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에릭 베치그(Eric Betzig)는 에티앤티(AT&T) 벨 연구소에 사표를 던졌다. 서른네 살, 그의 가슴엔 좌절과 실망만 가득했다. 동시에 에릭은 자기 연구를 인정해 주지 않는 학계와도 이별하기로 했다. 5년 전 코넬대학교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벨 연구소에 들어올때만 해도 여기에서 큰 업적을 남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거기는 명성이 높은 벨 연구소가 아닌가. 여기는 회사에 소속되어 있기는 하지만, 곧장 상품으로 팔 수 없는 연구도 지원했다. 그래서 여기에서 트랜지스터가 최초로 개발되었고, 클로드 섀넌(Claude Shannon)은 정보이론을 정립해서 무선통신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었다.
그런데 연구소는 에릭의 연구 주제이자 물리학의 오랜 난제였던 빛의 회절 한계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회절 한계(diffraction limit)란 빛의 회절 현상 때문에 관찰하기 위해 사용한 빛의 파장의 절반 정도까지만 물체를 구분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19세기 후반 독일 수학자 에른스트 아베(Ernst Abbe)에 의해 수학적으로 정립되어 아베 한계(Abbe limit)라고도 불린다. 연구소 측에서는 200 nm 크기를 관찰하나, 500 nm 크기를 관찰하나 별 차이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벨 연구소는 회절 한계를 극복하려는 에릭의 연구 주제에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압박을 해오던 참이었다.
호기롭게 퇴사하기는 했지만, 막상 받아주는 회사도 없고 대학 연구소에 자리도 없었다. 그렇게 전업주부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 생활도 2년 정도 하고 나니 지루해져 아버지 회사에 부사장으로 취직했다. 그러다 회사생활도 지루하고 예전 연구도 계속 생각나서 벨 연구소 시절 동료였던 해럴드 헤스(Harald Hess) 집 거실에 광학 테이블을 설치하고 연구를 계속했다.
2002년 두 사람은 몇 달 동안 형광 단백질을 이용해 아베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증명했다. 이 결과는 몇 달 만에 학계에 알려졌고, 연구비를 많이 주기로 유명한 재널리아 연구단지에 있는 하워드 휴즈 의학 연구소(HHMI)에 취직할 수 있었다. 드디어 학계에서 인정받아 떠오르는 별이 되는 순간이었다. 베치그는 이 연구소에서 초분해능 현미경을 개발하고, 이것을 생명 현상 연구에 사용했다. 그는 이 현미경을 이용해 아베 회절 한계 때문에 관찰할 수 없었던 수십 나노미터 크기의 생명체의 미시 구조체들을 규명했다. 지금도 UC 버클리에서 연구하고 있는 생물물리학자인 에릭 베치그는 2014년 윌리엄 모너(William E. Moerner), 슈테판 헬(Stefan Hell)과 함께 초분해능 현미경을 개발한 업적으로 노벨화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