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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Oct 30. 2022

장크트갈렌 = Amy X 기록한다는 것

스위스에서의 남은 하루장크트갈렌 너로 정했다  


  취리히 교육부 인터뷰 일정을 확정한 후 남은 스위스 일정을 어떻게 꾸릴지 출발 전부터 참 고민을 많이 했다. 일단 대학교 때부터 꼭 다시 가고 싶었던 그린델발트 숙박 일정을 넣고 나니 하루의 여유가 생겼다. 


(여담이지만 이번 여행 섭외 전체를 통틀어 가장 예약이 힘들었던 곳은 바로 스위스 그린델발트 ‘샬레(chalet)’ 예약이었다. ‘샬레’는 스위스식 작은 산장으로 우리로 치면 전통 민박 같은 느낌인데,  2004년 첫 배낭여행 때 만약 다시 스위스를 찾는다면 꼭 그린델발트 샬레에서 1박을 하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있었다. 여행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앨리스 할머니 샬레’는 1년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할 정도로 인기가 있는 숙박 형태인데, 기관 섭외만큼 공을 들였으나 결국 샬레 숙박은 성공하지 못하고 아쉬운 대로 샬레와 유사한 가족호텔에서 묵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스위스 여행이 또 허락된다면 그때는 꼭 앨리스 할머니를 뵙고 싶다.^^ 이 책의 독자분들 중 혹시나 샬레 숙박을 희망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그 어떤 숙소보다도 일찍 예약하시길.)


  인터넷 검색으로 다양한 정보를 접하다 보니 어찌나 가고 싶은 곳들이 많던지……. 브베(Vevey)에서는 100년 동안 20년에 한 번꼴로 딱 5번만 열린다는 비네롱(Vigneron, 포도원 경영자) 와인 축제가 열린다고 했고, 산악마을 베르비에(Verbier)에서는 음악 페스티벌이 열린다고 했다. 또 모르긴스(Morgins)에는 알프스의 초록 언덕 위에서 유럽 최대의 워터 슬라이드를 탈 수 있는 스플래쉬 유어 마운틴(Splash Your Mountain) 워터파크가 한시적으로 개장한다는 소식도 들렸다. 주어진 시간은 딱 하루인데, 하고 싶은 건 많고 이동 동선은 잘 안 나오니 고민이 계속됐다. 많은 고민 끝에 우리가 선택한 도시는 바로 ‘장크트갈렌(St. Gallen)’이었다.


  장크트갈렌은 취리히 중앙역에서 기차로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리는 근교여서 우선 당일치기로 다녀오기에 부담이 없었다. 여기에 무엇보다 우리의 관심을 끌었던 건 장크트갈렌에 위치한 ‘장크트갈렌 수도원 부속 도서관’이었다. 피렌체의 ‘문화재 복원학교’와 바이마르의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 인터뷰가 잡히며 우리는 ‘기록’과 ‘복원’에 대해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됐는데, 그 관심의 연장선으로 수도원 도서관이 눈에 들어왔다. 사전에 접한 정보에 따르면 장크트갈렌 수도원은 1983년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옛 장크트갈렌 수도원 기록관 및 도서관에 소장된 장크트갈렌 수도원의 기록유산은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을 정도로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은 곳이었다.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적극적으로 인터뷰 섭외를 요청했을 텐데……. 뒤늦게 알게 돼 아쉬웠지만 다행히도 도서관은 일반 여행객들에게도 개방하는 공간이었기에 옛사람들의 흔적을 찾아 7월 29일 우리는 장크트갈렌으로 향했다.                    


장크트갈렌 수도원 도서관에서 나만의 기록을 남기다         


  장크트갈렌은 도시 구획이 깔끔하게 잘 정돈된 한적한 도시였다. 취리히도 다른 대도시에 비해 그리 복잡한 느낌은 아니었는데, 그보다도 훨씬 사람이 적고 조용한 거리를 걷다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잠시 슈퍼에 들러 귤을 착즙하는 기계로 직접 주스를 만들어 마셨다. 이탈리아에서 한번 마셔본 후 종종 애용했는데, 이 기계 우리나라에는 안 들어오나? 싶을 정도로 과일의 신선함이 그대로 느껴져 정말 꿀맛이었다. 갈증이 가시고 나니 걷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곧 수도원 근처에 도착했고, 관광안내소를 거쳐 드디어 수도원 안으로 들어섰다.


