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단상
눈을 뜨니 새벽 2시 30분.
어제 9시 30분에 졸음에 못 견뎌서 잠이 들었더니 너무 이른 시각에 눈을 떴다.
침대에서 버텨봤자 다시 잠들기는 어려울 게 뻔해서 거실로 나왔다.
여러 인증 글을 쓰면서 식탁에 있는 간식들을 폭풍 흡입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걸 보면 피로는 당을 부르는 게 맞다.
배도 부르고 더 이상 머리 회전도 안되고 눈이 아플 무렵 다시 안방으로 향했다.
남편은 침대 끝에 웅크리고 잠이 들었다.
퀸 사이즈 침대라 둘 사이는 장정이 대자로 벌리고 누워도 충분한 거리다.
수능을 끝난 딸아이가 집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딸아이 방에서 안방으로 잠자리를 옮겼다.
그사이 적응이 되었는지 혼자 자는 것이 편하게 생각되면서 은근 신경이 쓰였다.
남편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우린 가능하면 서로 몸이 닿지 않게 자기만의 공간을 지키며 잠을 잔다.
혹자는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남편은 원래 잠 귀가 밝아서 누가 옆에 서 뒤척이기만 해도 잠에서 깨어나는 체질이고 나 역시 갱년기가 되니 새벽에 깨는 것이 잦고 다시 잠들기가 어려웠다.
수면만큼 하루의 컨디션을 좌우하는 게 있을까...
잠을 설친 날에는 병든 닭처럼 졸기 일쑤고 예민해져서 뾰족뾰족 가시가 돋은 고슴도치가 된다.
일과 중 휴게 시간에는 무조건 30분 낮잠을 자며 버틴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도 졸다가 책을 떨어뜨리기도...
5시 넘어서 침대에 누웠다가 8시 30분에 깨어났다.
골프 연습장에 간다는 남편의 아침을 차려주고 딸아이랑 수다 삼매경이 이어졌다.
아들아이는 친구랑 등산을 간다고 나섰고 딸아이는 어질러진 방 청소를 한다고 들어갔다.
수능이 끝난 딸아이를 바라보는 심정은 두 마음이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음을 온몸으로 깨닫는 안타까움과 도전과 실패를 기본 값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나이라는 것을 진정으로 깨닫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마저도 아이 몫이라 여기고 내 삶을 들여다본다.
나의 스무 살은 어땠을까?
관계도, 공부도, 역할도 야무지게 해내지 못했던 불안한 청춘이었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더 잘 해낼 수 있을까?
부질없는 상상을 하다가 다시 지금으로 돌아왔다.
오늘이 살아있는 가장 젊은 날이라는 말이 식상할지 모르지만 내겐 마법의 문장이다.
더구나 마음대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휴일이라 참 좋다.
다시 안방으로 돌아가서 잠자리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걸릴 테지만 여차하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식탁이 있으니...
아이들은 제 갈길을 열심히 가고 있으며, 남편 역시 틈틈이 취미를 즐기며 열심히 일을 하고 있으니 감사하다. 일상을 지켜내는 노력은 그 자체로 빛이고 희망이다.
졸음으로 나른해지는 휴일이다.
차마 아까워 침대에 눕지는 못하고 수다로 대신하고 있다.
창밖에 햇살이 눈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