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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 Mar 07. 2024

목표를 상실했다

정신과 간호사의 일기 

어느덧 정신과 간호사를 한 지 3년 차가 되었다. 타 과에서도 있어보았지만 나에게는 정신과가 가장 흥미가 많고 더욱더 공부를 하고 싶게 만드는 과였기 때문에 다시 타과로 돌아갈 일이 없었다. 

정신건강간호사 수련이 끝난 지금 나는 오랜만에 느끼는 여유로움에 도태되어 가는 삶을 살고 있고 그저 나의 취미에만 집중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오늘 우리 병원에서는 코드 블루방송이 떴다. 코드블루라 함은 병원 내에 상태가 심각하여 즉각적인 처치 및 소생이 필요해 병원 내에서 방송을 하는데 이 방송이 뜨면 모든 병동의 근무자들이 뛰어가 도움을 주어야 한다. 심폐소생술을 하고 산소와 수액을 달고 정신이 없는 일이 벌어진다. 몇 년이 지나도 응급상황이 벌어지면 심장이 빠르게 뛴다. 조급해진다. 머리가 하얘지고 뇌의 회로가 차단이 되는 느낌이다. 


정신과라 응급상황은 타 과에 비하면 비교적 없는 편이지만 그래도 매 분기마다 코드블루 방송이 나는 편이다. 한심하게도 나는 우리 병동이 아님에 감사함을 느꼈고 이에 자괴감이 들었다. 간호사란 사람이 응급상황에 그러한 생각이 먼저 나다니, 나는 간호사에 자격이 없음을 느꼈다. 


코드블루가 방송된 그 시간이 마침 아침밥이 올라와 우리가 직접 배식을 하고 병동 환자들이 질식하지는 않는지 보고 있던 시간이었는데 그 방송은 다른 관에서 이루어졌던 응급상황이었다. 이때 나와 함께 일하던 근무자는 '우리가 가면 이 병동 배식은 누가 하며 누가 병동을 지키느냐?'라는 대화를 하였고 이에 한번 더 많은 생각이 들었다. 왜 간호사인 나는 간호사일이 아닌 일까지 도맡아 하며 우선순위를 바꿔 생각해야 하는 걸까? 에 한번 더 좌절하였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전공의 파업 중인 지금 우리 병원도 큰 직격타를 맞았다. 모든 전공의들이 재계약을 하지 않으며 병원에는 그 어떠한 전공의도 남아있지 않았으며 이에 우리는 전문의에게 직접 사사건건 노티를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평소에 당직이나 사소한(?) 처리를 하지 않던 전문의들에게 하나하나 다 설명을 해야 했고, 이에 엄청난 스트레스가 극에 달았다. 대학병원에서는 하늘의 별 같은 보기 힘든 전문의에게 이런 것까지 다 설명을 해야 한다니...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한두 번 든 것이 아니다. 그러다 최근에는 전문의가 야간 당직을 하기 힘들었는지 정신과도 아닌 타 과 전공의가 임시로 우리 병원 야간당직을 도맡게 되었다. 그 전문의는 정신과가 아니기에 정신과적 응급상황에서 써야 하는 주사제 처방에 거부감을 표현했고, 우리 병원 근무자, 체계를 욕하였다. 


달리 생각하면 그만큼 간호사도 근무자 수가 적어 힘든데 남아있는 간호사의 책임으로 돌리며 욕을 해대니... 앞으로도 간호법 제정은 통과될 것 같지 않고, 간호사는 간호사일을 제외한 잡일들도 당연히 도맡아야 하며 의사 파업으로 더욱 혼란스러워진 병원에 나는 병원에 더 남아있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돌이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간호사 근무자 수는 적고 정신과라 월급은 현저히 적은데 해야 하는 일은 많고... 내가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해봐야 나만 갉아먹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도저히 힘이 나지 않는다. 


마침 병동에 코로나 환자도 터졌고 근무자들도 코로나에 걸려 열이 38도가 되는 데에도 쉬지 못하고 일을 나오며 거기다가 병원에서는 어떤 근무자에게는 일할 사람이 없으니 오후 근무에 야간 근무까지 뛰어줄 수 있느냐라는 말도 안 되는 부탁 아닌 부탁도 했다. 나도 감기에 걸려버려 온몸이 솜에 젖은 것 같고 정신은 하늘에 붕 떠서 지상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는데 야간 근무를 하며 이러한 상황들을 보니 그대로 정이 털릴 대로 털려버렸다. 


야간근무를 하면서 나는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신과 간호사가 되어 진정한 간호사가 되겠다는 목표는 빛을 잃어 상실된 지 오래 었고 이제 나는 더 임상에 남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스스로도 그렇고 외부 환경에 의해서도 그렇고 나는 이제 간호사라는 타이틀을 놔주어야 할 때가 되었나 되묻게 된다.  


필드에서 일을 하고 있는 간호사들은 대체 어떻게 이 상황을 버티는지 궁금했다. 어떠한 마음으로 병원을, 환자를 지키고 있는지 묻고 싶다. 


나는 오늘도 부표도 지표도 없는 바다 한가운데에 갈 곳을 잃은 오리 마냥 둥둥 떠다니며  무기력하게 가야할 이유를 찾지 못한 채 억지로 출근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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