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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Oct 30. 2022

잠시 멈춤, 그리고 다시 새롭게 시작된 시간여행!

  원래 이 책의 끝은 3장이었다.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처음 쓰는 글이기에, 무엇보다 전업인 교직에 있으면서 부가적으로 자투리 시간에 써가는 글이기에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아 3장까지 쓰는 데도 1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래도 2019년 다녀온 교육기행의 모든 걸 3장까지 잘 녹여내고자 애썼고, 부족한 부분도 많겠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여행과 교육에 대한 단상이 세상에 미약하게나마 빛을 발할 날을 기다리며 글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2020년 초 시작해 맹위를 떨치던 코로나19는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 글이 내 방에서 나가 세상과 마주할 때쯤에는 다시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나의 바람은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다. 코로나19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행과 교육’ 이 두 영역에 너무도 큰 변화를 불러왔고, 그 폭풍은 너무나 거셌다. 자유롭게 여행을 떠나기에는 너무나 많은 제약이 있었고, 학교 현장에서도 교육 이전에 보육과 방역만으로도 하루가 훌쩍 갔다. 조금만 버티면 괜찮겠지……. 이런 생각으로 버티기 시작한 게 2년 가까이 다다르니 한계와 무력감이 찾아왔다.


  2019년의 그 특별했던 도전은 원래도 ‘내가 진짜 내 힘으로 다녀온 게 맞나? 가끔 이게 진짜 꿈은 아니었을까?’ 싶었었는데, 이제는 2019년을 돌아보면 정말 지금의 현실과 괴리가 너무나 컸다. 그 놀랍도록 벌어진 간극은 나를 괴롭게 했고, 생생했던 배움의 시간은 이제는 생명력을 잃은 것 같았다. 그곳에서 고민하고 배운 것들을 널리 나누며 함께 성장하기를 꿈꿨던 나 대신 오늘의 나는 자가진단을 하지 않은 아이들을 닦달하고, 코로나19 유증상인 학생에게 후속 절차를 안내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더 답답한 것은 이게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교육과 여행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의 본질적인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계속 내 마음을 어지럽혔다. 무엇보다 당장 책을 쓰는 입장에서는 3장에서 이대로 글을 마무리하기에는 코로나 이후의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이 있었고, 그렇다고 지금 여행을 갈 수도 없는 시점에서 무언가 더 쓸 수 있는 글도 없었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시간만 자꾸 흘러갔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없었기에(당시에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지친 몸으로 눈앞에 산재한 일들을 꾸역꾸역 처리하던 어느 날, 짬을 내서 이제까지 썼던 글을 다시 읽었다. 잠시나마 글을 통해 2019년의 단꿈에 빠져 추억 여행을 하던 중, 문득 근본적인 의문이 마음에 찾아왔다.      


그때의 배움은 여전히 가치롭고 지금도 내 마음속에서 이렇게 생생한데, 이 배움을 계속 신나게 이어갈 방법은 없는 걸까? 코로나가 문제가 아니라 그 벽에 가로막혀 절망하며 더 이상의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나의 문제는 아닐까? 코로나 시대에도 2019년처럼 다시 설레는 여행을 할 수는 없을까?     


  당장 답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발상의 작은 전환만으로도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다시 1장을 읽으며 여행의 본질적인 요소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보통 여행에서 ‘장소’ 그러니까 ‘공간’을 이동하며 자연과 경관과 사람들을 만난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이 공간의 이동에 제약이 생겼다. 그렇다면 방구석에서 여행을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나의 작은 결론은 아래와 같았다.     


  ‘공간’을 이동할 수 없다면, ‘시간’을 이동하면 되지.      


  어렸을 때부터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왔을 타임머신. 내 방에서 다른 곳으로 공간을 이동할 수는 없었지만, 상상을 통해 이미 지나간 과거로, 또는 앞으로 올 미래로 시간을 오가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세상에는 이 ‘시간여행’을 도와줄 수많은 책과 영상들이 이미 있었기에 어느 시간으로 가려고 해도 그곳으로 나를 데려가 줄 교통편은 빵빵했다. 그동안 왜 시간여행을 생각하지 못한 거지? 이렇게 당장 갈 수 있는 것을……. 4장의 시간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2019년 여행에서 만약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꼭 만나고 싶은 대가가 세 분 있었다.      


