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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Oct 30. 2022

[미래] 포스트 팬데믹, 결국 해답은 다시 본질로

- 목적지: 코로나 팬데믹이 종식된 아직 오지 않은 미래

- 길잡이: 2019년 교육기행 인터뷰 대상자 전체 및 바이마르 고전 재단 Regina 

         이탈리아 교사 Davide Rebeggiani, Riccardo Ferrati 

- 경유지: 2021년 팬데믹이 진행 중인 유럽의 현재


2021년 오늘, 그대들은 안녕하십니까?     


  괴테와 미켈란젤로 그리고 고흐를 만나고 돌아온 오늘, 조금은 달라져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나의 바람이 무색하게 여전히 코로나는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2020년 초 국내 첫 확진자가 발생할 때까지만 해도 이런 세상이 올 거라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정말 미래를 예측하기란 참 어려운 것 같다. 그래도 용감하게 희망을 품고 코로나 팬데믹이 종식된 그 언젠가로 떠나보려 한다. 미래로 시간여행을 떠나기 전 문득 함께 어려움을 겪고 있을 2019년의 그들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2021년 오늘, 그대들은 안녕하십니까?     


  코로나 팬데믹 이후 공동체의 삶이 무너지고 관계가 단절되며 개개인으로 파편화된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우리가 평소 끈끈하게 연대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시기를 보내고 있기도 하다. 이제는 나의 안녕만큼 지인의 안녕이 중요하고, 심지어 같이 버스에 탄 모르는 승객들의 안녕까지도 나에게 가시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또한 우리와는 너무나도 먼 나라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누군가의 안녕도 궁금해하고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거리를 크게 둬야 하는 시기가 올수록 유대감은 더 진하게 느껴진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모르는 사람의 안녕도 소중한 시기인데, 하물며 지인들의 안부는 궁금한 게 당연했다. 2019년 여행에서 만났던 많은 분들 중 연락처를 알고 있는 모든 분께 안부 메일을 드렸다. 모두와 연락이 닿은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 회신이 왔고, 아씨시의 수녀님들부터 슈투트가르트 도서관의 카린과 롤러, 그리고 베를린 초상화 자판기의 주인공 홍콩 청년까지 감사하게도 모두 잘 지내고 계신 것 같아 걱정을 한시름 놓았다. 


  안부를 확인하고 나니 코로나 팬데믹을 겪어 내고 있는 그들의 속살이 궁금했다. 해외 뉴스로 가끔씩 접했던 그들의 모습도 여전히 힘들어 보이기는 했었는데, 그들도 우리만큼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지, 아니면 2년의 경험에서 그래도 나름의 지혜를 터득해 조금은 숨통이 트인 건지, 학교와 도서관 현장은 어떤지 궁금증이 하나둘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기자도 아닌데 나의 내면 밑바닥에는 취재 본능이 숨어 있는 걸까? 퇴근 후 잘하지도 못하는 영어로 다시 이메일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이 나도 웃겼지만, 그래도 궁금했다. 그들의 현재와 그들이 준비하고 있는 미래가.     


팬데믹에 대응하는 방법은 각기 달랐으나, 그 속에 숨은 성공 요인은 같았다!     


  어떤 답변이 올지 궁금했다. 메일을 받기 전까지 세계적인 전염병으로 모두가 공통의 어려움을 겪고 있기에 나는 대동소이한 답변이 올 거라 예측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나의 예측은 빗나갔다. 물론 내가 연락 가능한 범위 내에서의 조사였기에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각기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모습은 꽤 흥미로웠다.     


취리히최소한의 원격수업그 이면에 어떤 특별한 비결은 없어요.     


  취리히 주교육부 교육 기획 책임자 콘스탄틴에게서 답변이 왔다.(사실 메일을 주고받다가 딱 한 번 답변이 오지 않은 적이 있었다. 당연히 바쁘셔서 답을 주지 못하시나보다 생각했었는데, 그는 내게 답을 주지 못한 걸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나도 잊을 만큼 시간이 지났을 때까지도 잊지 않고 있다가 꼭 필요한 답변을 성의껏 해주신 콘스탄틴에게 다시 한번 꼭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놀랍게도 취리히의 경우 2020년 약 6주~8주의 원격수업을 진행한 것을 제외하고는 늘 학교를 개방했기에 팬데믹으로 인한 교육적 타격이 그리 치명적이지 않다고 했다. 우리는 전면등교를 하기까지 1년 반이 넘는 시간이 걸렸고 지금도 2022년 3월 등교를 앞두고 자가진단키트 사용부터 해서 여전히 혼란스러운데, 대체 어떻게 계속 학교 개방을 할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이 너무나 궁금했다.   

