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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Nov 21. 2022

시간을 거슬러 마침내 미켈란젤로를 만났다

<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

  두 번의 바티칸을 다녀온 후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는 여전히 내 마음속에 감동적인 이미지로 남아 있었지만, 이미지만 선명할 뿐 막상 누군가가 그 그림에 대해 묻는다면 나의 감상이나 느낌 말고는 기억나는 게 많지 않아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별로 없을 것 같았다. 물론 나는 그림의 전문가가 아니니 전문적으로 그림에 대해 설명을 할 일은 없었지만, 처음으로 그냥 순수하게 그림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내 스스로가 그림에 대한 앎에 갈증을 느끼다니, 그리고 지금 미약하지만 그 배움의 과정을 글로 옮기고 있다니……. 아무리 비전문적인 글이라 할지라도 내가 그림, 미술에 대한 글을 쓰게 될 줄이야 정말 세상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천장화에 대해 공부하던 중 만나게 된 책이 바로 <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MICHELANGELO AND THE POPE’S CEILING)>이다. ‘르네상스 천재들의 치열한 각축전과 그들의 삶’이라는 부제와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의 제작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루는 책.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다룬다.’는 추천글이 호기심을 자극했고, 그간의 갈증을 해소해줄 듯한 기대감을 가지게 했다. 그리고 이 책은 정말 나를 과거 르네상스 시대로 데려갔다. 결코 과장이 아니다. 책 속 세상은 르네상스 시대 그 자체였고, 그 속에는 미켈란젤로를 중심으로 교황 율리우스, 또 다른 천재 라파엘로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까지 이름만 들으면 아는 그 인물들이 정말 살고 있었다. 2022년 서울의 방구석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로 시간과 공간을 이동해 떠나는 여행은 이렇게 또 흥미롭게 시작되었다.     




실수해도 괜찮아! 천재의 작업 방식이 나에게 위로를 건넸다.            

                                                    

  굳이 「홍수 The Flood」로 프레스코를 시작한 데에는 그만한 사정이 있었다. 제일 중요한 첫 번째 이유는 위치상 이곳이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내방객,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지성소에 앉은 교황의 눈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좀 더 유명한 장면으로 시작하는 것이 나았으나, 프레스코의 경험 부족으로 큰 부담감을 느꼈을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전에 그려 굉장히 주목을 받았던 「카시나 전투」를 자세히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홍수 장면에 대한 준비가 이미 완료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중략) 프레스코 작업은 조수들의 노련한 솜씨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순조로운 출발을 한 것 같지는 않다. 화판을 채운 후 곧바로 상당 부분 수정 작업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펜티멘티(후회)’라는 묘한 이름을 가진 수정 작업은 프레스코 화가들을 항상 어려움에 빠뜨렸다. 오일이나 템페라 회화의 경우에는 실수를 하더라도 덧칠을 가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프레스코 화가들은 그렇게 간단히 ‘후회’할 수 없었다. 다행히 인토나코가 완전히 마르기 전에 실수를 발견하면, 실수한 부분의 석고를 긁어내고 그 자리에 새 석고를 입혀 작업을 재개하면 충분했다. 그러나 인토나코가 이미 다 마르고 난 뒤 실수를 발견하면, 그때는 망치와 끌을 사용해 1조르나타의 석고를 통째로 제거하는 수밖에 없었다. 미켈란젤로 팀이 저지른 실수는 후자에 속했다. 그들은 석고를 조르나타로 자그마치 열댓 개나 뜯어내어 전체 「홍수」 장면 가운데 왼쪽 부위 등 반 이상을 새로 다시 그려야했다.    