바이마르의 괴테, 바티칸의 미켈란젤로, 암스테르담의 고흐.     


  할 수만 있다면 이 대가들과 2019년 그 여행처럼 인터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 이들과 무슨 수로 인터뷰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이들은 친구처럼 쉽게 만날 수 있는 분들이 아니기에 설령 동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아마 나 같은 평범한 교사가 이들과 인터뷰를 하는 기회를 가지는 건 쉽지 않았을 거다. 엉뚱한 꿈을 꾸다 못해 이젠 진짜 말도 안 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구나! 또 한 번의 무모한 도전 상상에 스스로에게 헛웃음이 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국 나는 과거로 돌아가 이 대가들을 만나고 왔다. 내가 이 대가들을 만날 수 있었던 데에는 평생 그 대가들과 함께했던 현재의 전문가들이 기꺼이 이 말도 안 되는 시간여행의 길잡이가 되어 함께 이 여행에 동행해주셨기 때문이다. 괴테에게로의 여행에는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이신 ‘전영애 교수님’이, 미켈란젤로에게로의 여행에는 전설의 바티칸 현지 가이드 ‘하민철 가이드님’과 ‘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 책을 쓰신 작가 ‘로스 킹(Ross King)’이, 고흐에게로의 여행에는 네덜란드 반고흐 미술관의 ‘고흐 편지 문헌 연구팀’이 이 여행의 길잡이가 되어 주셨다. 든든한 길잡이와 함께 대가들의 삶과 그들의 작품에 닿는 시간여행의 여정은 2019년만큼이나 믿기지 않을 만큼 설레고 감사한 배움이 가득한 시간이었다. 코로나 때에도 상상력 하나만으로 방구석에서 이렇게 멋진 인문학 여행을 할 수 있다니……. 무엇보다 평범한 교사의 엉뚱한 상상에 기꺼이 손을 내밀어주신 현대의 대가들의 넉넉한 마음씨에 다시금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에서 돌아온 후에 다음으로 갈 곳은 미래였다. 2019년 그 여행을 갈 때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의 중심 화두에는 ‘4차 산업혁명’이 있었다. 여전히 이 화두는 유효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많은 변화를 겪으며, ‘포스트 팬데믹’, ‘기후 위기’, ‘상생’과 같은 문제가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궁금했다. 2019년 만났던 그들은 어떻게 이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 우리는 어떻게 이 미래를 기다리고 있는지. 감사하게도 당시 만나 뵀었던 많은 분들이 나의 새로운 의문에 대해 비대면으로 아주 자세히 그들의 미래를 보여주셨다. 바이마르 고전 재단의 Regina, 이탈리아 Bertrand Russell experimental and classical high school 교사 Davide Rebeggiani, Ernesto Balducci 과학고등학교 교사 Riccardo Ferrati는 2021년 미래 시간여행에 새롭게 함께해주신 감사한 분들이시다. 또한 지금 한국이 준비하고 있는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신 도봉구청 지속가능발전과 배현순 박사님과 'RCE도봉'의 느루 프로젝트에 함께해주시는 인도의 아부다쉬 박사님과 학생들, 그리고 최근에 너무나 감명 깊게 읽은 ‘교사의 시선’의 저자 김태현 선생님까지 미래 여행에도 참 많은 분들이 동행해주셨다.(참고로 4장은 아직 일부 미완성입니다.) 정말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과거와 미래를 오간 시간여행의 종착점은 결국 현재,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이제껏 한 번도 떠나보지 못한 (사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생각조차 안 해봤을) ‘랜선여행’을 시도했다. 기획부터 예산 집행, 실제 여행 진행까지 모든 과정을 기획단 아이들이 주도하고 친구들과 함께 랜선여행을 떠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이었기에 시행착오도 무수히 많았지만 역시나 아이들은 대단했다. 문학 작품 속으로의 여행부터 미국 경제를 주제로 한 시간여행까지. 세상 어디에도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여행이 아이들의 손끝에서 펼쳐지는 것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며, 코로나 시대에도 분명 여행은 가능하고, 그 여행의 가치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지금부터 이 놀라운 시간여행을 시작하려고 한다. 첫 번째 목적지는 18세기의 괴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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