전거 대여가 가능한 곳도 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는 바닥에 발이 닿아야지만 안정적으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비루한 자전거 실력의 소유자다. 유럽의 자전거 안장은 내 키보다 너무 높아서 2004년 처음 유럽을 찾았을 때도 무료 자전거 대여에 실패했었는데, 여전히 불안정한 자전거 실력 탓에 나는 이번에도 자전거를 대여하지 못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한국에 돌아가면 이건 꼭 해야지!’ 다짐하는 것들이 생기나, 막상 한국에 돌아오면 정신없는 일상에 서서히 버킷리스트들이 잊히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또 다짐해본다. 다음 여행 전까지 자전거를 꼭 마스터해보리라.) 아직은 하를렘의 규모를 짐작하기는 어려웠지만, 역에서 하를렘의 지도를 보니 확실히 내가 생각했던 마을 느낌의 규모는 아닌 듯했다. 설렘을 가득 안고 호기롭게 도착했으나 막상 어디서부터 어떻게 할아버지를 찾아야 할지 좀 막막했다.
일단 지나가는 사람들부터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우연에 기대 여기까지 온 만큼 우연히 할아버지가 우리 옆을 지나가실 수도 있으니.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우연은 없었고, 이런 우연에 기대기는 매우 어려울 만큼 하를렘이 작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말 그대로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였던 것이다. 아니, 그보다도 더 무모한 짓이었다. 생각해보니 우리가 가진 정보는 기차 안에서 찍은 사진 몇 장이 전부였다. 성함이라도 여쭤볼걸. 이름도 모르는 분을 찾겠다고 사진 한 장 들고 하를렘에 온 내가, 심지어 분명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확신에 차 있던 내가 무모한 건지 용감한 건지 스스로 생각해도 참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일단 길을 걷다 들어가는 가게에서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사진을 보여드리며 혹시 이분을 아시는지 여쭤봤다. 당연히도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제대로 하를렘을 돌아보려면 지도라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관광안내소를 찾았다. 지도를 얻으며 관광안내소에도 여쭤봤더니 경찰서를 가볼 것을 추천해주셨다. 경찰서라……. 국내외 통틀어서 경찰서에 가본 건 2004년 배낭여행 때 도난사고 후 ‘Police Report’를 쓰기 위해 경찰서를 찾았던 게 유일한데. 그래도 뾰족한 수가 없었기에 우리는 경찰서로 향했다.(경험에 입각해 여행자들에게 유용한 여행 팁 하나를 소개하자면, 여행을 하며 도난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게 제일 좋겠지만 일단 도난을 당했다면 제일 먼저 할 일은 만약을 대비해 전화로 신용카드를 정지하는 일이다. 그리고 반드시 가까운 경찰서를 찾아 ‘Police Report’를 작성해야 한다. 이 서류가 있어야 여행자 보험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다.(이때 단순 분실(lost)이 아니라 ‘도난(stolen)’임을 꼭 명시해야 함을 잊지 말자.))
경찰서 문을 열고 들어가 열차에서 보냈던 시간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어 사진 속 인물을 찾고 있다고 우리의 상황을 영어로 설명했다. 경찰관 아저씨는 그의 이름을 물으셨고, 우리는 아쉽게도 이름을 모른다고 했더니 어이없다는 표정의 미소를 지으셨다.
“이름도 모르면서 열차에서 만난 노부부를 찾겠다고 사진 한 장 들고
하를렘을 온 거야? 불가능하겠지만 행운을 빌어.”
꼭 찾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지만, 그 말의 이면에는 절대 찾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경찰도 불가능하다고 하는 걸 무슨 수로 찾겠어…….’라는 아쉬움과 한편으로는 왠지 모를 엉뚱한 오기가 생겼다. 이상하게도 안 된다고 하면 할수록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겼다. “안 된다고 하셨지만 저희 결국은 찾았거든요!” 어떤 식으로든 꼭 경찰관 아저씨께 할아버지를 찾은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흩어져서 찾아보기로 했다. 운하인지 강인지 정확히 모르겠는 물길을 끼고 혼자 걷는 하를렘은 여행지로서도 참 멋진 곳이었다. 암스테르담보다는 한적하면서도 네덜란드 느낌이 물씬 풍기는 그 길을 걸으며, 이제 몇 시간 후면 서울로 출국인데 설령 노부부를 찾지 못한다고 해도 마지막 여행지로 하를렘을 선택한 건 정말 탁월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하얀 새 한 마리가 내 주위에서 몇 바퀴 창공을 맴돌다 저편으로 사라졌다. 혼자서 저 새가 간 방향에 할아버지가 계시는 걸까?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터무니없는 생각을 이어가며 길을 걷다 현지인에게 길을 묻기 위해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유독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시는 그분께 혹시나 싶어 사진을 보여드리며 할아버지를 아시는지 여쭤봤다. 당연히 모른다는 대답이 나올 거라 생각해 요만큼의 기대도 없었는데 그는
"Ian"
이라며 누군가의 이름을 이야기했다. 이안? 그게 누군데? 왜 사람 이름이 나오지? 설마 지금 이분이 할아버지를 아신다는 건가? 심장이 터질 듯 쿵쾅거리며 영어가 꼬이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나는 평소보다 위기의 순간에 침착하게 순발력으로 영어 회화가 잘 나오는 편이었는데, 꽤나 당황했는지 “Do you know me?” 같은 이상한 영어가 나왔다. 그를 아느냐고 물어야 하는데 나를 아느냐고 물으니 그는 웃으며 당신은 모르지만 이 사람은 본인의 친구라 답을 했다. 함께 주일에 성가대를 하고 있는 친구라며 집 주소는 정확히 모르나 그가 살고 있는 거리가 지금 여기에서 멀지 않다고 지도에 거리명을 표시해주셨다.