                                                                           <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 p.123~126  


  유럽 여행을 하며 다양한 예술품들을 감상하다 보면 ‘성경’의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들이 참 많다. 어쩌면 그간 미술에 대한 흥미가 딱히 높지 않았던 데에는 ‘성경’이나 ‘세계사’에 대한 기본 배경 지식이 부족했던 게 크게 한몫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2019년에 세례를 받은 후 지금까지 ‘창세기’-‘탈출기’-‘마르코’-‘요한’으로 이어지는 가톨릭청년성서모임을 통해 성경 말씀을 일상에서 가까이하며 조금은 성경에 더 익숙해진 지금, 이제야 천장화의 세부적인 요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로 시작하는 창세기 1장 1절의 말씀부터 ‘아담과 이브’, ‘대홍수와 노아의 방주’ 이야기까지 성경에서 읽었던 말씀들이 천장 중앙에 아홉 장면으로 그려져 있어 창세기 내용을 돌아볼 수 있었다. 사실 바티칸 현장에서는 워낙 관람객도 많고 또 바닥에서 천장을 향해 계속 고개를 들어 감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작가가 의도한 세부적인 장치들까지는 주목하기가 다소 어려웠다면, 내 방에서는 책에 실린 그림을 자세히 보며 성경 속 구절이나 인물들의 특징이 그림에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맞춰볼 수 있어 그 과정이 꽤 흥미로웠다. 특히 인간의 원죄가 발생하는 에덴동산에서의 뱀의 형상, 노아의 방주 지붕에 작게 그려진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 술 취한 노아를 대하는 아들들의 모습 등은 바티칸 방문 시에는 미처 눈에 들어오지 않은 부분이었다.


  그런데 아홉 개의 중심 장면을 순서대로 감상하다 보니 성경과 그림의 순서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성경에서는 땅과 바다를 만드시는 게 먼저 나오는데, 그림에서는 해와 달, 별을 만드시는 장면이 먼저 등장했고, 노아와 관련된 장면도 노아의 제사와 대홍수의 순서가 뒤바뀌어 있었다. 분명 미켈란젤로의 숨은 의도가 있었을 텐데 그 의도를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다만 문득 미켈란젤로가 성경 말씀 순서대로 작업을 한 게 혹시 아닌가? 작업 순서에 대한 의문이 들었고, 책을 읽으며 그 의문을 해소할 수 있었다.


  책에 따르면 미켈란젤로가 처음으로 작업한 부분은 「홍수」였다. 프레스코의 경험 부족으로 인한 부담감과 이 장면에 대한 준비가 이미 완료되어 있어 「홍수」 부분부터 그리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대작의 시작을 앞둔 미켈란젤로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막연히 천재는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과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실수나 실패 없이 한번에 대작을 완성했을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자신이 없어 눈에 잘 띄지 않는 부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니……. 그도 역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다.


  무엇보다 성경 말씀의 순서대로 그림을 그리지 않고 본인이 가장 준비가 잘 된 부분부터 그리기 시작했다는 점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작문 수업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다 보면 항상 공통적으로 토로하는 어려움에  

   

  “선생님, 글 처음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글 제목을 뭐라고 짓고 시작하면 좋을까요?”  

   

와 같이 글의 ‘시작’ 부분과 관련된 문제들이 많은데, 일단 글의 구성이나 순서를 생각하지 말고 ‘가장 잘 쓸 수 있는 내용’부터 자신 있게 시작해보라는 조언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울러 글쓰기뿐만 아니라 우리네 삶에서도 꼭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기대하는 정해진 순서대로 갈 필요는 없겠구나, 내 방식대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준비된 부분부터 인생을 그려가면 되겠구나 하는 작은 깨달음도 찾아왔다. 


  쇼펜하우어는 ‘우리는 다른 사람과 같아지기 위해 인생의 4분의 3을 빼앗기고 있다.’라는 말을 남겼다. 나를 포함해서 일반적이고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사회의 통념과 ‘다른 순서로’, ‘다른 속도로’, ‘다른 관점으로’ 삶을 걷고 있는 모두에게 작은 위로를 건네고 싶어졌다. 천재도 순서대로 그려가지 않았고 또 그나마 자신 있는 부분부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수하고 또 수정하는 과정을 상당 부분 거친 것처럼, 그림도 삶도 원래 그런 거라고. 다만, 실수를 했을 때 외면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고치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사실 인토나코가 완전히 말라 석고를 통째로 제거해야 하는 상황에서 실수를 발견했을 때는 그냥 모른 척 넘기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제대로 ‘후회’하고 실수를 바로잡는 미켈란젤로의 모습을 보며 어쩌면 우리가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진짜 가르쳐야 하는 것들은 마음껏 실수하되, 실수를 했을 때 그것을 인정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용기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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