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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May 02. 2024

나를 키운 순간들, 내가 그려갈 세상

설마했던 갱년기를 만났습니다.


  나의 갱년기는 불면증과 함께 왔다. 


오후부터 온다던 비가 온종일 내리던 날이었다.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겁고 참기 힘들 만큼 피곤했다. 

평소에는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잠이 드는데 이상할 만치 잠이 오지 않았다. 

겨우 잠들었나 했는데 깨보니 새벽 한 시였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마그네슘을 챙겨 먹고, 눈 마사지기를 사용해 봐도 아무 소용없었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세던 것을 백 마리를 넘기고 거꾸로 몇 번을 돌려가며 셌는데도 여전히 말똥말똥했다. 

자려고 할수록 눈만 말똥거리고 머릿속은 잡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모두 잠든 밤 혼자만 깨어 있다는 사실이 괜스레 서러워졌다. 

나 홀로 남겨진 듯한 외로움이 사무친다. 

남편을 깨워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잠든 사람을 깨울만한 깜냥은 없다.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며 잠들려고 애를 썼지만 코 고는 소리가 거슬린다. 


어느새 아침 햇살이 창문 틈 사이로 스며들 무렵이었다. 

겨우 잠이 들었을까. 시계 알람 소리에 눈을 떴지만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것이 눈꺼풀이라던가? 십 분, 아니 단 일 분만이라도 더 누워 있고 싶었다. 

침대에서 꼼짝도 하기 싫어 오 분만 더! 주문을 외우다 마지막 알람이 꺼진 뒤에야 겨우 일어났다. 


발에 무거운 추를 매단 듯 방문 앞 부엌까지 가는 길도 천릿길이다. 

평소 한국 사람은 밥심이라며 즐겁게 아침을 차렸다. 

콧노래를 흥얼대며 갓 지은 밥을 식탁에 올렸다. 

이십 년 넘게 해왔기에 요리 하나는 능숙했건만 재료를 떨어뜨리거나 손가락을 베이는 등 실수가 잦아졌다. 

아침상을 차리는 것이 숙제처럼 느껴졌다. 

애들을 깨울 때 언성을 높이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제 저녁에 먹었던 국을 데워 겨우 아침상을 차려 냈다.     

 불면증은 우리 집 아침 풍경을 바꿔 놓았다. 

마주 보고 웃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단란한 모습은 사라졌다. 

아침 식탁에 내 자리는 비어있었다. 

가족들이 밥을 먹는 동안 출근 준비하기에 바빴다. 

그러고도 핸드폰이나 지갑을 두고 나오는 실수를 반복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는 나도 모르게 깜빡 졸다가 내릴 정거장을 지나쳐 지각도 잦아졌다. 

일터에서도 온종일 몽롱하고 개운치 않아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갔다. 


사실 불면으로 일상이 흔들리기 이전에도 갱년기 증상은 이미 내 삶 속에 스며들고 있었다. 

갱년기가 더 이상 여자가 아니라는 선고처럼 느껴져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다. 

너무나 두려워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냈다. 쉽게 분노했고 말이 곱지 않았다. 돌아서면 후회했지만, 순식간에 치밀어 오르는 불덩이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나의 변화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시선도 곱지 않았다. 이해보다는 도대체 왜 그래? 타박 섞인 대꾸로 돌아왔다. 

가족들은 나를 슬슬 피하기 시작했고 혼자라는 서러움에 자주 울었다. 

친구들을 만나지 않으면 외로운데 막상 만나면 힘이 빠졌다. 

감정 기복이 심해져 혼자 있는 게 차라리 편해졌다. 

몸과 마음이 따로 있지 않다더니 마음의 변화가 시작되자 몸의 퇴행도 자주 드러났다. 

단숨에 뛰어오르던 뒷산 둘레길이건만 이제는 걷기에도 벅찼다. 

그나마도 호흡이 가빠 몇 번이고 쉬어가야 했다. 

큰 병을 앓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편치도 않은 상태가 지속되었다. 

아침이면 손 관절이 붓고 아파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저 불안하고 혼란스럽기만 했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서 아침부터 멍해졌던 날이었다. 

욕실 거울에서 낯선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부스스한 머리에 피곤에 젖어있는 얼굴이다. 누구신지...? 


