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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 Jan 08. 2023

새해를 맞은 병동

다사다난했던 연말이 지나 병동은 새해를 맞았다.




"이 약 때문에 책이 잘 안 보여요... 눈이 흐릿해져요"


"택배 보내달라고 해요... 택배.... 알았죠? 알았냐고요! 알았어요?..."


"*$%#@%...."


"제가 무술을 배워서 경찰인데요... 선생님 무술 잘 아세요?"


"선생님, 저는요 정신병이 있는 게 아니고요 군대에서 맞아서 그런 거예요...."


"제 혈압은 제가 전파를 쏘아서 조절할 수 있어서 신경 쓰지 마요. 이건 기계가 잘못된 거라니깐요~?"




병동 환자들은 여전히 내게 기이한 망상을 호소하기도 하고 병식이 없는 채로 자신이 내적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왔다고만 굳게 믿으며 끊임없이 면담을 시도했다. 새해가 되자 환자들은 더욱더 보호자들에게 면회를 와달라는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분은 보호자분 직장으로 계속해서 연락하며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 보호자분으로부터 혼이 나기도 하여 하루종일 우울해하기도 했다. 새해가 되자 환자분들은 대체적으로 들뜬 모습을 보였다. 동시에 퇴원 요구가 늘어났다. 



일을 하다 보면 양가감정이 든다. 



10년 이상 병동 생활을 해 이제는 퇴원해서 나가고 싶지만 보호자들로부터 버림받아 퇴원해도 받아주는 곳도 없고 직장을 가지기 어려워 생계유지가 힘들어 어쩔 수 없이 병동에 남아 있는 환자, 퇴원하고 나서 증상이 계속해서 다시 재발해 스스로 병원으로 돌아오는 환자, 자신은 증상이 없다며 끊임없이 근무자와 보호자에게 욕을 하며 화를 내는 환자, 지문 인식을 해도 등록되어 있지 않아 어떠한 일에서인지 수급비를 받을 수 없어 평소에 소원이 콜라 한 잔 마시는 것이라고 하는 환자 등



환자로부터 끊임없이 협박과 온갖 욕설 전화를 받아야 하는 보호자, 매일매일 전화할 때마다 환자로부터 택배 요구와 면회 요구를 하며 시달려야 하는 보호자, 환자가 퇴원하고 싶다 하지만 직계 가족도 아니고 먼 친척인데 집에서 모시고 살 수 없는 상황으로 곤란한 보호자, 환자가 퇴원할까 봐 무서움에 떠는 보호자 등 



이러한 모습을 중간에서 보고 있자면 서로의 입장이 이해가 되면서도  이러기도 저러기도 힘든 상황이라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당장 나도 환자분들에게 친절하고 도움이 되는 간호사이고 싶으면서도 끊임없이 같은 이야기를 하루종일 반복해서 듣고 망상으로 인해 내게 욕설을 하는 환자를 보면 허탈하기도 하고 내가 이렇게 욱하는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화를 꾹꾹 참아내는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을 평생 봐온 보호자분들은 얼마나 더 속이 터질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하겠다.



새해가 되면서부터 정신과에 남아 좋은 간호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떤 마음 가짐을 가지고 올해를 시작해야 하나 고민을 하게 되었다. 아직 부족하기만 하고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생각을 작년에 일을 하면서 불쑥불쑥 무의식적으로 하게 되었다. 올해는 부디 작년보다 조금 더 발전하는 간호사가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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