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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Oct 30. 2022

[과거] 괴테와의 만남, 과거에서 새로움을 찾다(1)

- 목적지: Johann Wolfgang von Goethe(요한 볼프강 폰 괴테)

- 길잡이: 전영애 교수님(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

- 경유지: 여백서원(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걸은리 117-1)


바이마르에 대한 그리움 끝에 만난 책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2019년 여행 중 나의 최애도시였던 바이마르. 그 중심에는 괴테가 있었다. 어렸을 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괴테)』, 『데미안(헤르만 헤세)』, 『주홍글씨(나다니엘 호손)』 등 우리가 흔히 ‘고전’이라 말하는 작품들을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고전은 나의 시선에서 많이 멀어졌었다. 성인이 되며 책을 읽는 개인적인 취향이 바뀐 건지, 아니면 우리 시대의 빠른 호흡이 자연스레 고전으로부터 시선을 멀어지게 만든 건지 모르겠지만 나의 책장을 보니 고전은 저 한구석으로 밀려 있었다. 2019년 여행에서 시대는 계속 변화해도 그 속에는 변치 않는 ‘본질’, 우리가 꼭 귀하게 지켜내야 하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후, 이러한 인문학적 정수(精髓)들을 담고 있는 ‘고전’으로 다시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개정 교육과정에는 ‘고전 읽기’라는 교과서가 없는 과목이 있다. 나는 그래도 학창시절에 경험했던 고전 읽기에 대한 즐거운 추억으로 다시 고전에 관심을 가질 만한 동력을 가지고 있지만, 요즘 우리 아이들은 고전은 둘째 치고 ‘즐거운 책 읽기’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까웠다. 어떻게 하면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책을 읽을 수 있을까? 특히 고전 읽기의 즐거운 맛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중 만난 책이 바로 전영애 교수님의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였다.


  일단 이 책에 눈이 갈 수밖에 없었던 건 표지의 그림 때문이었다. 나는 이 표지를 보는 순간 이곳이 바이마르의 ‘괴테 하우스’임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지금도 유지하고 있는 나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과 너무나도 닮은 모습이었다. ‘괴테와 마주앉는 시간’이라는 세로로 된 부제도 나를 설레게 했다. 이렇게 나는 괴테와 마주앉으며 그를 향한 여행을 시작했다.     


그대 선에 대하여 보답을 받았던가(Hat man das Gute dir erwidert?)     


  책에는 『파우스트』부터 시작하여 괴테가 남긴 다양한 시구들과 그것에 대한 교수님의 경험, 성찰 그리고 깊이 있는 통찰이 담겨 있었다. 문학 작품의 감상은 일차적으로 작가와 독자 사이의 내밀한 대화라고 생각하기에 고전을 읽은 개인적인 감상이 제일 중요하겠지만, 고전 읽기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 이 책이 길잡이가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인생의 지혜가 되어 줄 수 있는 많은 글귀 중 눈에 들어온 짧은 시가 있었다.     


“그대 ‘선’에 대하여 보답을 받았던가?”
나의 화살은 고운 깃 달고 날아갔다오.
온 하늘 열려 있었으니
어디엔가 맞았을 테지요.     


  교사 초년 시절 아무리 전심을 다해 공을 들여도 좀처럼 좋은 방향으로 변하지 않는 아이들을 보며, 선배 선생님께 “진심은 통한다 했는데 아닌가 봐요.” 절망스러운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당시 선생님은

      

  “우리는 그냥 ‘정류장’과 같은 존재고, 아이들은 ‘바람’과 같은 존재야.
아이들은 그저 잠시 머물다가 지나가는 거고,
우리는 그 잠깐을 잘 지나갈 수 있게 도와주면 그뿐이야.
아이들을 내 힘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는 자체가 욕심이니 내려놓아야지.”     

  20대 초반의 열정 가득한 교사였던 나는 치기 어린 마음에 이런 대답을 했었다. 

    

  “저는 이해가 가지 않아요. 제가 마음을 준 만큼 변화를 기대하는 것도 아니고, 100을 줬으면 1은 바뀌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거 아닐까요?
1도 바뀌는 걸 기대할 수 없다면 대체 어디에서 교육의 희망과 가능성을 찾아야 할까요? 변화가 전제되지 않은 교육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요.”     


  “아니야. 그 1도 교사의 욕심이야. 지금은 이해되지 않겠지만 그것조차 내려놓아야 진짜 교육이 시작될 수 있는 거야.”


  다시 돌아온 이 대답에 당시에는 끝내 선생님의 현답을 이해하지 못한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던 기억이 있다. 벌써 이제 17년 차에 들어서는 지금은 선생님의 말씀이 어떤 의미였는지 완전히 공감하고 20대의 나의 마음도 어떤 마음이었는지 이해가 돼서 웃음이 난다.


  16년 동안을 나름의 빛깔로 살아온 아이의 삶이 어떻게 나와의 1년여의 만남으로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까? 열정과 과욕이 뒤섞여 있었던 나의 20대의 무모한 용기가 대단하게도, 위험하게도 느껴진다. 지금은 내가 만나는 아이들에게 내가 미약하게나마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조심스러워 언행 하나에도 소심해지고는 하는데, 가끔은 그때의 열정과 패기가 그립기도 하다. 그래도 분명한 건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먼 미래 언젠가는 우리가 뿌린 씨앗이 민들레 홀씨가 되어 사회의 어딘가에서 작은 싹을 틔우지 않을까? 가능성에 대한 작은 희망이다. 괴테의 화살처럼 온 하늘이 열려 있으니 어디엔가는 맞지 않았을까? 그리고 또 안 맞았으면 어떤가? 쉬어 갈 곳 없는 이 세상에서 바람이 정류장에서 잠시 잘 쉬어 갔다면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교육의 가치는 충분한 것이 아닐까? 마음에 작은 위로가 찾아왔다.     