평소에 셀카 찍기를 즐겼다.  

트레킹을 할 때는 물론 바쁜 출근길에도 수시로 내 모습을 카메라에 담곤 했었다.  

필름 카메라 시절이었다면 이렇게 막 찍진 못했겠지. 

휴대폰 카메라 사진이야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워버리면 그만이기에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기도 하고 정면을 바라보며 진지한 표정을 하며 몇 장이고 찍었다. 

어쩌다 마음에 쏙 드는 사진이 있으면 스노우앱으로 잔뜩 보정을 했다. 

갤러리에 편집된 내 모습을 채우며 이게 나라고 자기 최면을 걸었다.      


시선을 끄는 외모는 아니지만 공중 화장실, 백화점, 심지어 병원에서도 거울이 눈에 띄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화장을 고치곤 했다. 

화장이 지워져 잡티가 보이는 부분은 꼼꼼히 파운데이션으로 지우고 윤기가 사라진 입술은 립글로스를 덧발라 주었다. 

마스카라가 번진 눈 주변은 면봉으로 정리해 주면 금방 화장한 듯 생기를 되찾았다. 평소에 “화장은 자기만족이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실제로 화장이 잘 받는 날에는 누가 봐주지 않아도 자신감이 생겼다. 

말투, 걸음걸이부터 활기가 넘쳤다. 

굳이 인사를 건네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에게 아는 척 인사를 건네고 계획에 없던 약속을 잡고 싶을 만큼 마음은 이십 대로 돌아간 듯 설렜다. 

그렇게 오랫동안 자기만족에 취했었다.  

   

이제는 화장으로도 감출 수 없는 팔자 주름과 판다 눈을 한 아줌마로 변해버렸다. 

그 순간 젊음은 가버렸구나 싶었다. 더 이상 나이 듦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날 이후 휴대폰 갤러리는 자연과 풍경 사진으로 채워졌다. 

이따금 현대의학의 힘을 빌릴까 싶기도 했다. 

단골 미장원에 오는 손님 중 한 명이 안면 거상술로 주름이 없어져서 딴사람이 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해볼까. 친구가 레이저 시술을 받고 피부가 맑아졌던데 나도 한 번 해볼까. 혹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얼굴로 먹고사는 직업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부작용도 두려웠다. 

모 연예인이 성형수술 부작용으로 얼굴이 망가졌다던데, 친구가  레이저 시술을 받아도 그때 뿐이고 기미 잡티는 원래 상태로 돌아오고 오히려 피부가 약해져서 온갖 염증에 시달리고 있다던데. 어쩔 수 없으니 나이 듦을 받아들이자 싶다가도 젊고 예쁜 사람들을 보면 부럽고 시샘이 났다. 

그 시절을 지나왔으면서도 그들이 짊어져야 할 무게보다 반짝이는 젊음이 먼저 보였다. 


 병원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어느 날은 허리가 아파 길을 걷다가도 주저앉아 쉬어야 했었고 어느 날은 어깨가 아파서 잠을 자다가 아파서 깼다. 

옷을 입을 때도 악 소리가 날 만큼 아팠다. 

어느 날은 목부터 어깨, 허리까지 온 몸이 아파서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았다. 

주사를 맞을 때마다 입술이 부르텄다. 

주사 부작용으로 부르튼 입술이 마치 나이 듦 같았다. 

립스틱으로는 가릴 수 없는 내 모습이 서러워 엉엉 울고 말았다. 

몸이 흔들리니 마음도 약해졌다. 

아무렇지 않게 척척해내던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는 것도 버거웠다. 

김치 냉장고에서 통을 꺼낼 때에도 도움을 청해야 했다. 

시댁 농사 일에도 선뜻 나서지 못하게 되었다. 

직장에서도 새로 교구가 들어오면 번쩍 들어 옮기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뒷걸음질치게 되었다. 

당연했던 일들이건만 이제는 자꾸만 망설이게 된다. 

욕심을 내면 곧바로 통증으로 이어지니 자꾸 눈치를 보게 되었다. 

몸이 흔들리니 마음도 약해졌다. 

고장 난 허리, 불편한 관절, 작은 변화에도 민감해지는 감각 때문에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롤러코스터를 탔다. 


설마 했던 갱년기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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