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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Oct 30. 2022

[과거] 괴테와의 만남, 과거에서 새로움을 찾다(2)

여백서원맑은 사람을 위하여후학을 위하여시를 위하여


                 

  여백서원은 경기도 여주 어느 조용한 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이번 여행길에는 서원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하신 부모님께서 동행해주셨다. 코로나19로 인해 불필요한 외출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던 우리 가족에게 단비 같은 외출이었다. 인터뷰 시간까지 잠시 시간이 남아 여주 신륵사를 돌아본 후, 서원으로 향했다. 차에서 내려 어디로 가야 하나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교수님께서 고양이와 함께 마중을 나오셨다. 교수님과의 대화에 방해가 될까 봐 인사만 드리고 주변을 구경하시려던 부모님께도 들어와서 함께 보시라고 흔쾌히 내부 방문을 허락해주셔서 부모님과 함께 우선 서원을 천천히 둘러볼 수 있었다.


  처음으로 마주한 건 대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 오른쪽에 있는 ‘어린이 도서관’이었다. 다락이 있는 공간을 보니 확실치는 않지만 아마도 8년 전 내 제자들이 웃으며 사진을 찍은 그곳인 것 같았다. 어린이 사서들이 책을 관리하는 것으로 보였는데, 나름의 수칙을 가지고 도서관을 꾸려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도서관에 접근하기 어려운 시골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참 다행스러웠다. 이곳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방구석에서 넓은 세계를 접하며 얼마나 큰 꿈을 꿀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마음이 흐뭇해졌다.(그런데, 나중에 서원을 다 돌아보고 나니 이 공간은 정말 시작에 불과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 맨 처음 마주한 건 동양의 고즈넉한 미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한옥이었다. 아직 내부를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교수님께서 연구하시는 서원의 본관인 것 같았다. 본관을 지나 ‘라이너 쿤체 시인의 뜰’과 ‘시정(詩亭)’을 마주했다. 사실 부끄럽게도 서원을 방문할 당시에는 라이너 쿤체 시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에도 시인과 교수님 간의 일화가 소개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그 부분이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서원을 다녀온 후, 책 『시인의 집』을 읽으며 라이너 쿤체 시인과 교수님의 각별한 인연에 크게 감동했고, 그제야 ‘시정’의 가치가 더 크게 다가왔다. 역시나 정말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무작정 독일의 한 시인의 집을 찾아가 우체통에 자신의 시를 넣으며 내가 시를 계속 써도 될지 치열하게 고민하셨던, 그러면서도 숨길 수 없었던 시에 대한 교수님의 절절한 마음과 동양의 한 시인의 그 마음을 따뜻하게 안아 그것이 세상에 빛을 발할 수 있도록 교정부터 출판까지 세심하게 배려해주신 대가의 마음이 만나는 그 지점에서 나의 무모한 여행에 함께해주신 많은 분들의 마음이 겹쳐졌다. 세상에는 선함과 진실을 지향하는 맑은 마음을 알아봐 주시고 응원해주시고 키워주시는 어른들이 계셔서 그래도 우리가 미약하지만 한 발씩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 같다. 독일 파사우, 아름다운 도나우강의 물굽이를 굽어보는 라이너 쿤체 시인의 언덕에도 여러 노력 끝에 같은 이름의 한옥 정자를 지으셨다고 한다. 유럽에서 보는 한옥 정자라……. 더군다나 이렇게 아름다운 문학과 따뜻한 마음의 교류가 담긴 정자라니! 파사우는 처음 들어보는 지명이지만 또 한 번 독일을 방문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시정을 지나 이어진 산속 숲길 산책로 ‘괴테길(Goethe Pfad)’로 들어섰다. 모처럼 부모님과 함께 걷는 밤나무길의 가을 정취가 참 좋았다. 특히 곳곳에 마련된 괴테의 시편 석비가 산책길을 더욱 즐겁게 했다. 바이마르가 참 그리웠었는데, 이렇게 또 우리나라 여주의 어느 한 뒷산에서 괴테를 만날 수 있다니……. 순간 바이마르와 물리적인 시공이 겹치며 절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산책로를 걷다가 전망대에 이르렀다. 전망대에 오르니 사방으로 탁 트인 전경이 그간 답답했던 마음을 잠시나마 탁 트이게 했다. 그동안 코로나19로 정말 갑갑한 생활의 연속이었는데, 아무도 없는 산책길을 우리 셋만 걷고 있자니 잠시나마 괴테가 우리에게 위로를 건네는 듯했다.     