10년 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 10년 후의 나에게 쓰는 편지     


내가 받은 유산 얼마나
찬란하고 얼마나 넓디넓은지
시간이 나의 재산,
내 경작지는 시간     


  나이를 먹으며 점점 시간이 빨리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물리적인 시간의 속도는 같을 텐데, 시간에 쫓기고 있는 걸까? 아니면 체력의 부침으로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하고 있는 걸까? 나는 내 시간을 잘 경작하고 있나? 이런저런 생각으로 내면을 성찰하던 중      


10년 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     


책 속 이 질문과 마주하게 됐다. 그러게, 난 10년 후에 뭘 하고 있을까? 내 삶의 중심에는 뭐가 있을까? 나는 10년 전과는 얼마나 달라진 걸까? 조금 성장을 하기는 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이 이어졌다. 명확한 답을 찾지는 못한 채로(아마도 그 누구도 그 자리에서 쉽게 대답하기는 어려운 질문일 것이다.) 계속 책을 읽다가 교수님께서 괴테의 젊은 날의 집을 닮은 작은 한 칸 집을 지어볼 생각을 하고 계신다는 내용과 마주했다. 이 작은 집은 10년 후의 자기 자신에게 편지를 쓸 수 있는 공간이란다. 이름은 ‘나의 집’. 숲속 ‘나의 집’에서 조용히 자신과 마주앉는 시간이라……. 너무나 멋진 공간과 시간이었다. 아마도 숲속 그 작은 오두막에서 괴테처럼 나의 내면과 마주할 수 있다면 10년 후의 내게 진심 어린 편지를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10년 후 이 느린 편지와 마주했을 때 정말 얼마나 큰 감동이 있을까? 아직은 만들어지지 않은 이 공간에 꼭 가서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 전에 무엇보다 이렇게 멋진 생각을 하고 계시는 교수님(이때까지는 일면식도 없는 분이었다.)과 좀 더 내밀한 대화를 나누고 싶어졌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8년 전 처음 시작된나만 알고 있었던 교수님과의 인연

        

  사실 전영애 교수님과의 인연은 8년 전인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인연이라는 말에는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시점이 담겨 있다. 나는 독어독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교수님의 수업을 들었던 제자도 아니었기에 교수님과는 전혀 접점이 없었다. 그런데 이 인연의 싹이 트게 된 건 순전히 이전에 근무했던 학교의 내 제자들 덕분이다.


  당시 나는 영재학급 인문사회 분야 지도교사였다. 영재학급에서는 책을 읽고 쓴 서평을 바탕으로 저자 또는 관련 전문가를 섭외해 직접 인터뷰를 하고 일련의 경험에서 배운 것들을 함께 공유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는데, 그중 한 모둠이 선택한 책이 교수님께서 번역하신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었다. 야심 찬 시작에 비해 계속되는 섭외 실패로 대부분의 모둠에서 난항을 겪던 중 유일하게 웃는 얼굴로 흔쾌히 인터뷰 수락을 받았다고 기뻐했던 아이들이 바로 데미안 모둠이었다. 분명 집필과 이런저런 업무들로 너무나 바쁘셨을 텐데 고등학교 아이들의 뜬금없는 섭외 요청에도 기쁘게 응해주셨던 교수님께 직접 표현은 못 했지만 크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그 뒤에 덧붙였던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선생님, 저희 교수님의 서원에도 초대받았어요!”     


  서원? 그때 난 처음으로 여백서원의 존재를 알게 됐다. 지금 보니 여백서원이 지어진 것도 2014년, 바로 그 해였다. 아이들은 운 좋게도 서원이 만들어진 첫해, 그곳에 초대받아 독문학 전문가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과 사회에 대해 진실하게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고, 그 경험 덕분일까? 산출물 프로젝트 결과를 발표하는 날 데미안 모둠은 가장 신나는 표정으로 살아 있는 배움을 친구들과 생생하게 나눴던 기억이 있다. 이게 벌써 8년 전이니, 서원과 함께 아이들도 멋진 20대 청년으로 성장했다.


  이후 교수님과의 숨은 인연은 2019년 독일의 바이마르로 이어진다. 당시 바이마르 도서관 인터뷰를 준비하며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던 중 인터넷에서 ‘세계의 도서관-독일 바이마르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에 대해 교수님께서 쓰신 글을 만나게 됐다. 바이마르와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에 대해 피상적인 지식만 있었던 우리에게 교수님의 글은 큰 도움이 되었고, 덕분에 실질적으로 인터뷰 준비도 잘할 수 있었다. 특히나 교수님께서 도서관에서 보냈던 시간들에 대한 추억을 너무나도 멋지게 표현해주셔서, 바이마르에 가기 전부터 더욱 설레는 마음이 배가되었던 것 같다.


  이렇게 나만 알고 있었던 두 번의 인연에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의 책이 더해지며 내가 괴테와 직접적으로 대화를 나눌 수는 없겠지만, 교수님과의 대화를 통해서라면 특별한 방식으로 괴테와 조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무엇보다 바이마르를 다녀오고 나니 왠지 한국의 바이마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여백서원’과 ‘괴테마을’의 모습이 참으로 궁금했다. 이러한 마음을 담아 교수님께 메일을 드렸고, 교수님께서 정말 바쁘신 일정 중에도 나만을 위해 일정을 비워주셔서 마침내 2021년 10월 가을 어느 날, 교수님의 초대로 나는 ‘여백서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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