  

There are no special secrets behind that.     


  특별한 비결이 없다고? 당황스러웠다. 그냥 팬데믹 전에 등교 수업을 했던 것처럼 그렇게 한 걸까? 그냥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하면 되는 거였나? 그랬던 거였어? 마음이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 뒤에는 이런 이야기가 덧붙어 있었다. 번역을 하면 다음과 같다.     


· 학교를 계속 개방하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
· 다음 세대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데 있어 개인적인 위험과 책임을 지겠다는 선생님들의 강한 헌신
· 우리의 주장과 신념에 헌신하는 사회와 대중의 강한 의지     


를 바탕으로 주교육부는 항상 모든 것을 운영하기 위해 교사들과 교장 선생님들과 매우 긴밀한 대화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일단 이는 교육부 관계자에게 들은 답변이기에 실제 취리히 학교 현장의 평범한 교사에게 물었을 때도 과연 유사한 답변이 나올 수 있을지가 상당히 궁금했지만(가능하다면 꼭 후속 취재를 해보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격수업이 최소화되어 운영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일단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9년 인터뷰에서 느꼈던 것처럼 취리히는 여전히 교육부와 학교 그리고 사회가 매우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았고, 특히 정부가 지속적으로 현장의 교사들과 소통하고 있는 모습도 부러운 부분이었다.

     

피렌체, 대부분의 원격수업! 부엌을 작은 실험실로 만들었어요.     


  2019년 교육기행 때 방학 중이어서 중등학교의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며 학교를 둘러보지 못했던 것이 두고두고 아쉬웠었는데, 좋은 기회로 이탈리아의 선생님 두 분과 인터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같은 유럽이었지만 이탈리아 선생님들이 주신 답변은 취리히 주교육부에서 온 답변과 꽤나 큰 차이가 있었다. 이게 지역 간의 차이인지, 아니면 행정가와 교사라는 각기 다른 직분에서 온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요인이 있는 것인지는 다각도에서의 비교 분석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이렇게 나라마다 다른 해법으로 팬데믹에 대응하는 모습은 매우 흥미로웠다. 


  피렌체 인근의 과학고등학교 Ernesto Balducci에서 과학(생물, 화학, 지질)을 가르치시는 페라티 선생님은 팬데믹 이후의 가장 큰 변화로 지난 2년 동안 이루어진 원격수업을 꼽으셨다. 구글 미트(Google Meet)와 같은 플랫폼을 활용하여 수업을 하셨는데, 확실히 학생들과의 상호작용이 이전보다 덜 개인적이고 덜 직접적으로 이루어져 다시 학교로 돌아온 후에도 예전보다 학생들이 준비가 덜 된 느낌을 받으셨다고 했다. Bertrand Russell experimental and classical high school에서 종교를 가르치시는 다비드 선생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원격수업으로 인해 생긴 공백은 다음 해에 걸쳐 점차 채워지지만, 학생들이 혼신의 노력을 다할 때 가까스로 회복되는 것 같다며 팬데믹으로 인한 학습 결손에 대해 솔직한 생각을 나누어주셨다. 이탈리아 선생님들이 말씀하시는 학교 현장의 상황은 오랫동안 전면등교가 이루어지지 못한 우리의 상황과도 일면 통하는 부분이 있어 크게 공감이 됐다.


  많은 한국의 교사들이 효율적인 원격수업 방안을 고민했던 것처럼 페라티 선생님도 원격수업 기간에 학생들이 학교와의 물리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관심을 잃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고민하셨던 것 같다. 그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학생들이 집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물, 식초, 베이킹소다, 요구르트, 그리고 다른 음식들과 같은 재료들로 작고 간단한 실험실 활동을 디자인하고 수행하게 하는 수업이었다. 부엌을 작은 실험실로 만든다! 참 멋진 발상이었다. 작은 다큐멘터리처럼 실험을 디자인하고 촬영하거나 휴대폰으로 녹화해 나머지 반 학생들과 공유하도록 하셨는데, 많은 학생들이 그것을 즐겼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또 등교 수업을 할 때도 수업 장소를 교내에서 바깥으로 옮기는 시도를 하셨다고 했다. 예를 들면 야외에서 위험 없이 배울 수 있도록 생물학과 식물학 수업을 직접 학교 주변 정원에서 하셨던 것이다.