  우리가 가고 싶었던 곳은 도서관인데, 건물이 여러 개라 입구를 찾기 어려웠다. 수도원 내 지도를 보며 두리번거리다 옆에 있던 사무실에 들어가 여쭤보니 친절하게 길을 알려 주셨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에 수도원 안뜰을 지나게 됐는데, 이름 모를 풀꽃들과 어우러진 작은 분수와 물통(술통 같기도 하다.) 위에 십자가를 들고 있는 수도사 동상이 우리를 반겨줬다. 무엇보다 돌인지 나무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머금고 있는 듯한 길 조각들이 우리를 중세 시대로 초대하는 것 같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신비한 세계에 다가서는 느낌이었다.


  도서관 입구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고, 소지품을 사물함에 두고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도서관 바닥을 보호하기 위해 별도로 마련된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점이었다. 유럽 여행을 하며 유럽인들의 문화재에 대한 자부심과 그것을 잘 보존하고자 하는 마음을 곳곳에서 느꼈었는데, 수도원 도서관에서도 세계의 소중한 문화자산을 계속 잘 지켜 후대에 물려주고자 하는 그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덧신을 신고 도서관 바닥에 최대한 자극을 주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조심조심 도서관에 들어서자마자 눈앞에 나타난 광경에 정말 숨이 멎을 뻔했다. 2층으로 된 고풍스러운 서가와 천장의 프레스코화가 조화를 이룬 모습은 왜 이곳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는지 단번에 고개를 끄덕이게 해주었다. 수도사들의 자취를 따라 천천히 서가를 둘러봤다. 책을 꺼내 볼 수는 없었지만 기둥과 기둥 사이에 꽂혀 있는 책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숨결을 느꼈고, 전시되어 있는 필사본들을 보며 ‘손으로 기록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만약 여기에 있는 모든 책들이 지금처럼 컴퓨터로 작업해서 만들어진 책들이라면 아무리 아름다운 서가에 꽂혀 있어도 지금과 같은 감동이 느껴졌을까? 지금 시대에는 과학 기술의 발달로 무언가를 손으로 기록할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수도사들이 한 자 한 자 정성껏 필사하고 또 인쇄된 책 사이에 자신의 필체로 무언가를 메모해놓은 것들이 모두 무형의 자산으로 남아 지금의 도서관을 든든하게 지탱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고전을 필사하는 소모임이나 좋은 글귀를 손글씨로 쓰는 움직임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빠름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시대일수록 역으로 이런 느림과 아날로그가 주는 미덕이 후대에 더 가치로운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도서관 안쪽에 전시되어 있는 이집트 미라도 보고, 당시 만들어진 지구본에서 동양은 어떻게 표현되었나 살펴보기도 하며 흥미로운 시간을 보내다 도서관 바깥이 보이는 창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옛 수도사들도 나와 같은 자리에서 이렇게 바깥을 내려다봤겠지? 그들은 이곳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여러 가지 상념에 젖을 때쯤 내 앞에 놓여 있는 방명록을 발견했다. 잠시 넘겨 보니 이곳을 방문한 많은 방문객들이 각자의 소회를 자유롭게 남겨둔 이 역시 ‘작은 기록물’이었다. 2019년 여름의 나도 이 기록물에 작은 흔적을 남기기로 했다. 그런데 몇 글자를 채 안 썼는데 펜이 안 나오기 시작했다. 하필 이 순간에 방명록 옆 비치된 펜이 다 닳아버린 것이다. 필기도구를 사물함에 넣어두고 왔기 때문에 나는 펜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뭔가 너무 아쉬웠다. 나도 기록을 남기고 싶었는데……. 


  안내하시는 분께 말씀드려 펜을 다시 받을까 하는 순간 조금은 색다른 나만의 방식으로 기록을 남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나오지 않는 펜을 꾹꾹 눌러 한글로 계속 메모를 이어갔다. 다 쓰고 보니 마치 점자처럼 도돌도돌하게 기록이 남았다. 눈으로만 볼 때는 글자가 보이지 않는데, 손으로 만져보면 글자가 느껴지는 형태로 말이다. 왠지 모르게 수도원 도서관에 어울리는 방명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오늘 오래전 수도사들의 필체에서 그들을 만난 것처럼 아주 먼 후대에 누군가가 이 방명록을 읽으며 2019년 오늘의 내 흔적과 조우할 것을 상상하며 도서관을 나섰다.                     


