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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Apr 18. 2024

착한 아이는 그만할래요

여전히 서투른 엄마의 고백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다.

자기의 욕망을 억제하고 남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애를 쓰다가 결국은 번아웃에 빠지는 현상인데 기질상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돌아보면 고집을 부려서라도 대부분 욕심대로 살았다.

어릴 때 사진은 울거나 찡그린 모습들이 대부분이다.

기억은  희미하지만 뭔가 못마땅하거나 억울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아직도 궁금한 건 달래주지는 않고  왜 사진만 찍었냐는 거다.

추측건대 한번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쉽게 굽히지 않는 성격이라 몇 번을 달래다  포기했을 것이다.

울음 끝도  길어서 나중에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으리라

그때만 해도 카메라가 귀한 시절이라 부모님 입장에선 사진 찍을 기회가 왔을 때  아이 상태랑 상관없이 찍었을 수도 있었겠다.

내 마음에 거슬리는 애들은 손톱으로 할퀴면서 나를 방어했다.  

얼굴에 생채기가 난 남자 친구들의 손을 잡고 엄마들이 우리 집에 와서 따져도 엄마는 죄송하다는 말만 하셨을 뿐 나를 혼내지 않으셨다.  아마도 작고 마른 막내딸이 스스로를 지키는 것으로 여기셨으리라.  


그런 나에 비해 남편은 순둥이었다.  소꿉놀이를 사줬는데 윗집 여자친구한테 빼앗기고  울면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눈꼬리가 약간 처진 선한 눈망울로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사람을 좋아했고, 술과 밥값은 당연히 자기 몫이었다.  신혼 초에는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는 동안 많이 고쳐지긴 했지만  여전히 남들이 우선인 사람이다.

딸은 아빠를 닮는 법이란 말이 있다. 딸아이 역시 사람을 좋아하고, 친구들을 우선으로 여겼다. 친구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아이였기에 주변엔 항상 친구들이 많았다. 그래서 아무 문제가 없는 줄 알았다.

둔감한 엄마라도 아이의 변화는 본능적으로 알아채기 마련이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어느 날이었다.

늘 방긋방긋 잘 웃고 쫑알대던 아이가 갑자기 말이 없어지고 방문을 걸어 잠그기 시작했다.

사춘기를 심하게 앓고 있나 보다 여기면서도 불안해서 불러앉혔다.

아이가 털어놓는 고민은 뜻밖에도 친구에 관한 고민이었다.

평소 남자아이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내던 아이라 남자아이들이 장난을 치면 쫓아가서 등짝을 후려 칠정도로 활달했었다.

그런데 여자친구들이 문제만 생기면 아이한테 해결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고 했다.

그런 과정을 겪는 동안 남자아이들은 "조폭마누라"라고 놀리고, 여자친구들은 귀찮은 일들만 부탁하는 악순환에 빠져서 괴롭다는 이야기였다. 아이들을 키울 때 버릇없고, 거짓말하고, 약속 안 지키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했다.

아이는 야단맞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하게 되었고, 엄마에게 자신을 털어놓지 못하게 되었단다.

지금은 엄마가 많이 변해서? 괜찮지만 어릴 때는 무서웠단다 ^^;




아이들이 스스로 깨닫는 게 중요하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밝고 순종적인 태도를 보며 흐뭇해했는데  실상은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자신을 억눌렀던 것이었다.

그것은  타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성향으로 나타났다.  

착한 아이로  사느라 힘들었을 아이에게 미안했다.

밤이 늦도록 아이 이야기를 온 마음으로 들었다.

그렇게 많은 것들을 속에 담고 있느라 얼마나 아팠을까...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심보다 자신을 보살피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마음을 표현할 것을  당부했다.


그렇게 시작한 이야기는 자신의 꿈에 관한 이야기로 흘렀다.

꿈이 수시로 바뀌는 아이한테 꿈과 현실의 간극을 알려주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 때문에 도전하지도 못하고 포기했다며 울었다.

아이돌가수, 배우, 모델, 요리사...

그 직업의 정상에 선 사람들의 반짝이는 모습밖에 알지 못하는 아이가 걱정돼서 과정의 어려움과 수많은 실패를 얘기했는데 아이에겐 기회를 뺏는 결과가 되었다.

 앞으로는 무엇을 꿈꾸든지 그 꿈을 응원해 줄 거라는 약속으로 대화를 마무리했는데 위로가 되었을지…

 어려운 것이  인간관계인데 특히 내 것인 줄? 알았던 가까운 이들과의 불통을 깨닫는 건 쓸쓸한 일이다

나의 사랑법이 오로지 내 욕망을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갔음이 안타깝고 미안했다.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 인생에 과거를 살아온 내가 끼어드는 건  이제 그만하기로 했다.

우리 각자의 꿈으로 행복해지자.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서툴렀고 무지해서 미안하고 안타깝구나.

그래도 너희들을 온마음으로 사랑했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걸 믿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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