          

  취리히와 피렌체가 코로나 팬데믹에 대응하는 방식은 정반대였다. 하지만 그 속에는 숨은 공통점이 있었다.      

‘아이들을 생각하는 교사의 헌신’       


원격수업이냐 전면등교냐 학교의 개방과 수업 방식을 두고 팽팽한 줄다리기가 오가고 있고, 덕분에 현장 교사들의 피로도도 점점 올라가고 있지만 결국 해법은 다시 교사들에게 있었다. 우리는 늘 정책과 구조, 물리적인 방법들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지만, 실상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그 속에 담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 바깥으로 보이지는 않을 수 있어도 적어도 우리는 안다. 우리의 크고 작은 헌신이 모여 2년여간의 학교를 지탱했다는 것을. 팬데믹을 함께 이겨내고 있는 모든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응원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Stay safe! 새롭게 고민하게 된 학교 내 ‘안전 개념’     


  학교에서 수업이나 각종 행사를 진행할 때 평소에도 아이들의 안전이나 사고 대비를 위해 많은 고민을 하기는 했지만, 팬데믹 이후 ‘방역’이라는 개념이 학교로 새롭게 들어오면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2009년 신종플루의 유행 때에도 매일 아침 교실에서 아이들 체온을 체크하고 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 코로나 팬데믹은 학교 기반 학습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를 요구할 만큼 이전까지와는 다른 층위의 엄청난 변화였다. 취리히의 콘스탄틴도 팬데믹 이후 학교에서 가장 달라진 점으로 ‘예방’과 ‘건강’ 그리고 ‘안전’이 교육의 중심 주제로 부각된 것을 꼽았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마스크 착용과 희망 학생들의 백신 예방 접종은 그들의 ‘효율적인 안전 개념’의 근간이었다.


  오미크론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고 바이러스의 변이는 쉽게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이기에 몇 달 후 팬데믹 상황이 어떻게 변화해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보다 먼저 오미크론을 겪은 해외의 사례들을 보며 조심스레 올해는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본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된다고 해도 언젠가 또 다른 바이러스가 우리의 삶을 뒤흔들 수도 있기에 이제는 학교에서 학생들의 건강과 안전 문제가 최우선이 되었다. 무엇보다 피렌체의 페라티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학생들이 10대의 학창시절에 오롯이 경험할 수 있는 수학여행이나 각종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 그들에게 정서적, 심리적 관점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그는 자신의 학생들이 자신이 매우 불확실한 시대에 살고 있고 미래에는 좋은 것이 없다고 확신하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는데, 개인적으로 우리 학생들도 비슷한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동 목공 축제에서 얻은 첫 번째 해답, 혼자 말고 ‘함께’!      


  이런 생각을 가지고 미래로 떠나보니, 지금 이대로 어찌어찌해서 어벌쩡 미래로 넘어간다 해도 순간의 어려움을 잘 넘긴 것일 뿐 근본적인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팬데믹과 같은 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상황은 너무나 많은 요인들이 얼기설기 뒤섞여 있으므로 사실 정답도 해답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있는 이곳에서 어쩌면 다시 찾아올 수도 있는 그때를 생각하며 학교 내 ‘안전’과 교육 공동체의 심신의 ‘건강’을 위해 나름의 해답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설사 그것이 정답이 아닐지라도. 


  많은 고민을 하던 중, 문득 생각나는 순간이 있었다. 2019년 바이마르의 꼬마 건축가와 만났던 그날, 나는 톱과 드릴, 접착제 등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꼬마들을 보며 우리는 안전 문제로 불가능할 것 같은 이 축제가 여기서는 대체 어떻게 가능한 거지? 의문이 생겼었다. 당시 끝내 그 의문의 답은 얻지 못했었는데, 전염병과는 당연히 완전히 종류가 다른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 역시 ‘안전’과 관련된 문제이기에 어쩌면 그들의 사례에서 작은 해답을 얻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이마르 고전 재단의 펠릭스를 통해 당시 축제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는 그의 동료 레지나(Regina)와 연락이 닿았다. 레지나는 재단의 문화 교육 파트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나는 레지나에게 2019년 내가 보았던 그 ‘아동 목공 축제’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아동을 대상으로 위험할 수도 있는 도구를 사용하는 축제를 어떻게 기획할 수 있었는지. 그녀의 대답 중 인상 깊었던 문장을 그대로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When we have workshops in the atelier ore in public spaces we have enough staff to introduce our guests to the topic.
Our policy is that we don’t hold the duty of supervion, that’s the job of the parents.     