  여백서원 둘레를 쭉 돌아본 뒤 교수님께서 머무시는 중심 공간인 본관 여백재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하기 전 내부를 먼저 둘러봤다. 여백재는 이제껏 내가 봤던 서재 중에 가장 멋진 ‘책의 집’이었다. 이 공간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책들인 것 같았다. 책에 파묻힌 공간에서 집필과 번역 작업을 하시는 교수님의 모습에서 연구자의 본연의 열정이 느껴졌다. 개집만 해도 좋으니 글 쓸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꿈꾸시던 교수님의 꿈의 집에 들어와 있으니 괴테하우스를 방문했을 때의 그 감동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교수님은 최근 괴테의 편지를 번역하는 일을 하고 계신다고 했다. 색채론, 식물론 등 자연과학부터 소설까지 다방면에 조예가 깊었던 대가의 편지는 2만여 통으로 추정되는데, 그중 남아 있는 것이 15,000통 정도이고, 여기서 100분의 1 정도의 편지를 골라 1권 ‘사랑에게’, 2권 ‘친구에게’, 3권 ‘세상에게’라는 이름으로 괴테 서간집이 출판될 예정이었다. 어느 것 하나 중하지 않은 것이 없어 수많은 편지 중 서간집에 들어갈 것들을 엄선하는 작업부터 어려움이 있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교수님의 따스한 손길로 재탄생할 편지 모음집도 기대가 되었다.       


“내가 점점 더 넓어지고, 깊어지고, 새로워지는 사람을 만났어요.”

      

교수님은 일평생 만나오신 괴테를 이렇게 표현하셨다. ‘넓어지고 깊어지고 새로워지는 사람’. ‘-어지다’라는 변화의 표현이 이렇게 멋지게 다가온 적이 없었다. 그리고 교수님 앞에서는 미처 표현하지 못했지만, 나에게는 평생을 자신이 하는 일에 모든 것을 쏟아부으신 교수님이 그렇게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교수님의 새로운 꿈, 괴테마을(Goethe-Dorf)의 건립에 마음을 보태다 

    

  꿈을 가지라는 그런 추상적인 말 대신, 뜻을 가지면 사람이 어떤 높이와 넓이에 이를 수 있는지, 또 그런 사람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키웠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실물 예 하나를 젊은이들을 위해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 해왔습니다.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중>


  책을 읽으며 가장 궁금했던 공간이 교수님께서 새롭게 기획하고 계시는 ‘괴테마을’이었다. 교수님께 여쭤보니 아직 마을 건립은 허가가 진행되는 중이었고, 자세히 내막은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어려움도 겪고 계신 것 같았다. 아마도 나도 바이마르에서의 경험이 없었다면 이 마을의 성격과 가치에 대해 어쩌면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그 구체적인 실물을 너무도 생생히 보고 온 나에게는 한국의 바이마르가 될 ‘괴테마을’이 이름만으로도 벌써 두근두근한 선물이었다. 직업이 교사여서일까? 학생들에게 꿈을 가지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가끔은 그 이야기가 너무 공허한 외침인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이렇게 꿈을 시각화하고 구체화할 수 있는 마을이 생긴다니 그 시도만으로도 정말 너무나 반가웠다. 교수님의 꿈이 꼭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그 과정에 작은 마음이라도 보태고 싶어 소액이지만 기부를 했다. 우리나라에도 인문학적 소양을 건강하게 쌓을 수 있는 작은 기반이 꼭 마련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즐거운 책 읽기, ‘독일 명작의 이해’ 수업에서 고전 읽기 수업의 영감을 얻다    



  여백재에 들어섰을 때 길게 놓여 있던 탁자에는 참 많은 책들이 올려져 있었다. 그중 눈에 띄는 책들이 있었는데, 교수님의 수업을 들은 학생들이 직접 기획하고 구성해서 만든 책이었다. 교수님께 여쭤보니 ‘독일 명작의 이해’라는 대학교 교양 수업을 들은 학생들이 만든 책이라고 하셨다. 전공 수업이 아니라 ‘교양 수업’을 듣고 책을 만들었다니……. 교재도 시험도 없는 이 수업에 이렇게 자발적으로 학생들이 열심히 참여했다는 게 참 신기했고, 그 비결이 궁금했다.


  교수님께서는 한 학기 동안 함께 읽고 토론하고 교재를 직접 만드는 것이 수업의 기본 요체라고 하셨다. 『파우스트』 같이 방대한 작품을 함께 읽기도 하고 같은 작품을 읽은 학생들끼리 토론을 하기도 한 후, 각자 글을 쓰고 학기 말에 자신의 글, 친구들의 글, 수업 자료 등을 모아 ‘나의 책’을 만드는 방식이었다. 흔히들 교양 수업은 쉽고 편하게 진행되는 수업들을 선택해서 듣기 마련인데, 소위 이렇게나 고된 수업을 학생들이 기꺼이 즐거이 들었다는 게 보면 볼수록 감탄을 자아냈다.