에이미의 작은 음악회에 함께하다     


  도서관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의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박물관에서는 사진 촬영이 가능해 보였는데, 우리는 사물함에 들르지 않고 바로 내려와 휴대폰이나 기록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없었다. 사물함이 있는 2층으로 다시 올라갈까 잠시 고민하다가 수도원에서만큼은 기억을 도와줄 수 있는 여타의 수단에 기대지 않고 도서관에서 그랬던 것처럼 오로지 우리의 오감으로 이 공간을 기억해보기로 했다. 


  지하 공간에는 이 수도원을 만든 갈루스 성인(St. Gallus-‘장크트갈렌’이라는 이 도시의 이름도 갈루스 성인의 이름을 본떠 지어졌다고 한다.) 및 수도원과 관련된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현대의 첨단기술과 전시품들이 어우러져 2층의 도서관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박물관을 돌아보며 수도원이 문학, 음악, 건축, 언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1400여 년 동안 유럽의 문화 발전에 어떻게 공헌했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 집필 과정에서 추가로 정보를 수집하다 2019년에 도서관의 지하 금고가 이러한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됐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우리가 방문했던 해가 딱 2019년이었는데, 당시에는 몰랐지만 역시 노력한 만큼 행운이 함께하는 여행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됐다.    


[고악보 엽서 사진]

   사진이나 메모로 기록을 남기지 않아 박물관의 세부적인 내용들은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도 수도원 도서관의 지하 공간이 내게 생생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건 에이미(Amy)와의 만남 덕분이다. 2층 도서관에서부터 우리와 동선이 겹치며 같은 관광객이면서도 마치 도서관 직원인 것처럼 전시된 책의 라틴어에 대한 우리의 궁금증에 적극적으로 답변을 해주던 에이미를 지하에서 다시 만났다. 


  우리는 “Ad te levavi(하느님 당신께 제 영혼 들어 올리나이다)”라는 제목의 오래된 악보를 구경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 꿈이 피아니스트였던 나는 평소 음악이나 악보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다. 오선지에 음표가 그려진 악보가 아니라 선은 없고 어느 나라 말인지 정확히 모르겠는 가사에 지금은 쓰지 않는 이상한 악곡 기호가 잔뜩 쓰인 그 악보를 유심히 보고 있는데 에이미가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잠시 후 에이미는 아주 오래된 그 악보를 보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와! 너무 오래돼서 나는 전혀 읽을 수도 없는 악보를 어떻게 음성으로 재현할 수 있지? 정말 신기했다. 지하 공간에 조용히 울려 퍼지는 그녀의 노래는 눈앞의 악보가 그저 지나간 옛것이 아니라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 기록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우리를 위한 작은 음악회를 꾸려준 그녀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박수를 보내며 어떻게 라틴어나 이런 오래된 악보를 읽어낼 수 있는지 질문을 했다. 그녀는 미국에서 음악을 전공하며 관련 공부를 하고 있다는 답을 주었다. 인터뷰 섭외를 하고 온 것도 아닌데 길 위에서 이런 전문가를 만나 과거의 기록을 현재로 불러내는 현장에 함께할 수 있다니……. 정말 감사한 경험이었다. 2층에 올라가 많은 기념품들 중 도서관 사진을 표지로 한 연습장과 ‘Ad te levavi’ 악보가 그려진 엽서를 샀다. 지금도 연습장과 엽서는 2019년 7월 29일로 나를 데려가는 소중한 타임머신이다.


  수도원 앞 넓은 잔디밭에 앉아 편하게 수다를 떨고 있던 사람들, 아씨시 수녀님 파스타에 버금갈 만큼 맛있었던 La Follia 왕새우(King Prawn) 인생 파스타, 그리고 역으로 가는 길에 들었던 스위스 전통악기 알펜호른 트리오 버스킹까지. 7월 29일 나의 장크트갈렌 추억은 이렇게 시각, 미각 그리고 청각에 지금도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수도원 도서관 입구에는 그리스어로 ‘ΨϒΧΗΣ ΙΑΤΡΕΙΟΝ’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영혼의 약국’, ‘영혼의 요양소’라고 해석된다고 하는데, 장크트갈렌은 정말 현대의 복잡한 일상에서 자아를 잃어가고 있을 때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기에 알맞은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화려한 매력을 지니고 있지는 않지만, 맑은 물빛을 닮은 기품 있는 그곳을 지친 현대인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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