요약하자면 우리는 손님들에게 주제를 소개할 수 있는 충분한 직원들을 워크숍에 두지만, 감독 의무가 없다는 게 그들의 방침이고 그것은 ‘부모의 일’이라는 답변이었다. 그래서 직원들은 가족을 맞이할 때 부모님들께 충분한 설명을 드리고, 입구의 서류나 환영 게시판 등을 통해 정책에 대해 가시적으로도 잘 안내를 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지난 몇 년 동안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아이들은 손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에 행복해했다는 답변도 덧붙었다.


  일단 여기서 학교 내 안전에 대한 첫 번째 작은 해답을 찾았다. 나는 그동안 개인적으로 건강염려증이 있나 싶을 정도로 건강과 안전에 대해서는 상당히 조심스러운 입장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 이것이 학생들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일 때에는 더욱 소심해져 교육 활동에 제약을 많이 뒀었다. 아마도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두려움도 영향을 줬던 것 같다. 지금도 조심해야 한다는 기본 입장에는 변함이 없지만, 안전과 건강을 책임지는 주체를 ‘학생 스스로’와 ‘학부모님’까지로 확장하여 모두 함께 학교 내 안전과 방역을 지키려고 노력할 수 있다면, 교사들이 조금 더 용기를 내서 교육적인 다양한 활동들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팬데믹 상황에서 2년간 1인 1역으로 학급에 ‘방역 도우미’ 학생을 요일별로 정해 손잡이, 창틀 등을 소독했었는데, 학생이 학급 방역의 주체가 된 덕분인지 우리 반은 2년 동안 큰 문제 없이 이 위기를 넘겨왔었다. 무엇이든 나 혼자 책임지려고 하기보다 ‘함께’ 주체가 되는 것이 교사에게도 학생들에게도 의미가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위험해야 안전하다? 어쩌면 역설적으로 여기에 해답이 있을지도…….     


  『미래‧공생교육(김환희)』이라는 책을 읽다가 흥미로운 글과 마주했다.  

   

  일부러 도로 한가운데에 놀이터를 설치하는 등 위험한 놀이터를 설계하는 유럽의 모델을 살펴볼 필요도 있다. 어린이들을 밖으로 튀어나간 공을 잡기 위해 도로로 나가면 차에 치일 수 있는 위험 상황에 노출시키는 것이다. 놀이터의 모든 위험 요소를 제거하고, 예상 불가의 사태로부터 항상 어린이를 보호하는 보호자의 존재가 아이의 수동성을 극대화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런 놀이터에서는 위험 요소가 어린이들의 눈에도 쉽게 들어오기 때문에 스스로 조심해서 행동하게 된다. 그리고 같이 놀면서 서로의 위험을 살피고 경계해 준다. 이와 같은 자기 돌봄과 상호 보살핌의 반복을 통해 반성적 주체성이 길러지는 것이다.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놀이터 모델이지만, 분명 시사하는 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놀이터, 위험해야 안전하다(편해문)』에 좀 더 다양한 놀이터 사례들이 나와 있었다. 책에서 저자는 놀이터를 이렇게 정의한다. 

    

놀이터는
아이들이 수용 가능한 위험과 만나고
위험을 배우고 그것에 대처하는 방법을
스스로 또는 친구들과 함께 찾는 곳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학교의 ‘안전 개념’도 결국 위와 같아야 하지 않을까? 나는 나만의 작은 두 번째 해답을 찾았다. 우리가 평생 아이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모든 요소를 제거해줄 수 없다면, 아이들 스스로가 위험에 대처하며 자신을 지켜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학교가 안전에 대한 배움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 단, 학생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용 가능한’ 위험과 마주할 수 있도록 학교와 교사들은 정교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아마도 취리히가 최소한의 원격수업 후 팬데믹 속에서도 학교를 계속 열 수 있었던 것에도, 바이마르의 아동 목공 축제가 아이들의 호응 속에서 진행될 수 있었던 것에도 기저에 교육 기획자들의 이런 신념이 깔려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오늘도 코로나19 확진자가 10만명을 넘어섰다. 연일 새로이 쓰이는 기록을 보면 3월 개학을 앞두고 마음이 답답해진다. 하지만 이제는 어차피 평생 피할 수 없는 거라면, 학생들과 ‘함께’ ‘수용 가능한 위험’을 감수하며 이를 또 배움의 기회로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포스트 팬데믹 시대에도 결국 해답은 학교와 교육의 본질 회복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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