  대체 무엇이 이렇게 ‘즐거운 책 읽기’의 동력이 된 걸까? 교수님의 말씀에서 나는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교수님은 수업을 하시는 동안 매주 학생들의 글을 읽고 일일이 코멘트를 해주셨고, 그것들을 학생 수만큼 복사를 하셔서 친구들의 글도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셨다고 하셨다. 나도 작문 수업에서 아이들의 글을 첨삭하고 코멘트를 했던 경험이 있기에 그 과정이 얼마나 고달픈 작업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일을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매주 하셨다니……. 입이 떡 벌어졌다. 스스로 배움을 찾아가는 수업의 가치에 대한 교수님의 확신과 학생들에 대한 애정, 그리고 마음을 다한 코멘트로 모두를 수업의 주체로 세워 함께 수업을 만들어가신 게 바로 즐거운 책 읽기의 비결이었다. 16년 동안 휴직 없이 교직을 걸어오며 조금은 지쳤던 게 솔직한 마음이었는데, 역시 모든 수업에서 교사의 역할과 신념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느끼며 내 수업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예정(藝亭)과 우정(友亭), 진정한 예술의 교류와 화합의 현장 

    

               

  인터뷰가 끝날 때쯤 교수님께서 여백재 바깥의 갤러리와 극장을 소개해주신다고 하셔서 따라나섰다. 나가보니 예정은 아까 산책길 끝에서 봤던 그 인상적인 공간이었다. 지금 예정에서는 “재밌어요”라는 이름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나는 미술을 잘 모르지만 개성 있는 붓터치와 선명한 색감에 매료되어 부모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작품을 감상했었는데, 알고 보니 이 작가는 자폐가 있는 청년이라고 한다. 이런 작은 전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꺼이 공간을 마련해주신 교수님과 그 속에서 자신의 예술적 세계를 마음껏 펼치며 성장하는 작가의 꿈이 만나 예정은 더욱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갤러리 옆에는 야외 공간이 있었는데, 아까 부모님과 그 공간을 돌아볼 때는 그저 한옥의 뒤뜰이려니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공간은 작은 ‘야외극장’이었다.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 보니 관객들이 올망졸망 앉아 가까이서 공연을 보고 들을 수 있는 그럴듯한 야외무대였다. 교수님께서는 바이마르 소극장에서 공연을 봤던 경험을 이야기해주시며, 딱 배우 둘이 나와서 아무런 장치 없이 공연을 하는데 텍스트를 잘 아는 사람이 공연을 하니 그 어느 때보다 작품이 잘 와닿았다고 하셨다. 텍스트를 제대로 이해하여 그것이 공연으로 이어지고, 그 과정을 통해 작품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아마도 연극의 본질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으셨던 것 같다. 집 안에 있었던 오디오북 녹음 공간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하는 거겠지. 거창한 무대 장치는 없지만 배우와 관객 사람만으로 온기를 가득 채울 작은 극장을 상상하니 내가 만든 것도 아닌데 괜스레 마음이 흐뭇해졌다.


  여담이지만, 여백재에서 예정으로 가는 길에 그 몇 발자국 안 되는 짧은 거리에서 발을 삐끗해 살짝 넘어지고 말았다. 내 발목은 어디를 가든 잘 말썽을 부리는데, 넘어진 것에 놀라기도 했지만 옆에 계시던 교수님께서 많이 놀라셔서 걱정을 끼친 것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이었다. 교수님은 내가 넘어진 게 계속 마음에 걸리셨는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친히 다시 전화를 주셔서 발목은 괜찮은지 따뜻하게 물어주셨다. 며칠 전 서원 안으로 들어온 고양이를 결국 식구로 맞이하셔서 살뜰히 함께하시는 교수님, ‘여백(如白)’이라는 말처럼 교수님은 정말 맑디맑은 영혼의 소유자셨다. 마지막으로 대문 밖에 있는 외국 학자와 예술가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 ‘우정’을 밖에서 구경하며, 언젠가 다시 꼭 인문학의 향기가 가득한 이곳을 찾으리라 다짐하면서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인터뷰 이후예상치 못한 곳에서의 교수님과의 재회 그리고 나의 수업 성찰      