LANGE BRUG 다리 근처에 있는, 진짜 지금 내가 서 있는 곳과 많이 멀지 않은 곳이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 너무 놀라 기절할 것 같았다. 와! 정말 말도 안 된다. 이게 된다고?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 가능한 일이었어?
흩어져 있던 우리는 LANGE BRUG 근처에서 다시 만나 친구인 주스(Joos) 씨가 알려준 그 길로 향했다. 그 길 근처에서 다시 이웃분께 사진을 보여드리며 여쭤봤더니 같은 이름을 말씀하시며 어느 집인지 알려주셨다. 다른 분이 봐도 같은 이름을 얘기하는 걸 보면 진짜 맞나 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지? 이건 정말 대박 사건! 그 어느 때보다 흥분으로 가득 찬 마음을 애써 누르며 노부부께 드릴 엽서를 쓰기 위해 물가의 벤치로 이동했다. 파아란 하늘에 그림 같은 구름, 헨젤과 그레텔 동화에 나올 법한 아기자기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풍경과 지나가는 배의 조화, 여기에 기분 좋게 불어오는 적당한 바람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같은 내용을 한 장은 영어로, 한 장은 한글로 쓴 후 우리가 준비한 선물을 들고 집 앞으로 가 초인종을 눌렀다. 초인종을 누르고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마침내 안에서 인기척이 들리며 누군가가 문을 열고 나왔다. 그런데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우리가 열차에서 뵀던 할아버지가 아니셨다. 아 지금 댁에 안 계신 건가 싶어 우리는 이안을 보러 왔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본인이 이안이라고 하셨다. 엥? 이안이라고? 분명 이분은 아닌데. 상황을 설명하며 사진을 보여드렸다. 사진을 보시더니 사진은 본인이 맞는데 열차는 탄 적이 없단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안은 우리가 찾던 할아버지가 아니었다. 사실 처음 문을 열고 나오셨을 때부터 이분은 아니라는 걸 우리는 딱 알았는데, 네덜란드인들이 보기에는 그 사진과 이안이 진짜 많이 닮긴 닮았나 보다. 본인도 사진은 본인이 맞다고 하는 걸 보면.
이렇게 네덜란드서 하를렘 할아버지 찾기는 일단은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이제 우리는 출국을 위해 스키폴 공항으로 가야 했기에 하를렘을 떠나야 했다. 허탈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특별한 여행을 했던 하루였기에 후회는 없었다. 그리고 나의 하를렘 할아버지 찾기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어렸을 때는 막연히 동심을 품고 어른들이 보시기에 허무맹랑한 꿈을 종종 꿨던 것 같다. 그런데 크면서 나이를 먹으며 어느 순간 내가 진짜 ‘꿈’을 꿨던 게 언제였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를렘에서의 엉뚱한 하루는 어릴 때로 돌아가 현실의 한계를 생각지 않고 마구 꿈을 꿨던 그런 동화 같은 시간이었다. 비록 할아버지를 찾지는 못했지만 나는 내가 포기하지 않는 한 언젠가는 다시 하를렘에서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책을 들고 분명 노부부를 만날 수 있으리라 굳게 믿는다. 그리고 가끔은 꼭 현실적인 목표가 아니더라도 이런 바보 같은 꿈을 품고 무모한 도전을 해보는 것도 우리를 성장시키고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꿈은 이루어진다.★
서울에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음에도 문득 하를렘 할아버지, 할머니는 잘 계실까? 안부가 궁금했다. 몇 시간의 인연이고 그들과 우리 사이에 대단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기운을 담뿍 받았었기에, 무엇보다 덕분에 하를렘에 방문하면서 잊지 못할 추억을 가지게 됐기에 꼭 연락이 닿아 우리의 해프닝을 쫑알쫑알 말씀드리면서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특히 코로나19가 유럽에 급속히 확산되면서 다른 분들께는 메일로 다 안부를 여쭸었는데 연락을 드릴 수 없으니 건강하게 잘 계시는지 궁금한 마음이 더 커졌다. 그러던 중 문득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우리의 옆자리여서 열차의 좌석 번호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베르니나 열차 예약과 관련한 철도청에 문의를 드리면 이메일 주소 같은 작은 단서라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몇 번의 메일이 오갔지만 결론적으로 이 방법은 실패했다. 유럽은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규약이 엄격해서 철도청에 자료는 있는 듯했지만 노부부와 관련한 작은 단서도 얻을 수 없었다.
이쯤 되니 어쩌면 좋은 추억만 간직하고 미완으로 남겨두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2019년 여름 우리의 여행이 꿈꾸는 대로 이루어졌던 것처럼 언젠가는 정말 동화 속 기적같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철이 없는 건지 아직도 동심이 남아 있는 건지 여전히 이 말도 안 되는 꿈을 계속 꾸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이 책을 들고 다시 하를렘에 가서 직접 노부부를 만나 감사 인사를 드리는 일이 만약 내 삶에서 일어난다면, 정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거겠지?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오늘도 막연히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 이 책을 재미있게 읽으신 분 중 ‘사진, 열차 좌석 번호, 거주 도시’를 단서로 하를렘 노부부를 찾을 수 있는 묘안이 떠오르신 분은 kmk586@hanmail.net으로 아이디어를 보내주세요. 저희의 엉뚱한 도전에 많은 독자분들이 힘을 보태주시면 어쩌면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꿈꿔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