  여백서원을 다녀온 후 그 향기에 취해 교수님의 책을 몇 권 더 읽었다. 감명 깊은 내용들이 참 많았는데, 그중 『인생을 배우다』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는 부분을 읽다가 처음에는 정말 깜짝 놀랐고, 나중에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인생을 배우다』는 ‘소소한 일상에서, 사람의 온기에서, 시인의 농담에서’라는 부제처럼 문학과 인생에 대한 교수님의 경험과 배움을 담은 에세이이다. 우선 내가 깜짝 놀랐던 것은 다양한 사람들과의 일화 중 2014년 서원을 방문했던 내 제자들과 교수님의 에피소드가 책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알고 있기는 했지만 책에서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었던, 아이들과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눠주시고, 또 손수 아이들의 글에 대해 질문을 던지시며 조언을 해주시는 교수님의 모습은 참 감동적이었다. 학교 폭력에 시달리다가 결국 전학을 가버린 반 친구 문제에 대해 ‘학교에서’, ‘사회에서’, 혹은 ‘정부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쓴 아이의 글에 그 친구에게 그 친구가 마음을 붙들 수도 있는 말을 건네는 사람들이 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넌지시 건넨 교수님의 말씀에는 역시 교수님다운 온기가 담겨 있었고, 나는 학교폭력예방교육 때 어떤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했었나 새삼 다시 내면을 돌아보게 됐다.


  그런데 여기까지 읽으면서 이제는 청년이 된 아이들에게 너희의 고등학교 때 이야기가 책에도 담겨 있다고 꼭 얘기해줘야지 생각할 때쯤 나온 다음의 내용은 정말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잠시 책의 내용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그 학생들이 고민 끝에 던졌던 또 하나의 질문은 참으로 나를 당혹케 하는 것이었다. 수능인지 무슨 문제집인지 그런 데서 나온 문제라는데, 어떤 위기 상황에서 여러 연령, 다양한 직업들의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그중 몇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구를 희생시킬까?’ 하는 문제였다. 그런데 어떤 대학생이 정교한 논리로 사회복지가의 꿈을 가진 눈먼 소년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폈는데 자기들은 석연치 않고 정말 모르겠으니 조언을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세상에 누가, 정말이지 어느 몹쓸 인간이 그런 문제를 냈단 말인가. 한참 있다가 학생들에게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그건 답을 내고 못 내고의 문제가 아니고 문제 자체가 틀렸다는 것을.  
                                                                                                      <인생을 배우다 중>   


  부끄럽지만 그 몹쓸 인간이 바로 나였다. 아이들이 교수님께 여쭤본 저 문제는 영재학급 시간에 아주 활발하게 진행됐던 토론의 주제였다. 심지어 저 수업은 딜레마 상황에서의 가치 토론으로 아이들도 나도 꽤 만족스럽게 진행했던 수업이었다. 물론 변명의 여지는 있다. 교수님 책에 이어지는 내용처럼 나의 의도는 당연히 ‘누구를 희생시킬까’가 아니라 ‘누구를 구해야 하는가’의 관점이었고, 아이들에게 생각할 수 있는 토론 거리를 던져주기 위해 설정한 세부 상황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면 일면 이해가 되는 면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누구를 구해야 하는가’는 뒤집어보면 결국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에, 수업을 설계한 나의 의도와 다르게 결국 저 토론 주제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언젠가 책에서 봤던 대학교 영어영문학과 토론 수업의 사례에서 영감을 받아 고등학교 수준으로 변형하여 진행했던 수업이었는데, 여기에 이렇게 큰 문제가 숨어 있을 줄이야……. 더욱 아찔했던 건 내가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이 수업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못했을 것 같다는 점이었다. 새삼 교사의 수업 설계가 얼마나 정교해야 하며, 늘 떨리는 나침반처럼 수업을 성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크게 반성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오늘도 작지만 큰 배움이 또 일어났다.


  18세기 대문호 괴테에게로의 여행은 전영애 교수님의 길잡이를 따라 바이마르에서 여백서원, 괴테마을을 거쳐 내 수업으로까지 이어졌다. 이 첫 번째 시간여행의 귀한 길잡이가 되어 주신 교수님께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새로운 꿈이 하나 생겼다. 이 책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면 이 책을 들고 지금은 어느덧 청년이 된 2014년 데미안 모둠 제자들과 함께 여백서원을 다시 찾아 나의 10년 뒤를 꿈꾸며 그곳에서 편지를 쓰는 일이다. 아직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지만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설레고 벅차오른다. 다시 그곳을 찾을 때까지 집필로 크게 애쓰고 계시는 교수님께서 부디 건강하게 그 자리를 지켜주고 계시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 ②미켈란젤로와의 만남, ③고흐와의 만남은 인터뷰(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 작가 로스 킹, MC투어 하민철 가이드, 반고흐 미술관 문헌 연구팀 등)를 바탕으로 집필 중입니다! 완성하는 대로 브런치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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